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이 기어코 그럴 줄 알았고, 남편도 내가 기어이 그렇게 반응할 줄 알았다, 서로가.
"내가 보낸 거한 번 봐봐. 어때?"
"안 봐도 안 어때."
"그러지 말고 좀 봐줘. 당신이 보기엔 어때? 괜찮아?"
"이쁘긴 하네."
"웬일이야? 당신 입에서 이쁘단 소리가 다 나오고?"
"이쁘니까 이쁘다고 그러지. 어떠냐고 물어봤잖아?"
"어지간해서는 성에 안 차는 사람이 별 일이네."
"그냥 내 생각을 말한 거야."
"세일해서 하나 살까 하는데."
나는,
나한테 물어보길래,
내 신발을 사주려는 줄 알았다.
꿈도 야무졌지 내가.
"됐어! 나 이미 운동화 있는데 뭐 하러 또 사? 앞으로 100년은 더 신을 수 있을 텐데. 그거 신으면 되지, 신고 어디 나갈 데도 없는데 뭐 하러 또 새 걸 산다고 그래? 됐어. 안 사줘도 돼!"
라고 주책없이 김칫국 들이마시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신을 신발이 없어서 하나 사려고."
"그럼 신발장에 꽉 차 있는 것들은 다 발싸개야? 짚신이야?"
세일해서, 싸니까,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 비상용으로, 각종 이유들을 대며 그 양반은 신발들을 샀다.
물론, 필요하면 사는 게 맞지, 필요 없는 것을 사는 건 좀 자제해야겠지만, 필요하다면 살 수는 있다.
그런데 왜 내 눈엔 다 필요 없는 것으로 보일까?
"배구할 때 신게 하나 사야겠어."
학교에 있을 때 가뭄에 콩 나듯 일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배구를 위해 배구화를 사셨다.
"그래도 비상용 구두가 하나 더 있어야겠어. 혹시 모르니까."
유비무환의 결정체인 그 양반이 또 사셨다.
"누가 스니커즈 신었는데 그것도 하나 있으면 괜찮겠더라. 놀러 갈 때 신으면 되잖아."
누구랑 그렇게 놀러 다니시려고 그러실까, 아무튼 하나 사셨다.
"아무래도 구두는 좀 불편해. 편한 단화도 하나 있어야겠어."
아무렴요, 하나 사셔야지요.
"워킹화랑 러닝화는 달라. 이렇게 따로 나온 데는 다 이유가 있어."
이유 있는 그 양반은, 사셨다.
그냥 실내화, 편한 실내화, 지압 실내화, 겨울 실내화, 먼저 샀던 게 실패해서 다시 사고 또 사고...
신을 사람이 필요하면 사야겠지.
하지만, 어쩌다가 한 번 신을지 안신을지도 모르는(아마 안신을 가능성이 더 많은) 신발을 굳이 종류별로 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언제나 그 양반은 '언젠가' 신을 날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날이 언제나 오려나?
아마 한 오천 년 후쯤에나?
이미 신발장에도 사놓고 안 신고 외면당한 그 양반의 신발들이 제발 한 번만이라도 신어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는 마당에 또 새로 들이시겠단다.
"등산화는 없을 걸? 등산할 때 신어야지."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등산화가 없는 게 아니라, 등산할 일이 아마 없을걸?
아니 등산도 안 하실 거면서...
아마 발가락에 한 짝씩 신을 요량인가 보다.
일찍이 발가락에 신발 신는 사람 얘기는 못 들어봤는데? 하여튼 그 양반의 별난 재주를 조만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발가락 10개에 다 걸치고도 손가락에 한 짝씩 걸치게 생겼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다른 건 모르지만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래에 세일을 하지 않은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을 것이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만큼 거의 항상 세일 중이다.
세일하면 사버리는 그 양반, 전생에 물건을 못 사서 죽은 구신의 저주일까? 그나저나, 신발을 선물하면 그 사람이 도망간다던데. 기쁜 마음으로 내가 그 양반을 위해 신발을 100켤레쯤 사주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내 발길이 닿을 수 없는 머나먼 서역 만리 땅으로 달아나더라도 기꺼이 보내주련다. 정작 가장 있어야 할 그런 기능을 갖춘 그 신발만 없구나. 신고 달아나기 좋은 신발은 어떤 게 좋을까. 그런 건 세일 중이 아니라도 미리 예약이라도 해서 내 손에 넣고 싶을 지경이다. 오픈런은 그럴 때 하는 거라던데. 신고 달아나기 좋은 신발은 어떤 게 좋을까. '도망화'를 신고 달아나시오, 멀리멀리.
이틀 전, 기어이 등산화는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그 양반이 하시는 말을 두 귀로 똑똑히 들었다. 물론 내가 기원전 5,000년 경에 예상한 말이다. "등산화를 사긴 샀는데 나도 몇 번이나 신을까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