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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너는 언제나

가수 조동진

by 명랑낙타









69년을 살다 세상을 떠난 가수가 두 명 있다. 모두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조동진과 이동원이다. 아마도 생전에 둘은 가깝게 지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친분이 두터웠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내가 모두 좋아했던, 지금도 좋아하는 가수다. 할 얘기도 많다. 내가 그들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내 친구는 "레퍼토리 좀 바꾸지 그래 너무 그렇지 않니."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니?라는 건 꼰대 같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내 젊은 시절 나를 지탱해 준 노래들이다.


오늘 28일은 조동진의 기일이다. 2017년 암으로 일산 자택에서 영면했다.


올여름 유난히 조동진의 '나뭇잎 사이로'를 자주 들었다. 빨리 이 놈의 여름이 갔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여름은 벌써 가버렸나. 거리엔 어느새 서늘한 바람'이란 대목이 좋았다. '서늘한 바람'에서 등골이 시원해졌다. 그러나 나는 안다. 지금은 이 더위가 지겹지만 조금 지나면, 이 뜨거웠던 여름도 그리울 것이라는 걸.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내 또래들은 알지도 모른다. 지겨운데 그 지겨움이 금세 그리워진다는 걸 말이다. 서늘한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떨어지고 옷깃을 여미는 계절이 오면 아! 지금 이 무더위를 떠 올릴 것이다.


이 글은 조동진의 부고다. 조동진이 떠난 2017년 8월 28일은 단순하게 한 명의 가수가 떠났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음악을 너무도 사랑한 내 친구는 조동진의 사라짐에 대해 "한국포크음악의 고요한 울림이 꺼진 것이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위로받고 성장한 한 세대를 지켜준 등불이 사라진 것이다."라며 무척 애통해했던 기억이 난다. 맞다 그날, 우리는 조동진을 기리며 소주를 깠다.


하긴 우리가 조. 동. 진이라는 이름을 알려고 할 즈음, 이미 내가 살던 동네 레코드 가게 스피커를 통해 하루 종일 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말이 없던 청년이 기타를 하나 들고 나와 배가 있었네 작은 배가 있었네 라며 울듯 읇조렸다. 그리고 금방 울고 있나요...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노래했다. 이뿐인가. 겨울비 내리던 날, 흰 눈이 하얗게, 내가 좋아하는 너는 언제나... 노래를 아니 하나같이 아름다운 시를 줄줄이 들려주었다. TV에 나와서도 조동진은 별로 말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인기가 부담스럽다는 표정으로 보였다. 조동진은 화려한 무대보다 내면의 깊은 목소리를 쫒는 가수였다.


그때 우리는 감수성이 풍부한, 눈매 푸른 청춘들이었다. 노래가 그 청춘들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꼰대라는 소릴 들으면서도 '그때 그 노래'를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꽃'을 부르며 우리에게 감성을 불어넣어 주던 그 말없는 청년이 우리 포크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컸다는 걸 훗날 알았다.


우리는 음유시인이란 말을 자주 쓴다. 외국에 밥딜런이나 레너드 코헨 등이 있다면 우리는 조동진이 있었다. 진정한 음유시인 조동진이 있어서 김광석도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참으로 곤란하고 힘든 일이겠지만, 만일 위대한 한국음반 20개를 뽑으라면 나는 '조동진 1집'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 10곡이 수록돼 있는데 첫 곡 '행복한 사람'부터 마지막 곡 '다시 부르는 노래'가 모두 귀에 익다. 나는 지금 조동진 1집을 들으며 이 글을 쓴다.


조동진은 '음악은 상품이 아니라 삶을 담는 언어'라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죽음을 앞두고도 악상을 떠올리며 후배들의 무대를 걱정을 했다고 한다. 조동익, 장필순, 김광석 같은 뮤지션들이 그의 울타리 안에서 자라나 한국 대중음악계의 전통을 이어나갔다. 조동진은 한국 인디음악의 뿌리였다. 그로 인해 다양한 음악적 토양이 만들어졌다. 그의 삶이 좀 더 길었으면 우리들의 삶도 더 윤택해졌을 것이다. 너무도 아쉽다.



사족:이동원은 조동진이 떠나고 4년3개월 후 2021년 11월 14일 영면했다. 식도암으로 투병 중이던 이동원이 조동진의 부고를 접하고 얼마나 상심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두려웠을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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