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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19. 2023

공무원 합격하고 차부터 샀어야 했나 봐

자가용이 없어 막막한 신규자

2023. 6. 18. 한 가지에 난 참다래처럼 인맥 생긴 날

< 사진 임자 = 글임자 >


"임자 씨는 차가 없으니까 OO면사무소 직원하고 같이 교육받으러 가요. 내가 전화해 놓을게."

 막상 교육 장소와 날짜가 정해지고 나니 내심 걱정이 되었다.

도대체 거기까지 어떻게 간담?

관용차(지자체 마크가 새겨진 소위 용달차)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감히 신규자가 그걸 이동 수단으로 이용하겠다고 말할 입장도 못되고, 더군다나 그 관용차는 한낱 공무원 서기보시보에게 허락될 리도 만무했다.

긴급상황에, 그 차량이 꼭 필요한 직원이나 계장님, 면장님 정도는 되어야 가능했다.

기원전 3,000년 경에 운전면허를 따긴 했지만 운전이란 걸 해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나의 사수는 참으로 친절하고 배려심이 깊어서 내가 곤경에 빠지기 전에 항상 미리 나를 구제해 주셨다.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 좀 어렵게도 느껴지긴 했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자였던 나에게 언제나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많이 주셨다. 면사무소의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돌이켜 보면 난 정말 운 좋게도 첫 발령지를 잘 만난 셈이다.

"나 교육 가야 하는데 가다가 하루 걸리겠어. 차도 없잖아. 여긴 시골이라 군내버스도 뜸하게 있는데 또 시내 가서 갈아타고 하려면 최소한 차를 세 번은 타야 할 거 같은데."

당시의 남자친구(=현 남편)에게 분명히 하소연을 했을 것이다.

물론 당시 다른 지역에서 열심히 알바 중이었던 남자친구가 내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도 공평하게 차가 없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면사무소에서 출발하면 해가 지고 캄캄한 밤이 되어야 다시 면사무소로 돌아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면사무소에서 자가용이 없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지방직이라는 업무 특성상 자가용은 아마도(?) 필수였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사건 사고가 나면 당장 출동을 해야 하고 출장을 다녀와야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고 군청으로 어떤 물품을 수령하러 가야 하는 일들도 꽤 많았다.

공무원 합격하자마자 차부터 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특히 복지계는 시도 때도 없이 관내 출장들을 많이 다니셨던 것 같다.

언젠가 먼저 국가직에 합격한 친구와 통화를 한 적이 있다.

"나 차 샀어."

먼저 합격한 자는 자랑스레 내게 말했다.

"서울은 차 있으면 더 복잡하지 않아?"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의 (당시) 공시생인 나는 물었다.

"아니야. 차가 있으니까 출, 퇴근이 훨씬 빠르고 좋아. 어쩔 땐 막혀서 더 오래 걸리기도 하지만."

친구는 취직을 했으면 차도 한 대쯤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듯 내게 말했다.

"그래? 난 아직 잘 모르겠다."

언제 붙을지 합격도 묘연했던 나는 굳이 복잡한 서울 거리에 뭐 하러 차를 끌고 다니는지 그 친구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차가 없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막막함을 느꼈던 건 나의 첫 관외출장, 그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물론, 나는 내 차가 없었으므로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서 인근 지자체로 간 다음 다시 시내로 나가서 교육장소까지 가는 버스로 갈아 탈 의향이 충분히 있었다, 있었지만 동시에 막막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내 마음을 어찌 아시고 사수께서 나의 고민은 단번에 해결해 주셨다.

"OO면사무소에 OO라는 직원이랑 같이 가면 돼. 어차피 같은 업무 하니까 친하게 지내면 좋아."

사수님의 중매(?)로 나는 그 직원과 첫 대면에 합석(정확히는내가  차를 얻어타고 간 것이긴 하다.)하고 덕분에 무사히, 그리고 편하게 교육장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게 낯설고 어렵고 두렵기까지 한 많은 '처음'인 일들에 '복도 많은 나'는 주위 직원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어렵고 어색하지만'서서히 그들과 어울려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남자들이 잊지 못한다는 첫사랑만큼이나 내게 잊을 수 없는 첫 발령지 면사무소, 그리고 사람들, 많은 과거의 일들이 좋은 기억으로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실은 분명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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