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Jul 09. 2023

나 진짜 밥맛없는 여자야

안먹고 싶다.

2023. 7. 8. 어서 크기를 기다리며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안 먹고살 수는 없을까?"

"또 그 소리야?"

"먹는 것도 일이야."

"그래도 사람이 먹는 즐거움이 있는데."

"먹는 시간도 아까워. 안 먹고도 살 수 있다면 좋겠다."

하루 이틀 들은 소리가 아니었으므로 '입맛 있는' 남성은 대수롭지 않게 흘려 들었다.

또, 입맛이 없나 보다 하고.

쯧쯧, 또 시작이군.


"날이 더워지니까 더 먹기가 싫어지네."

이 말을 벌써 한 달 전부터 해왔던 나다.

"너희 엄마 또 입맛 없나 보다."

입맛 있는 남성은 내 앞에서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배도 안 고팠으면 좋겠는데 배는 고프고 먹기는 싫고."

진심으로 안 먹고도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먹는 일이 왜 이렇게 일이 되었나.

평소에도 그다지 식욕이 왕성한 편은 아니었지만 여름이 시작되면 체력적으로 힘들어지고 입맛부터 잃는다.

간혹 어떤 음식을 강렬히 원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그냥저냥 먹고사는 편이다.

우리 가족들 모두 그리 식탐이 있는 편은 아니다.

입맛 없는 여자와 입맛 있는 남성은 이제 다 컸으니까 그렇다 치고 아이들은 한참 클 때니까 그래도 뭐라도 좀 먹여야 할 텐데, 당장 내가 입맛을 잃으니 도무지 요리할 맛이 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입맛 있는 남성도 입맛 없어할 때가 있다.

그래서 그럴 때면 그는 한 끼에 한 그릇만 잡수고 간단한 디저트로 식사를 마무리하신다.

나는 평소에 조금씩 자주 먹는 편이다.

"너 그래가지고 어떻게 직장 생활할래? 쪼금 먹고 배부르다고 그러고 금방 배고프다고 그러니  직장생활이나 하겠냐?"

머나먼 면사무소로 첫 출근을 며칠 앞두고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그 버스 안에서 딸의 배가 다 꺼져 버릴까 봐 아빠는 그게 제일 걱정이셨다.

실제로 아침밥을 분명히 먹고 나왔는데도 사무실에 도착을 하면 금세 배가 고파지는 것이다.

나도 걱정되긴 했다.

일하다 말고 어디 숨어 들어서 몰래 먹이를 섭취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상담실'은 민원인에게 내어 주어야 했으므로 내가 몰래 들어갈 공간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발령을 받고 한동안은 업무 익히랴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있다가 점심때가 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땐 신규자라 긴장하고 살아서 그런지 가뜩이나 없는 입맛이 더 떨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입맛이 없을 때는 가끔 맛있는 음식 사진을 한 번씩 들여다보곤 한다.

그러면 잠시나마 식욕이 생기지만 이내 시들해진다.

'사진은 보는 것이지 먹는 것이 아니다.'라는 학습된 무기력으로 더 입맛이 없어진다.


주사나 한 대 맞고 안 먹고살았으면, 빨리 어떤 알약이 나와서 그거 하나만 먹고도 살 수 있었으면.

다행히 여름엔 맛볼 수 있는 과일 종류가 많아 어쩔 땐 그것으로 연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나이를 생각하면 그래도 영양소를 골고루 갖춰 먹어줘야 할 터인데 통 당기는 음식이 없으니 이를 어쩌면 좋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음식을 만들기는 하지만 당장 내가 입맛이 없으니 전처럼 음식을 만드는 일이 흥이 나지 않고 '일처럼'느껴지는 날이 많다. 이런 나도 가을이 되면 밥은 안 먹어도 단감을 하루에 스무 개 이상씩 먹고 산 적도 있다. 가끔 너무 극과 극이다. 단감은 내가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과일이다.

이제 500원짜리만 하게 감이 열렸던데 어느 세월에 그걸 따 먹누?

그래도 국방부의 시계는 돌아간다던가?

단감은 커지고 익어갈 것이다.

그 맛을 보기 위해서라도 그때까지 잘 연명하고 살아야지.

밥을 한 술 뜰 중대한 이유가 생겼다.

다행이다.




작가의 이전글 단군 이래 세일 안 한 적이 있었던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