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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l 06. 2023

조기집행이 직장인에게 끼치는 영향

연가보상비는 지름신을 낳고, 지름신은 충동구매를 낳고

2023. 7. 4. 이제 시작이다.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연가보상비 들어왔더라."

"그걸 왜 이제 얘기해?"

"나도 이제 봤어. 오늘 들어왔더라."

"빨리도 주네."

"조기집행 하라고."

"우린 연말에 몰아서 줬던 거 같은데."


그렇다면 그 양반은 뭐라도 하나 살 것이다.

사지 않고는 못 견딜 것이다.

사야만 한다.

물론 본인 물건을.

그래서 그날따라 얼굴이 더 환했나?


"7월은 좀 더 받겠네? 정근 수당도 들어올 거고. 연가 보상비도 좀 받았으면."

"정근 수당은 나중에 나오고 이미 연가보상비는 며칠 분 받았지."

"그러니까."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그곳은 상반기에 일정 일수의 연가 보상비를 미리 주고 있다.

어차피 20일도 넘도 연가를 홀라당 다 쓰는 사람은 아마도 드물 테니까 조기 집행도 할 겸 상반기에 한 번 정산해 준다.

"올해 연가 일주일 정도 썼나?"

"며칠 안 썼어. 그렇게 많이는 안 썼어."

"난 많이 쓴 것 같은데?"

"일 보느라고 조퇴 몇 번 했지."

"그래. 필요하면 나중에 연가 써야지."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사 줄게.(=물론 우선 내 것도 좀 사고)"

필요한 것도 없을뿐더러 뭔가 사고 싶은 욕구도 점점 시들해져 가는 걸 귀신같이 눈치채고 하는 말 아냐?

저런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안된다.

일종의 그 양반만의 돌려 말하기 화법이다.

또 뭔가 사고 싶어서 근질거리시는구먼.

그런 낙이라도 있어야지.

그리고 그런 낙으로 사는 거지.


"연가보상비만 나왔어?"

"시간 외 정액분이랑 같이 나왔어."

"그건 얼마 안 되잖아. 10만 원 좀 넘었던 것 같은데?"

"그렇지."

"난 옛날에 월급에 포함돼서 나왔던 것 같은데, 나중에 따로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오래돼서 다 잊어버렸네. 뭔가 나중에 따로 나온 것들이 있어서."

"이번에 연가보상비랑 같이 줬더라고."

같이 줬다면 그런 줄 알지, 그 급여 내역서를 자세히 본 적이 기원전 3,000년 경이니 가물가물 하다.

남의 월급이긴 하지만 전에는 한 번씩 급여 내역서라도 구경해 보자며 월급납을 기다렸는데 이젠 그조차도 재미없다.


그 양반은 뭘 그렇게 알아보시는지 한참을 방에서 은둔 생활을 하셨다.

다만 이런저런 물건들의 사진만 열심히 캡처해서 내게 공유할 뿐이었다.

내가 제발 보내달라고 사정한 적은 없다.

물론 모조리 성인 남성 관련 물품들뿐이었다.

조기집행 덕분에 신난 직장인이여,

순간만을 살아서는 안될 지어다.

한때는 나도 순간 통장 잔액이 늘었을 때 어떻게든 그 기쁨을 만끽하던 전과가 있었으므로 긴 말은 하지 않는다.

조기집행은 이렇게나 직장인을 신바람 나게 만든다.

이렇게나 배우자를 두려움에 떨게 한다.

또 무엇을 얼마나 사들이실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현관문을 열 때 택배에 막혀 문이 안 열릴 정도까지는 되지 않기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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