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인 이주일
스타가 된다는 건 정말, 하늘의 별따기다. 대부분 무명으로 활동하다가 주목도 받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엔 그랬다. 잘 생겼다고 할수 없는 외모 때문에 숱한 수모와 역경을 겪으며 지방쇼, 서울 변두리 극장 무대를 전전해야 했다. 그렇다고 그게 견딜 수 없을 만큼 슬프기만 한건 아니었다. 그에게 기다림의 미학을 가르쳐 주었으니까.
그런데 운명이란 정말 묘한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가 되는 데는 2주일이면 충분했다. 그렇다고 대단한 데뷔전을 치른 것도 아니다. "얼굴이 못생겨서 죄송합니다."이 말 한마디면 됐다. 그 한 문장으로 그는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 조용필을 뛰어넘는, 대한민국 최고 방송 아이콘이 되었다. 이주일. 원래는 정주일이었는데 이 운명의 '2주일'때문에 이주일이란 예명으로 활동하고, 진짜 별이 됐다. 건국 이래 최고의 스타라는 말이 손색이 없는 스타 중 스타였다.
27일은 이주일의 기일. 그는 월드컵의 열기가 채 식지도 않았던 2002년 8월 27일 오후 3시 15분 일산 국립암센터 중환자실에서 영면했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한 지 11개월 만이었다. 사인은 폐암에 의한 호흡부전. 향년 61세. 너무 이른 나이다. 아... 61세라니.
이주일은 무대 위에서는 국민을 웃고 울리는 광대였다. 광대라는 말을 좋아했다. 무대에서 우물쭈물 거리는 말투로 서민의 애환을 담은 날카로운 풍자를 자유롭게 구사했다. 나는 그가 극 중 캐릭터로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이주일, 그 자체로 인기를 끈 것에 주목한다. 그래서 그의 죽음이 국민들에게 더 큰 슬픔을 안겨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이다.
이주일에 대한 숱한 이야기는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수없이 쏟아져 나온다. 무명에서 스타로 그리고 정치인으로. 구구절절 써 봤자 입과 손만 아프다. 하지만 나는 그가 폐암 판정을 받고 투병 중 출연한 '금연광고'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스타가 자신의 망가진 모습을 그대로 노출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주일은 정부 관계자의 두 번에 간곡한 제의를 받고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나는 그게 이주일이 다른 연예인이 갖지 못한 '거인의 면모'라고 생각한다. 비록 남을 웃기는 희극인이지만 그는 큰 산이었다.
"담배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 저도하루에 두 갑씩 피었습니다. 이제 정말 후회됩니다. 흡연은 가정을 파괴합니다. 국민 여러분 담배 끊어야 합니다."
이 광고 덕분에 380만 명이 금연했다고 한다. 나도 거기에 포함된다. (고마워요 주일이 형!) 2002년 60%였던 성인 흡연율이 현재 34%로 줄었다. 이주일이 금연광고에 출연한 지 23년 만이다.
코미디언이었지만 그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코미디가 단순한 오락이 아님을, 코미디가 창조해 내는 웃음이 사회와 인간의 삶을 바꾸는 힘의 원천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가 정치인의 길을 선택한 것도 코미디언의 객기가 아니라 고뇌의 결정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정주영 회장과의 인연을 뿌리칠 수 없었던 것도 있지만, 나름 정치적 성향이 강했다고 본다. 어느 공개방송이었는데 이주일이 10살짜리 꼬마와 악수를 하며 갑자기 "야권통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하고 물어 좌중을 웃겼던 기억이 난다. 그런 순간적인 재치도 정치적 성향이 있어 가능하지 않았을까.
80년 8월 연예인 숙정작업에서 몇몇 연예인이 '저질'로 낙인찍혀 하루아침에 방송사에서 쫓겨나는 불운을 맞았다. 이주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때 밤업소에서 출연해 펼쳤던 그 유명한 개그는 이랬다.
"제가 방송 출연이 금지된 것은 다 중계방송을 잘못해서 그런 겁니다. 연 날리기 대회였습니다. `네 많은 연들 이 날고 있습니다. 휘황찬란한 연들입니다. 한 년, 두 년, 세 년 참으로 많은 년들입니다. 한국년, 중국년, 일본연도 있습니다. 온갖 잡년은 다 모였습니다. 턱 나온 년도 있고, 까진 연놈도 있습니다."
이듬해 '뭔가 보여주겠습니다'라는 유행어와 함께 화려하게 브라운관에 다시 복귀한 후에도 간간이 정치권을 풍자하는 내용을 코미디로 대중의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었다. 그에게는 그런 강단이 있었다.
이주일은 마침내 국회원이 됐다. 4년동안 의정생활을 끝내고 던진 이 유명한 말은 지금도 회자된다.
"정치를 종합 예술이라고 하지만 코미디라는 생각밖에는 안 듭니다. 여기에는 나보다 더 코미디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4년 동안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챗봇에게 물어봤다. 이주일이 우리에게 남긴게 뭘까.
"눈물이 가득한 날에도 웃을 수 있는 힘, 그것이 그가 평생동안 우리에게 가르쳐 준 삶의 방식이었다"
사족: 27일은 공교롭게도 코미디계 1세대 거목 구봉서의 기일이기도 하다. 구봉서는 2016년 90세로 영면했다. 이주일은 생전 대 선배였던 구봉서를 어려워했지만 둘 사이 우애는 돈독했다고 한다. 힘든 시절, 우리 국민들에게 웃음과 용기를 주었던 두 분께 큰 절 올립니다. 부디 영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