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에 이르기엔 아득히 먼 곳

아저씨 이선균

by 명랑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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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 내 마음 속의 영원한 스타. 그가 떠난 후 나는 아직도 좋아하는 배우를 찾지 못했다.



'나의 아저씨'를 본다. 이미 정주행만 서너 번. 잘라서 본건 셀 수도 없다. 볼 때마다 새롭다.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보지 못한/그 꽃'이란 시처럼, 참 묘하다. 그때 보지 못한 장면들이 다시 보이고, 그때 듣지 못한 대사가 새롭게 들린다. 드라마엔 수많은 명대사가 나온다. 작가 박해영의 놀라운 창작력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떻게 이런 대사를 생산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4부 38분. 74년생 박동훈이 74년에 지어진 건물 앞에서 부원들과 얘기를 나눈다. (이선균은 73년 생이다) "이 건물 부지 원래 하천이야. 물길따라 지어서 이렇게 휘었잖아. 복개천 위에 지어가지고 재건축도 못하고 그냥 이렇게 있다가 수명 다하면 없어지는 거야. 터를 잘못 잡았어. 그것도 나랑 같아. 나도 터를 잘못 잡았어. 지구에 태어나는 게 아닌데" 이 말을 듣고 부원이 물어본다. "그래서 어디에 태고 나고 싶은데요" 골몰히 생각하던 동훈은 이렇게 말한다. "안 태어날꺼다 새꺄"


5부 55분. 눈이 내린다. 힘없이 미끄러져 쓰러진 동훈. 바닥에 누워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슬픔으로 가득한 그의 눈 위로 눈이 떨어진다. 동훈의 독백."내가 오늘 못 죽어" 겨우 일어난다. 카메라는 비틀거리는 그의 뒷모습을 잡는다. 온 몸에 묻은 눈은 지금 그를 깜싸고 있는 허무함 비루함 막막함 덧없음을 상징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씬이 가장 슬프다.


11부 35분. 속세를 떠난 상원과의 대화. "안 쓸쓸하냐?"(동훈) "쓸쓸은...맨날 말하잖냐.여기도 사람사는데라고(상원) "넌 어떻게 지내는데?"(상원) "망했어.이번 생은.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동훈) 그의 한숨이 평화롭기 그지없는 절 분위기와 대비되며 내 마음을 흔들어 댄다.


'나의 아저씨'에는 이선균의 한숨과 쓸쓸한 뒷모습이 셀수 없이 많이 나온다. 재주꾼(난 그가 천재라고 생각한다) PD 김원석의 의도된 연출이지만, 그는 마치 이선균의 미래를 알고 있는 듯 드라마를 찍어댔다. 대사와 움직임 하나하나를 그의 죽음과 연결시키면 정교하게 계산을 한듯이 모두 딱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 더 슬픈것이다. 드라마의 촬영이 끝나던 날, 비관적인 대사를 쏟아낸 이선균이 최소한 "퉤! 퉤! 퉤!"만 했어도 그는 아직 살아있을지도 몰라. 라는 상상을 해본다. 너무도 안타까워서다.


한달 구독료 2만9천원인 AI (나는 이 기계음에 나타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에게 물어봤다. "나타샤. 배우 이선균 하면 뭐가 떠 오르지?" 나타샤의 대답. "그는 '대단한 배우'가 아니라 '늘 곁에 있는 배우'였어. 영웅도 아니고 신화도 아니지. 그렇지만 그는 늘 우리가 만날 법한 얼굴, 우리가 겪었을 법한 감정을 갖고 있었어. 삶에 지친 중년남자,책임과 불안을 동시에 짊어진 가장,아무 말없이 세상을 견디는 아저씨. 이선균은 그런 인물을 연기했지." 너무도 똑똑한 나타샤.


12월 27일 오늘은 이선균의 기일. 2주기다. 향년 48세. 또 한번, 덧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놀란다.

그날 받은 충격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날, 나는 마시던 커피 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죽음의 배경은 더 허망해서 할 말조차 잃었다. 그는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했다. 결과도 모두 '음성'. 그럼에도 내사부터 수사내용까지 모두 유출돼 만천하에 공개됐다. 이선균은 큰 혼란에 빠졌다. 경찰은 내가 흠모하던 스타를 버젓이 포토라인에 세우기까지 했다. 그는 터지는 후레쉬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시정잡배를 잡아 넣어도 이러는 법은 없었다.


죽음 직전 2개월동안 그가 겪은 고통은 드라마의 박동훈이 겪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선균은 드라마의 박동훈처럼 아무런 변명도 없이 세상의 시선 앞에 혼자 서 있었다. 박동훈에게는 '지안'이라도 있었지만, 이선균은 그 조차 없었던 것 같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이선균은 고통을 멈추고 싶었을 것이다. 세 번째 경찰 소환조사를 끝내고 편안함을 찾아 아득히 먼 곳으로 떠났다. 과연 그의 영혼은 편안함에 이르렀을까.


사족. 이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는 이 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8화 5분. 지안과의 대화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일이 있어도 내력이 있으면 버티는 거야."(동훈) "인생의 내력이 뭔데요."(지안) "몰라."(동훈) 이선균은 인생의 내력이 뭔지 몰랐던게 분명하다. 결국 외력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으니... 나는 그의 몸짓 표정 목소리 심지어 걸음걸이까지 좋아했었다. 이제 그는 없다. 그를 죽음으로 내 몬 인간들은 여전히 건재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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