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카인과 아벨

카인, 셋

by 티나부

카인

창세기 4장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이다. 카인과 아벨이라는 이름은 인간의 선악의 대비로 많이 인용이 되어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그 이름을 알 것이다.


카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의 아들들로 카인이 아벨의 형이다. 아벨은 양치기가 되고 카인은 농부가 되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카인은 몹시 화를 내여 얼굴을 떨어뜨렸다. (창세기 4장 3절~ 5절)


이 이야기에서 드는 의문은 '신은 왜 카인과 그의 제물을 굽어보지 않으셨을까?'이다.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내용이 6절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주님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창세기 4장 6절, 7절)

이 이야기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숨은 것도 다 보시는 주님께서 카인의 속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미리 경고를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나를 소름 돋게 한 문장은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라시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이다. 죄악은 바로 문 앞에서 내가 옳게 행동하지 않는 그 순간을 노리고 있구나.


"늘 깨어 기도하여라" (루카 복음서 21장 36절) 예수님의 말씀과 "기쁘게 떳떳하게" 두봉 주교님(1929~2025)의 말씀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카인이 아우 아벨에게 "들에 나가자."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였다.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창세기 4장 8절, 9절)


이로써 카인은 질투로 동생을 죽인 잔인한 악인이며 신 앞에서 조차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사악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사건은 성경에 기록된 최소의 살인 사건이며 친족 살인이다. 이로써 카인은 악인을 이야기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이름이 되었다.


이제 너는 저주를 받아,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네 아우의 피를 받아 낸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 네가 땅을 부쳐도, 그것이 너에게 더 이상 수확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될 것이다." (창세기 4장 11절, 12절)


신은 카인에게 합당한 벌을 내리시고 카인은 반성은 커녕 그 벌을 어떡해서든 줄여보려고 사정을 하는 모습에서 '역시나 카인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인은 전형적인 악한 소인배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카인이 주님께 아뢰었다. "그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큽니다. 당신께서 오늘 저에게 이 땅에서 쫓아내시니, 저는 당신 앞에서 몸을 숨겨야 하고,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되어, 만나는 자마다 저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창세기 4장 13절)


나도 어느 부분에서 카인과 같은 어리석은 소인배 악인의 모습을 분명 가지고 있으리라. 그리고 누구나 카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옳게 행동하지 않는 그 순간에 내 속에 숨어있던 카인이 얼굴을 드러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나 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을 것이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는 카인에게 표룰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창세기 3장 15절)


카인은 그의 죄로 인한 사회적 비난과 멸시를 걱정하는데 신은 위와 같이 말씀하셨다.

카인은 그 땅에서 쫓겨나 에덴의 동쪽 놋 땅에서 살았다고 성경에 쓰여있다. 신은 아무리 악한 악인이더라고 벌은 줄 지언정 그의 목숨만은 지켜주신다.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신은 인간이 반성할 기회를 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나는 루카 복음서 15장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카인이 아벨을 죽여 버려, 하느님께서 그 대신 다른 자식 하나를 아담에게 세워 주셨다. 그가 셋이다. 셋은 방주로 유명한 노아의 조상이다.


아담의 자손들

아담 -> 셋 -> 에노스 -> 케난 -> 마할랄엘 -> 예렛 -> 에녹 -> 므투셀라 -> 라멕 -> 노아 (노아의 방주)


라멕이 백팔십이 세 되었을 때 아들을 낳고, "이 아이가 주님께서 저주하신 땽 때문에 수고하고 고생하는 우리를 위로해 줄 것이다." 하면서, 그의 이름을 노아라 하였다. (창세기 5장 28절, 29절)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쩌면 '인간의 내면에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아벨의 모습도 악한 카인의 모습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늘 깨어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얼굴을 들고 사는 삶,

떳떳하게 사는 삶,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지 나를 되돌아본다.


5장은 인류의 타락과 신의 후회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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