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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작두 타는 남자

야구인 하일성

by 명랑낙타




정태춘의 '건너간다'를 자주 듣는다. 그때마다, 내 가슴속에 큰 돌 하나가 굴러다닌다. 꼭 슬퍼서 듣는 것만은 아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 힘이 나기도 한다. 그래! 우리는 용케도 90년대를 무사히 건너왔지.


이런 대목이 있다. '휘청거리는 사람들 가득 태우고 환멸의 90년대를 지나간다' 환멸까지는 아니더라도 90년대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고단했던 시기였다. IMF를 겪었다. 그 시절, 나는 눈이 내리는 공원 벤치에 앉아 울고 있는 중년의 남자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어깨를 들썩이며 주위의 눈길에도 아랑곳없이 소리 내어 울었다. 지금도 그 중년남자의 어깨 위로 하염없이 쏟아지던 눈이 생각난다. 그도 무사히 90년대의 강을 건넜을까.


90년대 나를 위로해 준 건 야구였다. 우리 모두 그랬을 것이다. LA에 있는 박찬호의 역투로 우리는 큰 힘을 얻었고 국내에는 내 경우, 태평양돌핀스, 현대유니콘즈가 큰 위안이 됐다. 역사에 길이 남을 삼미 슈퍼스타즈의 후예들이다. 지금 프로야구에 관중이 유례없이 폭증하는 것은 그때보다 야구가 더 재미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힘든 사람들이 많아서? 내 생각이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면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다는데 그래도 어떨 수 없다. 나는 오늘 꼰대가 되고 싶다. 지금 프로야구의 인기가 너무 높아 빅게임의 경우 야구표를 구하기가 힘들다는데, 나 때는 그러지 않았다. 해태나 롯데가 맞붙을 경우를 제외하곤 그래도 표 구하기가 수월했다. 심지어 7회가 넘어가면 우리 동네 구장의 경우 외야 출입문을 열었다.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데, 7회면? 1회부터 보는 거랑 마찬가지였다.


그때 어슬렁어슬렁 야구장으로 입장한다. 퇴근한 후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슬리퍼를 신고 외야에 앉아 친구랑 주거니 받거니 소주를 마셨다. 물론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가져가야 한다. 중계를 들으며 직관하는 야구는 정말 재밌다. 관중이라곤 손꼽을 정도였고(이미 연고지를 다른 곳으로 옮긴 다는 소문이 난 후 우리 동네 야구장에 1000명 이하일 때가 허다했다) 외야는 거의 텅 비었다. 홈런볼을 잡으려는 몇몇 아이들만 빼놓곤 나랑 내 친구뿐인 경우도 있었다. 지금은 응원가에 마이크소리에 야구장이 온통 시끄럽지만 나 때는 '딱''딱' 나무배트에 공 맞는 소리, 주심의 콜, 선수들의 외침. 그리고 일부 관중들의 야유소리에 텅 빈 야구장에 메아리가 칠 정도로 적막했다.


하지만 라이트가 하나둘씩 켜지면 야구장은 근사하게 변했다. 별천지였다. 누워서 하늘을 보면 세상이 온통 내 거 같았다. 우리 동네 야구장 외야에서는 노을이 지는 것도 보였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만일 죽기 전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면 아마 이곳도 포함되리라.' 야구장은 내게 그런 곳이었다.


물론 우리 팀이 이기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정말 누가 이기든 상관없었다. 우리는 그냥 야구를 보는 게 좋았다. 관중이 없으니 야구중계를 크게 틀어 놓아도 좋았고, 누가 뭐라는 이가 없어 더 없었다. 그리고 몇몇 관중들....나만 외로운게 아니구나. 그게 위로가 됐다. 그리고 또 하나. 그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하일성의 목소리.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오늘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야구해설가 하일성의 기일이다. 2016년 9월 8일 오전 7시 30분. 그의 비보에 전국이 들썩였다. 부고에 인색하던 신문들도 그의 죽음을 크게 실었다. 극단적인 선택 때문이었을까. 나도 그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고작 67세였다.


누가 뭐래도 하일성은 한국 야구에 큰 획을 그었던 야구인이다. 체육교사로 재직 중 1979년 고교야구가 한창 인기를 끌었을 때 TBC에서 야구해설을 시작했고,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KBS 야구해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입담은 말할 것도 없고 성격도 좋았던 하일성은 어느 캐스터와도 콤비를 이뤘다. 이장우와 하일성. 유수호와 하일성. 그리고 표영준과 하일성. 야구해설사에 빛날 명콤비다. 하일성은 이들과 함께 "아 야구 몰라요" "아 역(逆)으로 가네요"라는 절묘한 멘트로 야구의 흥을 돋웠다. 왜 이 멘트가 절묘했는지 이미 인터넷에선 많은 일화들로 가득하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투수를 열심히 칭찬하는데 홈런을 맞고, 타자가 슬럼프에 빠졌다고 걱정하면 홈런을 치고.. 이 경기 뒤집기 힘들다고 하면 역전이 되고. 그때마다 하일성은 "아, 야구 몰라요." "아, 역으로 가네요"로 기막히게 피해 나갔다. 남들은 이를 흉보지만, 나는 오히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요기베라의 명언보다 하일성의 "야구 몰라요"라는 멘트가 열배,아니 백배 더 멋지다.


하일성은 투수 구질이나 던질 코스, 타자의 심리, 감독의 용병술 등을 정확히 예측하는 촉이 뛰어났다. 게임의 흐름을 잘 맞췄다. 이는 '빨간 장갑의 마술사'로 불리던 고 김동엽감독의 덕이 컸다. 하일성은 생전, 김감독이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예측하는 해설을 해라”라는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2000년 중반까지 그 촉은 빛을 발해 ‘하 작두’라는 별명을 얻었다. 매일 야구를 중계하면서 작두를 타던 남자. 입담이 구수한 그 남자가 오늘 나는 그립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두타는 예측이 야구해설가의 숙명이고 그걸 잘했던 이가 하일성이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의 말년은 고단했다. 사기를 당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IMF때 하염없이 떨어지던 눈을 맞으며 울던 그 중년 남자처럼 고통의 나날이었으나, 하일성은 9회 말 역전 홈런을 치는 데는 실패했다. 지금 내 가슴속 큰 돌 하나가 움직이고 있다.


사족: 하일성의 많은 어록 중 나는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한 말인데... '야구 진짜 몰라요'라는 얘긴데 우리 인생도 그러잖아요, 졌다고 생각하고 인생을 포기하려는 그 순간에 뜻하지 않은 홈런이 터져서 역전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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