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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Aug 08. 2023

9급 신규자가 인맥 만드는 방법

누가 다리만 놔주면 쉬웠어요.

2023. 8. 7.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 이번에 새로 온 신규자죠?  앞으로 자주 볼 수 있겠네."

그 직원은 나보다 먼저 공직에 발을 들인 선배답게 한결 여유롭게 나를 대했다.

"네, 주사님, 글임자입니다. 태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가 그 직원에게 표할 수 있는 최대의 고마운 마음은 그게 다였다.

진심이었고 온 마음을 다해 고마운 게 사실이었다.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발령 이래 첫 출장에 교육장까지 세 번 정도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지쳐 나가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응. 나보고 좀 같이 가주라고 하더라고. 신규니까 잘 모를 거라고. 좋은 분이야. 일도 잘하고. 같이 있으면 배울 게 많을 거야."

이렇게 그 직원은 나의 사수를 한껏 칭송했다.

면사무소에서 (어디까지나 자가용으로 멈추지 않고 쭉 간다고 봤을 때의 경우) 1시간도 더 걸리는 교육장으로 가는 동안 간단히 통성명을 마치고 이내 우리는 언니, 동생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보기보다, 의외로 나보다 나이가 있었다.

언니, 동안이란 얘기야, 알지?

누가 언니를 그 나이로 보겠어?

여전히 동안인지 갑자기 궁금하네.


"임자 씨, 말 놔. 주사님은 무슨 주사님이야. 나이 차이 얼마나 난다고. 그냥 언니라고 불러."

하긴, 오빠는 아니니까 부를 거면 언니가 더 어울리겠지.

내가 면사무소 직원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받은 대로 직원을 모두 '주사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 말이 입에 배었다.

계장님, 면장님을 제외하고 무조건 주사님이라고 불렀다.(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에 그대로 따랐다.)

언니가 정말 편하게 대해 줬기 때문에, 게다가 외모만 봐서는 내 또래로 착각을 했기 때문에 나도 금방 '언니, 언니' 하며 따를 수 있었다.

언제나 언니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나는 원 없이 언니들을 만들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으나 그녀와 나는 그 후로도 비슷한 일을 하게 되었다.

같이 민원실 업무를 보기도 했고, 산업계 업무를 보기도 했다.

한 번은 같은 면사무소에 발령이 난 적도 있었다.

그곳에서는 여직원들이 점심을 만들어 먹었었는데 그때 그녀가 만들어 준 진미채 마요 주먹밥 맛을 아직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뜻밖의 요리 실력에 내심 놀라기도 했던가, 그때?


그러니까 그녀는 내가 공직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생긴 인맥인 셈이다.

물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처음엔 사수의 주선으로 만나게 된 것이지만 그런 식으로 이 직원도 알게 되고 저 직원도 알게 되고 그렇게 근무를 했다. 대부분 고향이 그곳인 직원들이 많았으나 그녀처럼 타지인 경우도 있었는데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 지역과 어떻게든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찌 보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같은 동네 사람'이라는 교집합 하나만으로도 쉽사리 어울릴 수 있는 그런 곳이었던 것 같다.(아무래도 이래저래 자꾸 따지고 어느 하나라도 공통점을 찾아내고 서로 연결시켜 보려는 그런 정서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도 같다.)

어른이 되고, 특히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 사귄 사람들은 깊이 사귀지 못하고 속내도 다 털어놓기 쉽지 않고 그렇다던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 언니와는 별의별 얘기를 다 했었으니까.


나도 이제 아는 직원이 생겼다.

모르는 게 생기면 물어볼 사람이 생겼다.

물론 모든 걸 그녀가 다 해결해 주지는 못할지언정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하나를 알려 주더라도 기존에 먼저 와 있다고 무조건 으스대며 잘난 체하며 떨떠름하게 대하는 사람도 물론 있었지만, 도움을 요청하면 손 내밀어 주고 스스럼없이 대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은 정 많은 곳, 그곳은 내게 그런 곳이었다.


세상의 모든 직장인들에겐 신규자였던 시절이 있었다.

처음부터 숙련된 직장인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까마득한 나의 초보 시절, 양심도 없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서른, 여전히 바래지 않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 시절을 다 지나오고 지금 이렇게 오늘을 산다는 사실을 나는, 어쩌면 우리는 종종 잊을 때가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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