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감독 유영길
누구나 좋아하는 한국영화 한편쯤은 마음속에 품고 있을 것이다. 최애영화. 한국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나도 물론 그런 영화가 있다. 너무 많아 그때그때마다 다르게 말하는 게 문제지만, 그래도 늘 내 다섯 손가락 안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건 임순례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허진호의 '8월의 크리스마스'다. 이 두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VHS 테이프로 수없이 돌려보곤 했다. 지금도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찾아서 본다. 우울한데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을 볼 수는 없는 노릇.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풋풋한 황정민과 류승범,박원상,박해일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고, 이젠 떠나버린 이얼의 노래를 듣는 것도 슬프지만, 기쁘다. 특히 여수의 어느 밤무대에서 '사랑밖에 난 몰라'를 모처럼 행복하게 부르는 오지혜를 비추던 카메라가 뒤로 서서히 조심스럽게 빠져나가는 라스트 씬은 볼때마다 가슴이 시리다. 첫 장면 역시 와이키키 밴드가 노래를 부르는데 카메라는 천천히 뒤로 빠지며 비루한 홀 전체를 비춘다. 의도된 연출이지만 이런 수미상관법은 정말 최고다. 또 하나. 영화 내내 살아 펄떡펄떡 뛰는 최지열 촬영감독의 날것이 나는 너무 너무 좋다. 볼 때마다 임순례감독에게 경의를 표하는 걸 나는 절대 잊지 않는다. " 임순례 감독님.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드셨나요... 감사합니다." 그런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큰 영화관에서 혼자 본 경험이 있다. 내가살던 동네에 몇개 극장이 있었는데 그중 한 극장의 주인과 내가 친했다. 아니다. 극장 주인 아들과 친했다. 영화관 앞을 지나가는데 그 아들을 만났다.
"이 영화 봤어?"(극장주인 아들)
"아니. 제목이 이상해. 8월의 크리스마스라니..."(나)
"들어가서 봐봐. 깜짝 놀랄껄. 오늘 마지막 날."(극장주인 아들)
그렇게 극장안에 들어갔다. 관객이 아무도 없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영화가 끝났다. 허진호. 유영길. 아... 나를 울린 몇장면이 있었다. 아니다. 보는내내 찔끔찔끔 울었다. 영화를 너무 잘 만들어서 울었고 너무 잘 찍어서 울었고 내용이 너무 슬퍼서 울었다.
우리는 대부분 영화를 기억하고 감독을 기억하고 출연한 배우들을 기억한다. 누구도 이 영화를 누가 찍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나마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뛰어난 촬영감독이 많이 배출되면서 전보다 나아진 건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는 촬영감독이 누군지를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오늘은 '8월의 크리스마스'의 유영길 촬영감독의 기일이다. 그는 1998년 오늘 뇌출혈로 아깝기 그지없는 생을 마감했다. 향년 63세. 마구마구 기량을 뽐낼 나이였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그의 유작이 됐다. 최고의 촬영감독이 마지막으로 찍은 작품이니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이 영화를 유영길촬영감독님의 영전에 바칩니다'라는 자막은 공교롭게도 영화 마지막 그 유명한 한석규의 내레이션 대사 "내 기억 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 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물론 영화 속 다림에게 보내는 메시지이지만, 매번 볼 때마다 나는 유영길 감독에게 보내는 허진호 감독의 헌사로 들린다.
유영길은 '서편제'를 찍은 정일성, '투캅스'를 찍은 정광석과 함께 충무로의 3대 촬영감독이라 불렸다. 하지만 젊은 영화감독들은 유독 유영길을 찾았다. 미국서 돌아온 하길종 감독이 데뷔작 '화분'을 유영길과 작업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유명한 '하길종과 영상시대'도 유영길과 함께 했고 특히 1980년대 중반 배창호, 장선우, 박광수, 정지영 등 한국영화 뉴웨이브를 이끈 감독들 옆에도 유영길이 있었다. 코리아 뉴웨이브 감독들의 데뷔작을 모두 그가 촬영했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알겠지만 대단한 영화를 많이 찍었다. 그가 없었다면... 한국영화, 상상할 수도 없다.
유영길은 자연 그대로의 빛을 사랑하는 감독이었다. 영화감독으로 첫발을 디딘 새파랗게 젊은 허진호 감독이 베테랑 유영길 감독과 '8월의 크리스마스'를 찍은 것은 허감독에게는 큰 행운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석규가 스쿠터를 타고 온 몸에 햇빛을 받고 오는 첫 장면과 바로 연결되는 다음 장면, 잠에서 깬 한석규의 얼굴을 비치는 햇살의 아름다움. 사진관으로 들어오는 아침 점심 저녁 빛의 변화. 다림이 퇴근하고 사진관으로 달려오던 그 저녁거리의 불빛, 그 질감. 유영길이 아니었으면 만나기 어려웠을 장면들이다. 물론 내 생각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는 자연광을 담고자 했던 유영길의 고민이 가득 차 있다. '다시 보기'를 하면서 숨은 그림 찾듯 하나하나 더듬어 보라. 영화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허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를 찍으면서 '빛'이 주는 인상에 대해 유감독이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최고의 베테랑 촬영감독이면서도 빛을 어디에 두고 어떤 방향으로 찍어야 할지 고민을 한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비록 유영길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을 보고 촬영감독으로 입문한 영화인이 한 둘이 아니다. 홍경표,정정훈,이모개,이성제,고락선,최영환 등등 최근 영화를 보면 그들의 신선한 촬영기법에 깜짝 놀라곤 한다. 이들의 손에 의해 '8월의 크리스마스'같은 아름다운 영화가 다시 나올수 있기를...기대해 본다.
사족: 국내외 여러 매체는 고 위르겐 힌츠페터가 광주항쟁을 세계 최초로 촬영한 언론인이라고 소개해왔는데 실상은 유영길이 먼저다. 유영길은 1975년부터 1991년까지 미국 CBS 방송국의 서울 특파원으로 활약했다. 1980년 5월 19일 유영길이 촬영한 영상은 미국 CBS 이브닝뉴스를 통해 처음 방송됐다. 세계 최초로 광주의 참상이 공개된 순간이었다. 광주 자료영상 화면에 CBS가 있는 건 유영길이 찍은 것이다. 그의 필모그래피에 '칠수와 만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우묵배미의 사랑' '꽃잎' 등 사회성이 짙은 작품들이 들어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