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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밖에서 더 빛났던 뽀빠이

방송인 이상용

by 명랑낙타





어린이와 군인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방송인 이상용이 9일 낮 12시 25분 세상을 떠났다. 동네 인근 병원을 다녀오던 중 갑작스럽게 쓰러졌고, 병원으로 급히 옮겼으나 깨어나지 못했다. 사인은 심근 경색. 향년 81세.


1944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난 그는 전쟁과 가난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생전에 "학교 갈 돈이 없어 책대신 나무지게를 져야 했다"라고 말하던 그는 '국민 MC'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방송인으로 크게 성공한 후에도 늘 소외된 계층, 힘없는 어린이와 오지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아마도 어린시절의 핍박함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별명은 '뽀빠이'였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50년 전에 내가 데뷔할 즈음에 뽀빠이 만화 영화가 인기였는데 뽀빠이가 나처럼 작지만 용기 있는 캐릭터여서 그런 별명이 붙은 거 같다"라고 말했다. 만화 속 뽀빠이는 악당 브루투스에게 궁지에 몰리는 여자친구 올리브가 위기에 처해 "도와줘요 뽀빠이"라고 외치면 달려가 악당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도. 그때문인지 약한 어린이에게 따듯한 벗처럼 각인됐다. 특히 1975년 KBS어린이 프로그램 '모이자 노래하자' 사회를 맡으며 빠르고 경쾌한 진행으로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며 '뽀빠이 아저씨'라고 불렸다.


이 프로그램 진행중 심장병으로 고생하는 어린이를 만난 게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사연을 접한 이상용은 출연료를 모두 수술비로 지원했던 것. 이때부터 심장병을 앓는 어린이에게 수술비를 지원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섰다. "누구 한 명을 살리는데 내 인생을 바칠 수 있다면, 그건 실패한 인생이 아니다"라며 "아이들은 나라의 미래"라는 신념으로 그동안 567명의 아이들의 수술비를 지원했다고 한다.


이상용 하면 잊을 수 없는게 '우정의 무대'일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군인 위로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1989년 시작된 MBC의 '우정의 무대'는 일요일 오전 전 국민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무대 위에서 병사가 "어머니!"라고 외치던 그장면, 가족 상봉 후 "고향 앞으로 출발!" 하며 거수경례하는 엔딩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고려대 ROTC출신인 그는 군 복무의 특수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특히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인 20대 초 중반 군생활을 해야 하는 젊은이들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잘 알고 있었다.


젊은 병사들에게 웃음과 위로를 전하고 싶은 그의 진심은, 촬영장에서도 잘 드러났다. 스테프 중 가장 먼저 도착해 병사들과 교감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기도 했다. 방송에서 그는 병사들의 편지를 통해 가족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부득이 가족이 오지 못해 아쉬운 마음으로 목놓아 우는 병사를 부둥켜 안고 같이 울어주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장면을 보며 온 국민이 함께 울었다. 1997년 방송이 종영한 후에도 그는 오랫동안 전국 군부대를 돌며 위문공연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그에게도 위기가 닥쳤다. 심장병 후원금을 유용했다는 억울한 누명으로 그의 인생은 낙엽처럼 떨어졌다. 우리 언론이 늘 그랬듯, 비리 의혹은 대문짝만 하게 보도되고 무혐의는 보도되지 않았다. 평생 쌓아 온 명성이 무너지는 건 하루면 충분했다. 살아가야 할 의욕도 사라지고 그는 절망의 시간을 보내다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 현지에서 관광버스 가이드로 일하기도 했다. 귀국했지만 옛 명성을 일으켜 세우기는 역부족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주변의 시선보다 누군가를 돕고자 했던 내 진심이 의심받은 것"이라고 했던 그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졌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부음이 전해진 것이다. 평소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도움을 주며 살고 싶다"던 이상용은 인생의 마지막에도 남에게 짐을 지우지 않는 채 조용한 이별을 택했다.


이상용은 무대 위에서 보다 무대 밖에서 더 빛났다. 그는 희미해지려는 아이들의 심장을 살렸고, 병사들의 외로움을 넓은 가슴으로 품었다. 이제 '도와줘요 뽀빠이'라고 외쳐도 달려 올 뽀빠이는 우리 곁에 없다. 이제 위기에 처한 올리브는 누가 달려와 구해줄 것인가. 그의 타계로 우리의 소중한 추억 하나가 또 사라졌다.


사족: 몇 번 그를 만난 적이 있다. 활달하고 긍정적이며 뛰어난 순발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웃기는 사람이었다. 달변이었다. 스탠드업 코미디가 활성화됐다면 단연 대한민국 최고였을 것이다. 그의 프로근성에 홀딱 반한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팬의 한 사람으로 진심으로 그의 명복을 빈다. 뽀빠이아저씨! 그동안 고마웠어요. 부디 좋은데 가셔서 힘들게 했던 모든 근심 걱정 훌훌 털어버리세요.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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