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상식이라고나 할까? 그 정도의 사리분별 능력은 갖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처럼 누구나 짐작할 만한 업무에 대해서는 누구와 통화를 해야 하느냐고 물어오는 민원인은 세상에 없었다.
총무계에 속한 일의 일부가 복지계에 속하고, 민원실에 속한 일의 어떤 것이 총무계에 속하고, 분명히 산업계에서 해야 할 것 같은데 생각지도 못한 부서에서 담당하고 있었다.(2009년에는 담당계를 저런 식으로 나누었다.)
그중 한 가지는 그곳에서는 '쓰레기봉투' 업무가 복지계에 속했지만 어느 지자체에서는 '총무계'에서 담당한다는 것이다.
지자체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나 보다.
곧이곧대로 사무분장표에 있는 업무가 그 담당자에게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군청까지 연결하고 다시 회신받아 다른 부서로 안내해 줘야 하는 등 얼핏 봐서는 간단한 일처럼 보여도 예상도 못 하게 복잡한 일들 말이다.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며 '공무원들이 서로 떠넘기기'를 한다는 식으로 외부인들은 쉽게 말하지만 (핑계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사실이 그러하기도 하니) 그 속을 들여다보면 또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실제도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요리로 와서 조리로 가야만 하는 일들도 존재한다는 일은 공무원에게나 민원인에게나 차라리 비극적이다.
민원인들의 전화를 받고 도대체 어느 부서의 누구에게 전화를 돌려줘야 할지 몰라 난감해지면 결국에는 그 부서의 가장 젊은이를 공략했었다는 점을 뒤늦게야 고백한다. 연장자인 분들께는 감히 어려워서도 못한다.
설마 다짜고짜 면장님과 속 깊은 담화를 나누고 싶어 할 리는 없을 테고 계장님들은 'OO 업무 전반'이었으나 뭔가 전반적인 업무에 대해 문의하고자 면사무소에 전화벨이 울릴 리는 없었을 테니까. (라고 어쭙잖게 속단했다.) 상대방은 항상 딱 꼬집어 어떤 문제들에 대해 문의하곤 했었다.
그러니까 면장님 제외(어차피 공사다망하신 분이라 사무실에서 얼굴 보기도 힘들었고), 계장님들도 제외(정신 차리고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계장님들의 업무도 많았었다.) 하고 나면 눈치상 그 업무가 속할 것 같은 부서에서, 그것도 현재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분이 당첨되신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담당자를 옳게 찾아가는 확률을 점점 줄여가는 그런 요령 내지는 눈치도 내겐 없었다.
간혹 다짜고짜 면사무소에서 가장 높으신부터 찾고 보는 민원인은 조짐 좋지 않다. 그런 건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신규자라 할지라도 그런 눈치쯤은 있어야만 했다.
엄연히 면장님 자리에 계시더라도 그 높으신 분을 멀리 출장 가시게 보내야만 한다.
그 부서에서 단 한 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가 가장 반가웠다.
"주사님 밖에 자리에 안 계셔서요."
라며 나는 당당히 핑계를 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번지수를 잘못 찾기도 일쑤였다.
"임자 씨! 왜 이 전화를 나한테 돌려줬어?"
라며 격앙된 목소리로 나를 질책하는 목소리가 면사무소 안에서 울려 퍼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모르니까 그저 죄인이다.
그런 경우는 대개 애초에 불만이 가득한 상태에서 전화를 건 민원인을, 그것도 담당 업무도 아닌 것을 가지고 엉뚱하게(어리석은 신규자의 전화 돌려 막기로 인한) 듣지 않아도 될 궂은소리까지 듣고 난 후였다.
운 좋게도 전화를 건 상대방이 통화 내내 온화한 말투로 대화를 이어가면 설사 내가 전화를 잘못 돌렸다손 치더라도
"임자 씨가 신규라 잘 모르지? 이건 저쪽으로 돌려주면 돼. 내가 다시 돌려줬어."
라고 친절하게도 철없는 신규자의 죄를 사하여 주신다.
그러나 가끔 불만이 가득한 상태에서 상대가 원하는 대답을 해 줄 담당자가 아닌 엉뚱한 직원에게 연결해 줬을 경우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럴 때는 잽싸게힐난의 눈길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분의 얼굴은 마치
'아무리 신규자지만 해도 해도 너무 하네. 몰라도 너무 몰라.'
라고 온 얼굴로 나를 책망하는 듯했으므로 제 발이 저린 나는 최대한 지금 나의 신분은 이제 발령받은 지 며칠 안된 신규자임을 호소해야 했다.
물론 그 약발도 오래가지 않는다.
다른 직원들의 넓은 아량으로 신규자를 감싸 줄 수 있는 기한은 유한하다. 서 너 달이 지나도 그 모양이면 인정사정없다. 아마도, 내 좁은 소견으로는 시보를 떼기 전까지 정도나 될까? 물론 나는 시보를 떼고도 가끔 엉뚱한 짓을 일삼기도 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