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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18. 2023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간식을 주시고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2023. 6. 10. 부모님 '덕분에'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이거 어디서 났어? 맛있다."

"어디서 나긴, 또 할아버지가 주셨지."

"또? 이것도 가져왔어?"

"그럼.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는 맛있는 것만 있으면 다 너희 주시잖아."


지난 주말 아침은 간단하고 소소하게 내가 만든 요구르트에 '또' 친정로컬푸드를 곁들였다.

친정 부모님이 여전히 계신다는 건 정말 축복받은 일이다.


"아버님이 이런 것도 주셨어?"

고된 일주일 근무를 마친 직장인이 흔히 볼 수 없는 아이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런 것만 주셨어? 별 걸 다 주시지. 우리가 먹는 것 거의 다 집에서 가져왔지."

난생처음 친정 나들이를 하고 온 아내 보듯 그 사람은 '새삼스럽게' 우리 집 일용할 모든 음식들에 대해 묻곤 한다. 지금 우리 집을 둘러보시라, 친정 출신 아닌 것이 있나 어디?

이젠 농사일이며 다른 소일거리를 그만하시라고, 제발 일 좀 줄이시라고 4남매를 비롯한 그들의 배우자들이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촌에 살면서 일 안 하고 살 수 있냐?"

라고 대답하시는 분들이 나의 부모님이다.

시가에도 마찬가지다.

시부모님은 현재 농사일을 많이 줄이셨고, 사돈들도 그렇게 과감히 줄이실 것을 항상 당부하신다.

말로만 효도를 하는 나도 집에 갈 때마다

"엄마, 일 좀 덜 하셔. 아빠도 어지간히 하시고."

걱정을 위장한 염려의 말을 시도 때도 없이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한결같다.

나 또한 말은 걱정한다 하면서도 부모님들의 땀방울 묻은 오만가지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 가족들을 먹이기에 급급하니 이런 모순이 또 있을까.

일은 안 하셨으면 좋겠지만, 부모님이 가꾼 믿을 수 있는 많은 농산물들은 실컷 갖다 먹고 싶기도 하다.

일관성도 없이 모순의 인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엄마, 우린 이 정도만 가져가도 많아. 나머지는 아빠랑 드셔. 또 애들 준다고 아껴놓지 말고. 알았지?"

"알았다. 잔소리 말고 얼른 가기나 해라."

엄만,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잔소리라고 하신다.

친정집을 나서면서 엄마에게 신신당부했었다.

예전에도 과일이나 음식 이런 것들을 내게 덜어 주시고도 남은 것을 '혹시라도 외손자들이 주말에 올까 봐' 그대로 보존하고 계신 걸 많이 봐 온 터라 매번 이렇게 쐐기를 박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번엔 산딸기였다.

시중에서 사 먹으려면 몇 만 원을 줘야 사 먹을 양이었다.

물론 부모님의 사랑을 굳이 돈으로 환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따질 수 없는 값어치이기에 더 귀하다.

어제 친정에 가서 나는 또 보고야 말았다.

부모님 드시라고 남겨 두고 온 몇 줌의 산딸기가 내가 담아 둔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을.

주말에 외손자들이 올 지도 모를까 봐 또 아껴두신 거다.

이미 줄 만큼 실컷 주고도 당신들 몫까지도 마저 내어주지 못해 아쉬운 분들, 벅찬 내리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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