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먕씨의 하루, 그리고 나고야

일본에서 만난 한국

by Myang

처음으로 저녁 약속이 생겼다.

국제센터의 일본어 교실에서 만난 한국인들이다. 비슷한 나이의 두 사람과 친분이 생기면서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설렌다.

남편이 재택을 하는 날이어서 외출을 하는 나를 배웅해 주었다. 조심히 잘 다녀오라고, 즐거운 시간 보내라고.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 괜히 기분이 들뜬다.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저녁 약속이 있음을 자랑한다. 나를 너무 잘 아는 친구는 같이 기뻐해주었다.

참 고마운 녀석이다.


오늘의 최종 약속장소는 신사카에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인데, 이곳에 요즘 대형카페(한국 카페와 비슷한)도 많이 생기고 한국 식당이 많이 있다고 한다. 사카에는 많이 가봤지만 바로 옆에 있는 신사카에는 과연 어떤 곳 인지 궁금하다.

워홀로 온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한식이 먹고 싶다고 해서 신사카에에 있는 구글 평점이 상당히 좋은 한식당을 가기로 했다. 나고야역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언니를 만나서 같이 신사카에로 이동하기로 했다.

어제 수업 시간에 봤는데 이렇게 또 보니 반갑다.

만나자마자 나보다 한살이 많은 언니는 이것저것 선물을 건넸다. 어제 요즘 피부에 자꾸 뾰루지가 올라와서 고민이라고 얘기를 했더니 화장품을 챙겨주고, 간식도 챙겨주었다. 고마워요.

신사카에는 나고야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3 정거장만 가면 된다. 사카에역 바로 다음 역이다. 언니도 신사카에는 이번이 두 번째라 잘 모른다고 했다.

시간이 애매해서 식당까지 먼저 슬슬 걸어갈까 했는데 경로를 탐색하려고 하니 "정기휴일"이라는 알림이 떴다. 약속장소를 변경해야 했다.

일단 눈앞에 보이는 코메다커피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나머지 일행을 기다리기로 했다.

카페에서 여기저기 한식당을 검색을 하다 처음 가려고 했던 식당 다음으로 평점이 높은 한식당을 가기로 결정했다.


남은 일행이 코메다 커피에 도착을 했고 셋이서 함께 차선책으로 찾은 한식집으로 가는 길.

-어라? 여기도 네네치킨도 있네? (나고야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끊이지 않는 수다. 즐겁다.

처음 오는 동네 구경을 열심히 해본다.

-오~ 이런 것도 있네? 우리 동네랑은 전혀 다른 분위기네.

-어머? 여긴 뭐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식당을 향해 가는 길에 나고야의 그 무섭다는 바람을 만났다. 으~ 추워.

나고야 바람은 정말 강하다.

조금 전까지 봄날씨 같았는데 바람을 만나니 한순간에 한겨울로 계절이 바뀐 느낌이 들었다.


매서운 바람을 뚫고 드디어 도착한 한국식당.

그런데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순간 멈칫.

-어쩌죠?

-다른 데 갈까요?

-네네치킨 갈까요? 치킨이 먹고 싶기도 한데.

-그냥 들어가 보죠, 뭐

잠시의 망설임을 뒤로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자리 안내를 받고 메뉴판을 보니 정겨운 음식들이 한가득이다.

일본 안에 있는 작은 한국. 역시 한식이 최고지. 사진만 봐도 미소가 스르르. 기분이 좋다. 군침이 돈다.

다시 시작된 고민의 시간. 먹고 싶은 메뉴가 너무 많아서 메뉴를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우리가 결정한 건.

추우니까 따뜻한 국물이 필요하니까 감자탕.

집에서 잘 만들어 먹지 않는 해물파전.

그리고 매콤한 볶음 요리로 곱창볶음.

공깃밥과 생맥주.


한국식당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커버가 씌워진 숟가락. 위생숟가락집은 파주에서 생산된 것이었다. 반갑네.

생맥주로 건배를 하고 한 모금 마셨다. 역시 나마비루!! 맛있다.

제일 먼저 나온 음식은 해물파전이었다.

오~ 그럴듯한 생김새.

접시에 한쪽을 담아 입안으로.

-어머!! 이거 맛있어요.

한 입 먹었을 뿐인데 너무 맛있었다. 해물도 많이 들어가 있고 파도 달달하고.. 한국분이 요리하신 건가? 하는 착각이 들만큼 한국에서 먹던 파전맛이 났다.

파전을 먹고 나니 남은 음식들에 대한 기대감이 급상승했다.

다음으로 나은 음식은 감자탕.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 놓인 전골 안에는 돼지뼈와 감자, 깻잎, 들깻가루까지 야무지게 뿌려져 있었다. 비주얼로 이미 감자탕은 합격이다.

그릇에 국물과 고기, 감자, 야채를 골고루 담아본다. 냄새부터 맛있다.

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감자탕이던가.

떨리는 마음으로 국물을 한입.

-와!! 너무 맛있어요. 진짜 감자탕인데요?

그랬다. 비주얼과 냄새뿐만 아니라 맛까지도 온전한 감자탕이었다. 한국에서 먹던 그 감자탕.

두 번째 음식까지 너무 맛있게 먹다 보니 남은 곱창볶음에 대한 기대는 더 커졌다.

드디어 나온 마지막 음식. 과연 어떨까?

-어? 이것도 맛있는데요? 여기 맛집이네요.

그랬다. 이곳은 맛집이었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랬다.

다들 맛있다는 말을 남발하며 정말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음식을 먹는 내내 우리는 계속 수다를 떨었고 많이 웃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역시 한식이 제일 맛있다며 다들 밥그릇을 싹싹 비웠다.


물론 여기저기 한식당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매운맛이 한국에서 먹던 맛과는 조금 다른 매운맛이다. 이날 우리가 표현한 걸로는 "한국의 매운맛을 흉내 낸 매운맛의 음식"이다.

저 표현이 마음에 확 와닿았다. 흉내 낸 매운맛.

모처럼 한식을 맛있게 먹었다며 다들 기분 좋아했다.

이렇게 우리의 첫 번째 저녁 모임이 끝났다. 다음의 모임을 기약하며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일본에 와서 가장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갔다.

여전히 나의 외출이 걱정스러운지 남편이 마중을 나왔다.

-재밌었어?

-응. 재밌었어.

-그래, 그럼 됐어.

집에 와서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남편에게 종알종알거렸다. 다음에 그 식당에 같이 가보자는 말과 함께.


매일 집에서 한식을 만들어 먹기 때문에 한식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한식당에 가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 역시도 한식이 그리운가 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머릿속에 온통 먹고 싶은 한식들이 스쳐 지나간다.

몰랐는데 아무래도 나, 한식 러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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