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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l 11. 2023

그날, K-부녀회가 면사무소 직원에게 한 일

K-부녀회가 최고다.

2023. 7. 10. 복된 날

< 사진 임자 = 글임자 >


"오늘 점심은 부녀회에서 복달임 음식을 준비하신다고 합니다. 장소는 OO 마을 회관이니, 직원 여러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딱 이맘때였을 것이다.

사무실에 출근하고 컴퓨터를 켜서 새로 온 공문을 확인하고 내가 올렸던 공문이 결재가 다 끝나서 발송까지 됐는지 확인도 하고 메일을 살펴보다 보면 '일방적이고도 반가운' 점심 약속 메일이 살포시 도착해 있곤 했었다. 긴급하다는 말머리를 단 업무 관련 메일은 눈에 안 들어와도 저런 종류의 메일은 본능적으로 귀신같이 찾아내는 것이다.


음식으로 기억되는 많은 순간들이 있다.

초복을 앞두고 나는 미리 지난주에 한 번 집에서 삼계탕을 만들었고, 어젯밤엔 특별히 초복 이브를 맞아 엄마 찬스로 또 한 번 삼계탕을 먹었다.

공무원 발령을 받았던 첫 해부터 나는 여러 곳에서 식사 초대를 많이 받았다.

물론 나 혼자만을 겨냥한 초대는 결코 아니었고 제일 높으신 분을 비롯해 이하 직원들 모두를 포함한 것이었다.

그땐 '김영란법'도 아직 제정되지 않았을 때였다.

음식, 하면 자랑스러운 우리네 'K-부녀회'가 직원들의 배를 항상 든든하게 해 주셨다.

시골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다 보면 (지극히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자 입장에서)'이런 것까지?' 다 상황 파악을 하고 있어야 하나 싶은 게 있었다.

나는 가을에 첫 발령을 받았고, 이듬해 여름에 하반기 인사이동이 있어 다른 곳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는데 아마도 그곳에서 처음 '복날' 음식 대접을 받았던 것이 복된 날의 첫 시작이었을 것이다. 물론 근무하기 시작한 가을부터 이런저런 사유와 그러기에 타당한 근거가 확실한 식사 대접을 받았었다. 그렇다고 날마다 지역 주민들에게 대접받고 살았다는 말은 아니다.


복날이 다가오면 사무실에서 각 담당 마을별로 복달임 행사는 언제 어디서 몇 시쯤에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를 먼저 파악을 하고 보고를 한다. 일종의 담당 마을 동향 파악이다. 그곳은 공무원 1인당 의무적으로 두세 개 정도의 마을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공무원이 담당하고 있는 마을의 각종 애, 경사 같은 많은 일들을 동향 파악이라는 명목 하에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시시 콜콜한 것들을 꿰고 있어야 했다.

여름엔 당연히 복날 행사가 가장 큰 관심사이다.

수 십 개나 되는 마을 중 반드시 '복날에 읍, 면사무소 직원들에게 식사대접 하겠다.'고 자처하시는 고마운 분들이 계신다.

나는 그들을 대한민국의 위대한 'K-부녀회'라고 칭한다.

언젠가 우리 엄마도 멤버로 활동했을 그 마을 부녀회 말이다.

각 마을별로 복달임 행사 날짜를 파악하다가 우리 직원들까지 몸보신을 다 하게 되는 날이 있다.

장소는 대개가 사무실 바로 근처에 있는 마을 회관이라든지 경로당이었다.

가끔 차를 타고 먼 거리까지(그래봤자 대한민국 영토 안인데) 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K-부녀회는 뭐가 달라도 다르시다.

정 없이 달랑 삼계탕만 준비하는 법이 없으시다.

떡은 기본이고 과일은 덤이요, 나중에 먹으라고 회무침이나 수육과 김치와 밑반찬 이런 것들도 새까만 검은 봉지  가득 아낌없이 내어주신다. 밑반찬은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을 수밖에 없는 민원실 직원들에게 귀한 양식으로 거듭난다.

게다가 그것들은 또 '얼마나 맛있게요~'

삼계탕으로 더욱 돈독해진(돈독해졌다고 믿었다.) 우리 사이, 점심 식사 자리에서만큼은 직원이고 민원이고 그런 건 없다. 그저 동네 주민들의 어울림 한마당이다.


나는 생각했다.

9급 공무원 나 하나 면사무소에 없어도 면사무소는 잘 돌아겠지만(아마 신나서 더 잘 돌아갈지도 모른다.) 우리의 부녀회원들이 없으면 그 동네는 안 돌아간다, 고 감히 확신하는 바이다.

복된 그 복날, 적어도 그날만큼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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