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11번

야구선수 최동원

by 명랑낙타








어젯밤 부산야구장. 롯데와 SSG 경기. 1회부터 난타전이었다. 8시 59분. 9회 말 11대 11에서 롯데 김민성이 끝내기 안타를 쳤다. 야구장은 함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5위 자리가 중요했던 롯데에겐 뜻깊은 승리였다. 그때 한참동안 환호하는 선수들을 담던 카메라가 슬며시 야구장 기둥에 쓰여진 11번을 비추었다. 그 번호의 주인공도 이 경기의 승리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처럼 말이다. 11번은 롯데 최동원을 상징한다. 적어도 부산에서는 그렇다. 롯데는 가을 야구에 갈수 있을까.


오늘은 최동원의 14주기. 2011년 9월 14일 대장암 투병 끝에 눈을 감았다. 향년 53세. 한국 스포츠 사상 가장 빛났던 큰 별이다.


야구를 좋아하든 말든 최동원을 모르는 이는 없다. 한국스포츠 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가장''위대한'이라고 내 맘대로 단정한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질 사람이 있을까. 만일 "네가 뭔데 최동원이 선동렬보다 위대하고 하느냐"라고 한들,는 이를 수정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래도 질책한다면, 1984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를 다시보라고 권하고 싶다. 전대미문. 설령 지구가 멸망한다해도 다시 일어날 수 없는 경기다.


1984년 한국프로야구 전반기 우승팀 삼성라이온즈는 후반기 우승팀으로 어디를 택할지 고민했다. 구단 고위층들이 모여 여러 번의 회의를 가졌다고 한다. 삼성은 전반기에 승률이 가장 높았던 롯데 자이언츠를 택했다. 삼성은 롯데에게 1패밖에 없었다. 삼성은 한국프로야구에서 가장 치욕으로 기록된 '져주기 게임'을 하기로 결정했다. 평범한 땅볼인데도 알까기를 하고, 잡을 수 있는 뜬 공을 고의로 놓치기도 했다. 열심히 치지도, 최선을 다해 뛰지도 않았다. 덕분에 롯데는 겸연쩍게 후기 우승을 했고, 마침내 두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다. 삼성에 대한 묘한 반감의 정서가 아마 그때부터 생긴 게 아니었을까. 물론 내 생각이다.


그러나 삼성은 그해 정규시즌에서 27승을 거둔 롯데 자이언츠에 11번 최동원이 있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 그게 실책이었다.


1차전은 예상대로 최동원이 등판했다. 138개의 공을 던지고 한국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4대 0 완봉승을 거두었다. 최동원이 등판하지 않은 2차전은 8대 2 삼성승리. 3차전에도 최동원이 등판했다. 149개의 공을 던지고 3대 2 완투승을 거두었다. 최동원이 등판하지 않은 4차전 역시 삼성의 7대 0 승리. 5차전에도 최동원이 등판했지만 139개를 던지고 3대 2로 졌다. 완투패. 이제 전적은 3승 2패로 삼성의 리드. 분위기는 삼성으로 넘어갔다. 그래도 인간이었던 강병철 롯데 감독은 차마 6차전에 최동원을 내보내지 못하고 임호균을 등판시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강병철은 가슴속을 파고드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다. 점수를 앞서고도 믿음이 가지 않았던지 5회에 선수교체를 한것이다. 강병철과 최동원의 대화가 이랬다고 한다.


강병철: 동원아 우짜노. 여기까지 왔는데...

최동원: 네 알았심더. 마 함 해봅시더.


구원투수로 등장한 최동원. 그리고 6대 1로 승리했다. 구원승.


이제 7차전만 남았다. 사실 져도 그만이었다. 패배한다 해도 최동원을, 롯데 자이언츠를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설마 했는데 7차전에 최동원이 또 선발로 등판했다.(그래서 나는 지금도 강병철을 경멸한다) 모두 경악했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대로 완투한 최동원의 롯데 승리. 한국시리즈 동안 최동원은 5경기에 등판해 무려 40이닝을 던지고 4승. 평균자책 1.80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최동원에겐 많은 호칭이 따라다닌다. '무쇠팔' '철완' '고무팔' '황금의 오른팔'. 그러나 이는 따지고보면 영광스러운 호칭이 아니다. 뒤집으면 엄청나게 혹사당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최동원은 롯데에서 6년간 뛰면서 선발 124경기 중 15번의 완봉승과 무려 81경기를 완투했다. 지금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영웅을 롯데는 1989년 삼성으로 트레이드했다. 버린 것이다.선수협의회 결성을 주도했다는 게 이유였다. 선수협의회 결성은 무산됐다. 그 후 최동원은 우리가 아는 대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가시밭길을 걸었다. 다시 롯데로 돌아가지도 못했다. 영구결번 지정도 롯데는 미적미적거리다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마지못해 했다. 심지어 죽을때까지 롯데 유니폼조차 입지 못했다. 코치로도 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동원은 '비운의 투수'였다.


롯데를 사랑했고 부산을 사랑했고 야구만을 사랑했던 남자. 최동원. 다시한번 영웅 최동원의 위대함을 떠올려 본다.



사족: 최동원을 다룬 영화 ‘퍼펙트게임’(박희곤 감독)이 2011년 12월 21일 개봉했다. 최동원 역은 조승우가 맡았다. 영화제작 당시 조승우의 투구폼을 봐주는 등 많은 관심을 가졌던 최동원은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가 영면한 후 3개월이 지나 상영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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