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먕씨의 하루, 그리고 나고야

일본 생활 - 재난 대비

by Myang

일본에 이주를 하기 전, 여행자의 신분으로 일본에 머물러 있던 11월의 어느 저녁 갑자기 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설마, 이거 지진인가? 진짜? 어라?

후다닥 뛰어서 책상 아래로 몸을 숨겼다. 남편도 함께 책상아래로 쏘옥.

1분 정도 흔들림이 있었다. 마치 멀미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집 전체가 흔들거리니 이런 느낌이 드는구나.

처음 느껴 본 재난에 대한 두려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걱정이 시작된 것 같다.

평소에도 워낙 걱정봇이라 남편이 걱정을 했는데 그 걱정은 현실이 되었고 나는 그때부터 매일 재난용품과 재난대비에 대한 것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워낙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이기에 재난용품의 종류도 다양하고 대비 정보도 상당히 많았다.

한국에 살 때는 검색조차 해 본 적이 없었는데..

환경이 바뀌었으니 안 할 수가 없지. 내 몸은 내가 지킨다.


먼저 재난 정보를 빠르게 알아야 대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어플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어플 중에서 피난처, 안전정보, 기상정보 등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일본피난처" 어플과 외교부에서 설치를 권장했던 "Safety tips" 도 야무지게 스마트폰의 메인 화면에 설치를 했다.

집 근처 피난처의 위치도 미리 파악을 해 두었다. 마음속으로 제발 이곳을 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보를 알았으니 물품을 준비해야 했다. 일본정부에서는 성인이 3일 정도 집에서 살 수 있는 비상식량과 물, 재난용품을 구비해 놓을 것을 권장한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과 비상식량이 아닐까 싶었다. 보존수의 존재도 이때 처음 알았다. 당연히 생수를 구입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생수보다 유통기한이 긴 보존수를 구입하여 집의 창고 등에 보관을 해 놓고 유통기한이 임박했을 때 마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생수와 보존수를 모두 준비하기로 했다. 생수는 집의 보관장소에 넣어두고 보존수는 재난가방에 넣어 놓을 생각이었다. 캠핑가방을 재난가방으로도 사용할 생각이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니 매우 다양한 비상식량을 팔고 있었다. 일본어 선생님의 추천은 캔으로 된 식량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제품보다 캔으로 된 식량이 보존기간이 길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내가 구입한 건 보존기간이 2030년까지인 빵이었다. 구입한 빵의 일부는 집의 보관장소에 넣어 두고, 일부는 캠핑 가방 안에 넣었다. 추가로 캔에 들어 있는 비스킷과 건빵, 초콜릿 양갱 등 몇 가지 비상식량을 구매하기로 했다.


식량 다음으로 제일 먼저 구입한 것은 헬멧이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머리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책상 아래로 들어가거나 가방 등으로 머리를 감싸는 것도 머리 보호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헬멧을 살 줄이야. 하하

나는 접이식 헬멧을 샀다. 다양한 방식의 접이식 헬멧을 팔고 있었고 그중에 리뷰가 좋은 것으로 골랐다. 접이식이라 책가방에도 쏙 들어가는 콤팩트한 사이즈였다.

헬멧은 각자의 책상 옆에 따로 두었다. 손만 뻗으면 바로 챙겨서 쓸 수 있도록.

그리고 음식을 먹으면 피할 수 없는 생리현상 처리를 위한 휴대용 화장실을 구입했다. 휴대용 화장실도 워낙 다양한 종류와 다양한 가격의 제품들이 있었다. 물론 100엔 샵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적당한 가격의 무인양품 제품으로 준비를 했다.

이 외에 체온을 유지해 줄 보호담요와 바디물티슈도 구입을 했다.


캠핑 장비 중에서 손전등, 라이트, 침낭, 1인용 에어매트, 우비, 일회용 비닐, 장갑 등을 캠핑가방에 넣어 두었다. 캠핑 장비가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나고야 국제센터의 일본어 교실에서 재난교육을 받았는데 그때 알려주었던 것 중 하나는 외국인의 경우 재류카드와 여권의 복사본을 따로 재난 가방에 넣어두라고 얘기를 해주었다. 위급상황에서는 복사본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지진발생 시의 피난처와 쓰나미가 일어났을 때의 피난처가 다르기 때문에 집에서 가장 가까운 피난처를 낮과 밤에 가보라고 했다. 길이 헷갈리지 않도록 미리 확인을 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알려주었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바로 집을 나가는 것은 아니고 출입구를 먼저 확보를 하고 흔들림이 멈출 때까지 집에 대기를 했다가 흔들림이 멈추면 재난가방을 메고, 헬멧을 쓰고 피난처로 빠르게 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준비한 이 모든 것들이 그저 나의 걱정으로 마무리되기를 바랄 뿐이다. 걱정봇의 걱정으로 일어난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으며 남편과 비상식량을 먹으며 하하 호호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어본다.

혹시 나와 같이 일본에 머무는 동안 일어날지도 모르는 재난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거나, 재난 대비를 하고 싶은데 막막한 사람이 있다면 나의 이야기가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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