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완서
평양이 고향인 엄마는 생전에 6.25 전쟁에 대해서는 거의 입을 닫으셨다. 피난길이 어땠냐고 물어도 묵묵부답. 기억하기 싫다는 뜻이다. 그러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이런 말을 하셨다.
"너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니. 끔찍해. 아마 개성 부근이었을 거야. 우리는 이쪽에, 6촌네는 길 건너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그날 비행기 공습이 있었어. 운도 없지 뭐니. 포탄이 6촌네 묵은 곳으로 떨어진 거야. 집에 불이 났는데 내 또래였던 애가 소리 지르며 뛰어나오는데... 온몸에 불이 붙은 채로 말이야. 평생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더라고. 꿈에도 가끔 나타나고. 다 얘기하면 끝이 없지... 소설이 따로 없어." 넋 나간 듯 중얼거리는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이런 적도 있다. "우리가 살던 집이 평양 공설운동장 옆이었어, 대신동. 해방되고 김일성이 온다고 평양 공설운동장에서 환영식을 했어. 사람들이 엄청 모였더라고. 바로 내 옆에 젊은 사람이 있었는데 김일성이었어. 새파랗게 젊더라고. 그때 내가 아홉 살이어서 다 기억나."
엄마 또래로 피란 내려온 실향민들에게는 나름 아픈 기억들이 있다. 남한에 정착한 후 억척스럽게 살아가야 했던 실향민의 고통과 눈물은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개풍이 고향인 소설가 박완서에게 아픔을 품고 살았던 엄마는 이렇게 묘사된다.
'어머니의 모습에는 운명에 순종하고 한을 지긋이 품고 삭이는 약하고 다소곳한 여자 티는 조금도 없었다. 방금 출전하려는 용사처럼 씩씩하고 도전적이었다. 어머니는 한 줌의 먼지와 바람으로써 너무나 엄청난 것과의 싸움을 시도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그 한 줌의 먼지와 바람은 결코 미약한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어머니를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어머니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분단이라는 괴물을 홀로 거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어머니는 나더러 그때 그 자리에서 또 그 짓을 하란다... 아아, 나는 그 짓을 또 한 번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엄마의 말뚝' 중에서)
오늘은 우리의 소설가 박완서 15주기. 2011년 담낭암으로 투병 중 먼 길을 떠났다. 향년 80세. '국민작가''소설가의 소설가'라는 명성답게 15주기를 맞아 출판사들이 앞다퉈 책을 선보이고 지자체에선 추모낭동공연이 열리는 등 작가를 기리를 행사들을 준비 중이다. 역시 발이 빠른 문학동네가 소설가 31인이 완완서의 단편 97편 중 10편을 선정해 '쥬디 할머니'를 선보였다.
박완서는 우리 모두 알다시피 1970년 '여성동아' 장편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그때 나이 40세. 아이는 다섯 명. 말 그대로 이 전업 주부작가는 40년간 소설, 수필, 칼럼 등 글에 홀린 사람처럼 써대며 박경리와 감히 어깨를 견줄만한 한국문학의 대표문인이 됐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슬픔도 많았다. 우리가 88 올림픽으로 들떠 있던 1988년. 남편에 이어 외아들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994년 출간된 산문집 '한 말씀만 하소서'는 자식을 떠나보낸 자각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낸 처절한 일기다.
박완서가 대중소설을 쓰면서도 일관되게 문학성을 유지한 힘은 뭘까 가끔 생각해 본다. 나는 그걸 소설이든 산문이든 칼럼이든 모든 글에 나타난 박완서가 용감하고 진실하게 그 시대를 증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순수문학과 상업주의 문학의 경계에 서 있으면서도 독자나 작가에게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내 생각이다.
여성작가이기도 하겠지만 박완서의 여인들의 심리묘사는 천부적이다. 사소한 에피소드를 이어나가는 재주도 그렇거니와 사건의 전개나 인물의 창조를 위해 그 에피소드를 어디에 적절하게 사용하면 좋은지 작가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박완서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이었다. 나는 박완서의 많은 작품을 접했지만,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는 건 폐암으로 남편을 떠나보낸 아내(박완서)의 심정을 담은 단편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산문을 더 좋아한다.
사족: 박완서는 엄마의 말뚝 시리즈를 남겼다. 소설은 6.25 전쟁 혼란 가운데 요절한 아들의 죽음과 억척스러운 서울살이, 그 고통에서 어머니가 평생 벗어나지 못했음을 딸(박완서)의 시선으로 들려준다. 박완서는 1981년 '엄마의 말뚝 2'로 제5회 이상문학상 수상했다. 수상식장에서 그 유명한 수상소감 '미처 참아내지 못한 통곡'을 남겼다.
"제가 문단이란 데를 어림짐작으로 등단한 지가 11년이 되었고 그동안 다작이라 우려해 주신 분이 계실 만큼 부지런히 써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엄마의 말뚝 2'에 상을 주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왜 하필이면 이 작품을? 하고 흠칫 놀라면서 부끄러웠고, 피하고 싶었고, 숨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이 작품의 객관적인 평가에서도 제가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던 것은 쓰고 나서 곧 참지 못하고 쓴 것을 후회한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참았어야 하는 것을, 정 못 참겠으면 울 안에서의 통곡, 통곡으로 끝냈어야 하는 것을... 저는 그 작품이 활자가 되어 돌아다니는 동안 줄곧 이렇게 불편하고 불안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소설이기 이전에 한바탕 참아내지 못한 통곡 같은 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