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와 마주한 가을밤
가끔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과거 속의 어린 나와 마주할 때가 있다.
오늘은 장롱 깊숙이 자리하고 있던 상자 속에서 오래된 일기장을 꺼냈다.
겉표지는 낡았지만, 연필로 꾹꾹 눌러쓴 글씨는 여전히 선명했다.
짧은 문장 속에는 지금의 내가 잊고 지낸 마음이 가득 있었다.
“친구랑 다투었다. 내일은 화해하고 싶다.”
“엄마가 만들어주신 음식이 제일 맛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 시절의 나는 작은 일에도 쉽게 흔들렸고,
사소한 기쁨에도 크게 웃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들인데,
그때의 나에겐 하루를 통째로 흔드는 일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일기장 속에는 그때의 감정까지 전부 담겨있는 것 같이 보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에 비하면 부족했지만, 솔직했다.
좋아하는 것을 숨기지 않았고, 서운한 마음도 그대로 적어 두었다.
지금의 나는 더 많은 것들을 알고, 더 그럴듯한 표현을 쓸 수 있지만
정작 마음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일에는 서툴러졌다.
가을밤, 오래된 일기장을 넘기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내가 남겨둔 문장은 여전히 나를 일깨우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묻는 듯했다.
“너는 지금도 잘 살아가고 있니?”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속으로 대답했다.
“그래, 여전히 하루를 살아내고 있어. 네가 남겨둔 마음 덕분에.”
어린 시절의 내가 그리워지는 밤, 나는 오래된 일기장을 덮으며 알았다.
과거의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언제든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워 줄 가장 오래된 친구로 곁에 남아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