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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17. 2023

공무원 교육을 호텔에서 해요?

오해했거나 착각했거나

2023. 6. 14. 이렇게 맑은 날이었다.

< 사진 임자 = 글임자 >

"임자 씨, 이번 주에 교육 있네. 담당 업무니까 가서 교육 잘 받고 와."

일반행정직 9급 공무원이 되어 면사무소 복지계로 첫 발령을 받은 나는 출근한 지 열흘 정도가 지났을 때 처음 교육이란 걸 받으러 가게 됐다.

내 업무 중에 '장애인 업무'가 있었는데 그와 관련해서 인근 지자체 공무원들을 모아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 장소가 'OO호텔'이었다.

호텔씩이나? 공무원은 교육을 받아도 아무 데서나 받는 게 아니구나, 오해하기 딱 좋은 첫 교육이었다.


서른 평생 직장다운 직장이라곤 안 다녀보고 계약직 근무가 전부였던 나는 그동안 교육이란 걸 받아 본 경험이 없었다. 물론 계약직으로 일할 때 업무에 필요한 일을 배우느라 교육 비슷한 것은 받긴 했지만 그것은 사무실 안에서였고, 옆의 '정규직' 직원의 일방적인 상명하달일 뿐이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눈에도 안 들어왔고, 다만 그 교육 장소가 나를 정신 번쩍 나게 했다.

웬 교육을 호텔까지 가서 한담?

호텔이 그런 곳인가?

그때까지만 해도 호텔의 '호'자는커녕 모텔도 모르고 살던 시골 옛날 사람은 슬슬 들뜨기 시작했다.

내게 있어 호텔이란 적어도 교육을 받는 곳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촌뜨기 시골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근데요, 교육 장소가 정말 호텔이에요?"

순진한 척한 게 아니라 정말 믿기지 않아 질문했다.

"응, 왜? 뭐 잘못됐어?"

으레 호텔에서 교육을 받아왔는지 그분은 심드렁했다.

근무를 하다 보니 복지계 관련 교육은 유독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일행직 교육 장소는 한 번도 호텔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사회복지사들의 수많은 교육은(주관적으로 느끼기에, 또 지자체마다 다르겠지만 교육도 많은 편이고) 연찬회라는 명목으로 종종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교육을 받기도 하는 것 같았다.


과연, 어떤 호텔에서 첫 교육을 받게 될까 관외 출장 신청 공문을 작성하고 나는 크리스마스에 산타 할아버지만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설레기까지 했다.

그동안 속없이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숱한 드라마들 속에 호텔이 등장했어도 그 안에서 공무원들이 교육을 받는 장면은커녕 직장인들의 교육 장소로 방영된 기억이 없었다.

화려한 샹들리에(물론 TV속에서나 간접 체험활동을 했을 뿐 실물 구경은 한 번도 못한 눈부신 그것이다.), 평소 접하지 못한 고급스럽고 진귀하며 맛난 음식, 우아한 클래식이 흐르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사람들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게 될 가엾은 나, 상상만으로도 황홀했다.

출근 2주 째, 면사무소 지방행정 공무원 서기보시보의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으니 드레스에 신부 화장이라도 하고 가야 하나?


그러나, 모든 것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내가 상상한 것은 차라리 무도회장이었다.

그곳은, 그러니까 'OO권역 사회복지직 장애인 업무 담당자 교육'은, 사각형의 콘크리트 공간에 여럿이 함께 앉을 수 있는 기다란 책상이 빽빽하게 놓이고 허기를 잠깐 달래줄 인스턴트커피와 과자  한 두 가지가 다였다.

하긴,  고위 공무원도 아닌데  으리으리한 고급 호텔이 내 차지가 될 턱이 있나. 교육 장소가 무어 그리 대순가, 맡은 일이나 똑바로 잘하면 될 일이지.

공무원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교육의 내용과 이를 잘 숙지하고 정확하게 일 처리를 하는 담당자 양산이 목표지 교육 장소 따위가 아닐 것이다.


간직하지 않았는데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란 게 있다.

그것은 뭐랄까... 남편 친구가 호텔에서 결혼한다고 해서 또 예의 그 호텔 사건이 잊히기도 전에 뭔가 기대하며(난 어리석게도 뭘 또 기대한 걸까?) 부부동반으로(쇼윈도 부부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응당 그런 자리였으므로)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여인숙 같은 외관과 '호텔'이라는 이름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테리어와 당연하다는 듯 하객들을 대접하던 불고기 백반, 꼭 그러했다.  

아, 교육도 호텔에서 받아본 놈이 더 잘 받는다더니.

처음 가 본 호텔에서 어리둥절해하며 엉뚱한 기대만 잔뜩 하고 나선 나의 첫 교육이자 관외출장날은 그렇게 아직도 '서늘한 내 가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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