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윤후명
누구나 한 번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디로 가는지, 이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던 것에 의문이 생기다 마침내 폭발하는, 그런 거 말이다. 그때는 누구도 그런 그를 말릴 수가 없다. 그나마 잠 재우는 건 책이다. 그 당시는 '문학의 시대'가 정점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좋은 책들이 너무 많았다. 누구나 자신의 최애의 책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심란할 때 꺼내 읽는 책 두 권을 만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과 윤후명의 '둔황의 사랑'.
'젊은 날의 초상'은 '하구''그해겨울''우리 기쁜 젊은 날'을 3편을 한데 묶었다. 그중 '그해 겨울'은 당시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했다. 이문열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이 작품은 스물한 살 청년 '영훈'의 방랑기. 특히 영훈이 창수령을 넘는 대목은 지금 다시 읽어도 가슴이 설렌다. 폭설이 내리는 창수령을 넘어 대진바닷가로 향해 가던 영훈의 여로. 특히 눈 내리는 창수령을 묘사한 이문열의 필치는 한 편의 시며 한국문학사에 가장 아름다운 문장 중 하나로 기록된다.
‘아아, 나는 아름다움의 실체를 보았다. 창수령을 넘는 동안의 세 시간을 나는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세계의 어떤 지방 어느 봉우리에서도 나는 지금의 감동을 다시 느끼지는 못하리라.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완성된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을 나는 바로 거기서 보았다. 오, 아름다워서 위대하고 아름다워서 숭고하고 아름다워서 신성하던 그 모든 것들…’. ('그해겨울'중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는 반드시 사춘기 전 후에만 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한 번만 오는 게 아니다. 나이가 먹은 지금도 가끔 '질풍노도의 시간'이 온다. 누구나 겪어 보았을 외로운 삶에 대한 성찰. 어른임에도 찾아오는 이 고질적인 '질풍노도의 시간' 역시 다스릴 수 있는 건 지금도 독서밖에 없다. 윤후명의 '둔황의 사랑'은 가끔 안절부절못하는 내게 안식의 시간을 준 책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든 것에 소외당하고 있다고 느낄 때, 스스로 초라해지고 삶이란 게 하찮고 무의미하다고 자괴감을 느낄 때, 그리고 나를 찾고 싶을 때, 이 책을 꺼냈다.
'달밤이다. 먼 달빛의 사막으로 사자 한 마리가 가고 있다. 무거운 몸뚱어리를 이끌고 사구를 소리 없이 오르내린다. 매우 느린 걸음이다. 쉬트르 뉘르르, 명사산의 모래가 미끄러지는 소리인가.... 사자는 아랑곳없이 네 발만 차례차례 떼어 놓는다. 발자국도 모래에 묻힌다. 세상은 정밀하게 정체되어 있다. 그래도 사자는 쉬지 않고 걷고 있다. 아득한 시간이 사막처럼 드러나고, 그 가운데서도 사자는 하염없이 걷고 있다. 시간의 사막 역시 끝간 데가 없다. 가도 가도 끝없는 허공을 사자는 묵묵히 걷고 있다. 달빛에 쏠리는 모래 소리인가, 시간에 쏠리는 모래소리인가'
주간지 기자였다가 실직한 주인공이 아내가 낙태수술을 하고 돌아온 날, 알 수 없는 회한으로 쇠침대 누워 꿈을 꾼다. 둔황과 혜초와 사막을 건너가는 한 마리 사자가 꿈에 나타난다. 멀고 먼 서역 3만 리, 사막은 달 빛에 젖고 있었다. 윤후명에 따르면, 우리는 둔황으로 가고 있으며 매일 반복되는 이 비루한 삶 속에 각자 우리 가슴속에 둔황을 품고 있다. 김훈은 작품 속의 둔황을 '꿈이 꿈의 이름으로 다른 꿈을 박해하지 않는 나라이며 수많은 양식의 아름다움이 서로 뽐내지 않고 어깨동무를 하고 공존하는 나라이고 하늘로 오르는 천녀의 부드러운 옷자락에 모든 슬픔이 안기는 나라'라고 말했다. 나도 동의한다. 꿈같은 이 작품을 나는 너무도 사랑했다.
우리는 또 아까운 작가 한 명을 떠나 보낸다. '둔황의 사랑'을 쓴 윤후명이 8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1946년강릉 태생이니 향년 79세. 작가로서 너무 이른 나이다. 윤후명은 1인칭 화자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서정적으로 서사를 전개하는 나름 독특한 스타일리스트였다. '문학의 시대'는 시대가 시대였던만큼 리얼리즘 작가가 주류를 이뤘지만, 윤후명은 이에 아랑곳없이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시인으로 등단해서인지 문장이 시처럼 아름다웠다. 소설이 갖춰야 한다는 기승전결의 고정관념을 모두 버렸다. 이미지에 집중했다. 그런 이유로 "이게 소설이라고?"며 의구심을 드러낸 독자도 있었지만,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고 김윤식은 "폐허로서의 환상 또는 환상으로서의 폐허를 지향하는 낭만가, 환상과 현실의 조화를 미묘한 솜씨로 그려낸 작가"라고 평했다.
윤후명을 만난 적이 있다. 독보적인 스타일리스트로서 나름 문학 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을 때였다. 나이에도 불구하고 눈은 아이처럼 깊고 맑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둔황의 사랑'에서 우리들의 잃어버린 과거, 그 웅대한 세계가 현대에 살고 있는 소시민의 마음속이나 핏속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그들을 달래주고 싶었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작가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그때 그가 말했다.
자신의 소설이 "어렵다"는 지적에 이렇게 말했다. "스토리 위주에 익숙해서다. 소설이 결과를 제시해 주면 재미가 반감된다. 우리 소설이 한 가지 주제에 집착하는 것도 불만이다. 목적지로 가는 길이 오직 직선거리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오래전이었는데 그때 그는 이런 인상적인 말도 했다. "나는 우리 소설이 너무 소아병적인 취향에 젖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세계성을 띄어야 한다. 나는 이 작은 땅에서 세계를 보고 싶었다. '둔황의 사랑'도 그런 생각을 갖고 썼다. 나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이런 시각을 점차 넓혀갈 생각이다."
윤후명은 그림도 그렸다. 공교롭게도 지난달, 부산 소재 갤러리 '범향'에서 '윤후명 문학그림전'이 개막했다. 그때 윤후명이 참석했다. 그를 인터뷰한 부산일보는 기사에서 "내게 완성이란 없다. 끊임없이 걸어갈 뿐이다. 자기 안으로의 탐구는 외로움, 바깥으로 탐구는 그리움, 외로움과 그리움의 완성은 사랑"이라고 적었다.
나를 잃고 헤매던 '질풍노도 시기'에 내 정신적 지주였던 작가들이 이렇게 한분 두 분 떠나는 게 너무 두렵다. '다음은 또 누가 될 것인가' 생각하면 두렵고 문득,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부고를 언제까지 고통스럽게 써야 하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아득한 고립감이 온몸을 휩쌌다. 나는 빠르게 걸었다. 이제부터 혼자다. 나는 뚜렷이 깨닫고 있었다. 목이 꽉 메어 왔다. 그러면서 나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생명의 소리는 철저하게 개인의 발견 속에서 오는 것임을 나는 어렴풋이 알아차리고 있었다. 삶은 모든 타인에 대한 나만의 뜻이며 말이었다. 나만의 외로운 고행이었다.' ('모든 별은 음악소리를 낸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