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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y 11. 2023

신규자에게 겁을 주는 방법

그렇게 신규자는 단련된다.

2023. 5. 10.

<사진 임자 = 글임자 >


"그래도 요즘은 옛날처럼 그렇게 험하지 않아."

"뭐가요?"

"민원인들이 낫도 들고 오고, 농약도 들고 오고, 칼부림도 난 적도 있었어."

"네? 진짜요?"

"그럼. 술 먹고 들어와서 행패 부리면서 난동 부린 적도 있었는데."

"진짜 그런 일이 면사무소에서 일어나요?"

"그랬지. 내가 없는 말 하겠어?"

"뉴스에서만 봤는데. 그럼 어떡해요?"

"어떡하긴? 잘~ 해야지."


솔직히, 이제 출근한 지 한 달도 안 된 신규자에게 할 법한 이야기로는 '아니올시다', 였지만 정말 TV 뉴스에서 그런 사건들이 보도되곤 했으니까 속으로는 미심쩍어하면서도 내게도 저런 일이 닥치면 어쩌나 걱정이 한 짐 가득이던 때가 있었다.


어린이에게는 '꿈과 희망을', 9급 공무원 신규자에게는 '신속 정확한 업무 인수인계가' 우선시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다짜고짜 '살벌한 라테'를 한 주전자 타 버리면 어쩌자는 건가.

발령 처음 2 주일은 얼떨결에 보내고 3주째부터는 직원들도 눈에 익고 면사무소도 익숙해졌으며, 내 자리도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처럼 편안해졌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엔 주책없이 잠깐 꾸벅꾸벅 졸기도 했던가?

물론 복지업무는 봐도 봐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때만 해도 철이 없던 때다.

'난 일반행정직인데 왜 복지계에 앉힌 거지?'

라며 세상 물정 모르는 생각을 매일 하곤 했다.

단지 빈자리에 내가 투입됐을 뿐이었는데, 분명히 당분간만, 새 직원이 올 때까지만(그게 다음 인사 시기였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고, 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이라고 나를 안심시키는 면장님과 계장님만 무턱대고 믿었던 것이다.

"어때? 할 만해?"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이제 일하다 보면 슬슬 적응될 거야.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상한 민원인은 안 왔지?"

"그런 것 같아요.(=왔어도 안 왔어요.= 이상한지 아닌지도 아직 분별할 수준이 못되어요.= 아마 민원인은 저를 보고 이상하다 했을 겁니다.)"

"면사무소에서 일하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어."

목적은 그것이었나?

한 직원이 라테 만들 준비를 하며 슬슬 시동을 걸었다.

처음엔 그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 짐작도 못했다.

"그렇지, 나도 근무하면서 볼 거 안 볼 거 많이 봤어."

옆에 계시던 다른 분이 덩달아 합류하셨다.

라테 물을 끓이신다.

"나 옛날에 다른 면사무소에 근무할 때 그때 진짜 농약 들고 와서 마신다고 난리 친 민원 있었잖아."

점점 수위가 높아진다.

어라?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시청 등급이 아니라 청취 등급이 필요해 보인다.

'신규자 발령 최소 3개월 이후인 자 청취 가능'으로 말이다.

"진짜 낫 들고 와서 직원들한테 휘두른 적도 있었어. 그때 진짜 난리 났었는데. 특히 복지계가 좀 그래."

아니, 지금 다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야?

방탄조끼라도 구해서 입고 일해야 하는 건가?

"아무튼 조심해야 돼. 이상한 사람들도 많으니까."

듣고도 믿기 힘든 경험담을 쏟아놓는 직원들 틈에서 나는 험난할 예정인 나의 공직생활을 지레 참담하게 생각했다.

왜 이런 사례는 행정학 책에 싣지 않았던 거지?

실제로 몇 년 전에 어떤 허가를 안 해줘서 앙심을 품고 사냥용 총을 들고 와서 면사무소 직원을 쏘았다는 뉴스로 한참 시끄러웠지 않았던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근무를 해야만 하는 건가?

공무원이란 직장은 '안정된' 직업이라지만, 신변은 '불안전'하구나.

꽃길이 아니라 아슬아슬한 가시밭길을 걷게 되겠구나.


물론, 나중에 나는 깨달았다.

(일부) 민원인이 직원들을 괴롭히는 방법은 실로 다양하다는 것을, 비단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지능적으로, 그것도 교묘하고 악랄하고 저급하게 말이다. 물론 일부 사람들의 얘기다.

세상에는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면사무소를 방문하는 민원인은 정말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이나 다양했다.

역시, 어딜 가나, 어느 직장이나 사람 상대하는 일이 가장 고역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 같지 않았으므로(물론 전부 나 같아도 안 되겠지.) 겨우 한 달 정도 출근한 신규자에게 다소 과격하고도 직설적인 경험담을 풀어놓는 그분들 덕에 나는 어떤 각오를 할 수가 있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어떤 식으로든, 무슨 내용이든, 현실을 직시하고 직장 생활에 임하도록 넌지시 운을 떼면서 정신 바짝 차리라는, 신규자를 강하게 키우려는(?) 그들의 호랑이 금연하던 시절 이야기는 훗날 사실이었음을 여러 차례 몸소 체험했다.

거짓이 아니었구나. 많고 많은 사건 중에 모래알 하나만 한 것이었구나.

'체험, 공무원의 현장'이 온통 거기 있었다.

"그래도 넌 한겨울에 칼바람 맞으면서 바닷가에서 기름때는 안 닦아봤지?"

그렇잖아도 움츠러 드려는 찰나, 어느 친절한 직원은 쐐기를 박았다.

민원인 생활 끝, 군민에 대한 (무조건적인) 봉사자 생활 시작이라는 듯.

그렇게 말하는 이의 눈빛은 아련한 무언가에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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