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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16. 2023

그들이 없는 사이, 6시간을 사수하라

토요일은 오전이 좋아

2023. 6. 11. 내게도 봄날이 올까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토요일에 8시 20분까지 오래."

"그래? 그럼 8시에 나가면 되겠네. 미리 가 있어야지."

"아니야. 20분까지니까 10분에 나가도 돼."

"급히 준비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여유 있게 미리 가 있는 게 낫지 않을까?"

"괜찮아 괜찮아. 금방 가는데 뭘."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주말에 딸과 아들이 드디어 합기도 심사를 치른다.

고로 토요일 오전은 나 혼자 실컷 음악도 듣고 책이나 보면서 오랜만에 조용히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있어야만 한다. 있을 수 있어야 할 텐데. 있을 수 있을까?


"엄마, 토요일에 아침에 가서 오후 2시쯤에 올 거래."

심사 일정이 나오자 딸은 기대에 차서 당장 내게 그 복음을 전하였다.

"그래? 심사가 금방 끝나나 보네?(=왜 그렇게 빨리 끝난다니? 좀 천천히 심사를 봐주실 것이지. 그래봤자 고작 몇 시간 나가있는 것 밖에 안되잖아?)"

오랜만에 아이들 없는 주말 오전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없지만 (어쩔 때 아이 같은, 또 어쩔 땐 아이만도 못한 것 같은) 어른 남성 한 명이 집에 남아있을 것이다. 아니 남아 있다기보다 그냥 있을 것이라고 강하게 추측된다.

아이들은 최대한 일찍 준비하게 해서 내보내면 된다지만 그 어른 남성을 어쩌면 좋담?

물론 아이들이 집을 나설 때까지 기상하지 않을 거라 확신하지만 '만에 하나' 그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버린다면?

주말이니까 실컷 늦잠을 주무셔도 좋으련만.

행여라도

"얘들아, 오늘 심사 잘 받고 와!"

라면서 격려의 말을 해 주기 위해 아침 일찍 기상이라도 해 버리신다면 이를 어쩐다?

나는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수학엔 약하지만, 난 계산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얼른 셈을 해 보자.

아이들이 오전 8시에 나가서 오후 2시쯤에 돌아온다면 최대 6시간 정도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내친김에 주말 계획표를 짜 보자.

아침을 일찍 먹고 책 두 권과 점심으로 요긴하게 쓰일 '먹이'를 챙겨서 방으로 들어간다. 가능한 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아이들이 돌아온 후 점심을 먹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최대한 방에서 나가는 일이 없도록 방 안에서 모든 게 해결되도록 빈틈없이 계획을 짜야만 한다.

만에 하나 잠시 거실에라도 나갔다가 '그' 어른 남성과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물론 그를 위하야 아침과 점심 끼니를 마련해 두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겸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먹는 일이 다 무언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책을 보는 일, 내 숙원사업이 아니었더냐.

난 '혼자' 책 보는 걸 가장 좋아한다.

감히 그게 나의 행복이라고 칭해도 좋다.

자정이 넘도록 새벽 1시고 2시고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 6시간만큼은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낼 것이다.

실수로라도 배가 고파져서 방을 벗어나면 안 되기 때문에 간식도 미리 비축해 둬야만 한다.

이런!

요강이라도 하나 장만해 둘 것을.

거역할 수 없는 생리현상이라는 변수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의 불찰이다.

지금 주문해도 로켓을 타고 오늘 밤까지 도착하기엔 빠듯한 시간이다. 이렇게 안타까울 데가!

아깝다.

어쩌면 나는 너무나 설렌 나머지 금요일 밤잠을 설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쩜! 그 어른 남성과 격리될 생각만으로도 그를 처음 만나러 갔던 날보다 더 설레다니!

이런 나, 지극히 정상이다.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특히 어느 누구에겐 말이다.


나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나만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아차, 가장 중요한 걸 잊었군.

방 문 앞에 따끔하게 경고문을 한 장 붙여 놔야지 참.

온갖 미사여구를 총동원해 문구는 대강 이런 아름다운 조합으로 완성될 것이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든지 '방해하지 마시오.' 내지는 '면회 금지', 이 정도가 좋겠군.

그러나 나는 누군가의 예상이 뻔한 말을 정확하게 추측하고 말리라, 물론.

"일도 안 하니까 날마다 시간 많잖아? 출근도 안 하고 맨날 혼자 있으면서 왜 또 혼자 있겠다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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