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상담, 필수는 아닙니다.

역시, 그건 감출 수 없지

by 글임자
2023. 9. 8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들아,

새겨듣기 바란다.

세상에는 감출 수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단다.

사랑과 기침,

그리고 학부모 상담 신청서.


"우리 아들, 혹시 선생님이 뭐 안 주셨어?"

"뭐?"

"혹시 부모님한테 보여 드리라고 종이 한 장 안 주셨냐고?"

"선생님이 뭘 주셨다고 그래?"

"정말 엄마한테 줄 게 아무것도 없어?"

"엄만 뭘 자꾸 달라는 거야?"

"아니. 오늘 네가 엄마한테 줄 종이가 한 장 있을 것 같아서."

"엄마, 엄만 또 뭘 착각한 거야? 엄만 그게 문제야!"

"얘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엄만 착각을 잘하잖아. 건망증도 심하고."

"거기서 건망증 얘기가 왜 나와? 엄만 뭐 처음부터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건망증이 심했는 줄 알아?"

고작 10살짜리 하고 유치한 말싸움이나 하는 엄마라니!


분명히 담임 선생님께서 '학부모 상담 신청서'를 보낼 테니 확인해 달라고 하셨었다.

아무리 내가 착각을 잘하고 건망증이 심해도 불과 한 시간 전에 확인한 내용을 가지고 느닷없는 소리를 한 것도 아니었다.

착각은, 아드님이 하고 계셨다.

일단 엄마에겐 아무것도 드릴 게 없다는 '공수래'의 아드님이 어떻게 나오는지 그날은 지켜보기로 했다.

그 아드님은 다음날 학교에 갈 때까지 빈 손이었다.

등교하기 전에 결판을 지어야 했다.

"우리 아들, 정말 엄마한테 줄 거 없어? 잘 생각해 봐. 근데 여기 뭐가 있는 것 같네?"

아들 가방을 뒤지면서 알림장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척하면서 '학부모 상담 신청서'를 꺼냈다.

"우리 아들, 이건 뭐지? 혹시 엄마가 확인해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아! 맞다. 그거 선생님이 부모님 드리고 상담할 사람은 다시 가져오라고 하셨는데."


학창 시절에 성적으로 1등은 못해봤지만 학부모가 된 후로 나는 언제나 상담 첫날 첫 시간에 상담하기를 희망한다.

물론 내 뜻대로 된 경우는 별로 없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매 맞는 것도 아니지만, 먼저 상담을 끝내버리는 게 속이 후련하다.

아들이나 딸이 같은 날에 상담을 할 수 있으면 한 날로 잡아서 연이어 상담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선택하다.

이른바 '벼락치기 상담'이다.

방문 상담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1학기와 마찬가지로 간단히 전화 상담으로 하기로 했다.

(남편이 나서지 말라고 틈나는 대로 단속한 결과가 지극한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꼭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라고 살짝 메모하신 아들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 전화로 하는 것이라도 상담 신청이 부담을 주는 건 아닌가도 싶었다.

그래도 집에서 엄마가 생각하는 아들과 학교에서 선생님이 보시기에 또 어떤지 궁금해 몇 가지 여쭤보고자 '과감히' 상담을 희망했다. 나는 이를 자녀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이라고 생각해 왔다.

일 년에 최대 두 번뿐인 기회인데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선생님들한테 연락할 일이 없어. 일 년에 두 번 정도 전화 상담은 괜찮겠지? 선생님들이 부담스러워할까? 그리고 정말 급한 일 생겨도 5시 이후에는 연락하기도 좀 그렇더라고. 퇴근 시간 후니까. 급하면 선생님들은 신경 쓰지 말고 연락하라고는 하시던데 말이야."

초등 교사 친구에게 저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처럼 연락 안 하고 사는 게 지금 애들이 학교 잘 다니고 있다는 증거야. 상담시간이 많을수록 그 반대고. 내 경우엔 그래. 어떤 엄마들은 시도 때도 없이 주말이고 뭐고 신경도 안 쓰고 연락하는 사람 있다니까. 일 년에 두 번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

"진짜 그런 사람이 있어?"

"진짜 많아."

"하긴 나도 옛날에 내 폰으로 전화해서 토요일 아침에 급하다고 초본인가 등본인가 떼어달라고 출근하라고 한 민원도 있더라."

살다 보면 상상을 초월한 일들을 많이 경험한다.


학부모가 되니 모든 면에서 조심스러워진 건 사실이다.

여전히 내겐 선생님들은 어려운 분들이다.

나와는 다른 분들이기도 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아주 아주 간헐적인 접촉, 그것이 최선이다.

일단, 알림장 확인부터 잘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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