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을 사서 하시네요
< 사진 임자 = 글임자 >
"너, 시누 방구 아당방구라고 아냐?"
"그게 무슨 말인데?"
"시누짓하는 거 보고 그런단다."
"말도 웃기네. 시누이가 뭘 어쨌다고?"
"하여튼 너는 나중에 새언니 들어오믄 시누짓 하지 말아라, 알았냐?"
"내가 하긴 뭘 한다고 그래, 엄마는?"
거의 20여 년 전, 때는 바야흐로 큰오빠가 여자친구를 처음으로 우리 집에 데리고 오기로 한 며칠 전이었다.
단지 여자 친구를 소개하기 위해 오는 건데 엄마는 마치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 며느리 대하듯 하려고 하셨다.(고 나만 느꼈다.)
엉뚱하게도 조신한 나를, 아직 아무 액션도 취하지 않은 하나뿐인 당신의 딸을 잠정적인 시누이짓의 아이콘로 은근슬쩍 임명하셨다.(고 또 나만 느꼈다.)
아니, 도대체 내가 뭘 어쨌기에?
"시누라고 하나 있는 것이 나중에 시누짓 안할란가 모르겄다."
"누구? 설마 나?"
"그래, 이것아."
"내가 뭘?"
"아무튼 나중에 느이 새언니한테 엄한 소리나 하지 말고. 알았냐?"
"엄마는 내가 뭘 어쨌다고 벌써부터 그러셔?"
"나중에 시누짓 할까 봐 그러제. 너 나중에 새언니 들어오믄 시누짓 하지 말아라."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고모가 옛날에 엄마한테 뭐라고 했었어? 엄마도 시누이가 딱 한 명이잖아."
"고모가 하긴 뭘 했다고 그러냐?"
"근데 왜 그래, 나한테? 난 아무 짓도 안 할 건데?"
"아이고, 걱정이다."
"엄만 별 게 다 걱정이네. 난 오빠랑 언니 일에 간섭 안 할 거니까 걱정 말라니까!"
그런데 가만,
내가 왜 엄마한테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지?
정말 나는 시누이짓 같은 거, 진심으로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결혼은 오빠랑 언니가 하는 거고,
나는 오빠의 여동생일 뿐이고 언니랑은 남인데?
당장 내 앞가림하고 살기도 바쁜 사람인데?
아빠에겐 여동생이 딱 한 명 있다.
나에겐 고모가 딱 한 분 계신다.
그러니까 엄마에겐 세상에 딱 하나뿐인 시누이가 있다 이 말이다.
옛날에 고모랑 엄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평소 두 분의 사이를 보면 뭔가가 있었을 것 같다고 짐작조차 못할 만큼 그저 무난하다 싶은 사람들이었다. 물론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엄마가 고모와 사이가 별로 안 좋았다거나, 만에 하나라도 고모가 엄마에게 (엄마가 말하는) 시누이짓을 했다거나 이런 것들을 내가 다 알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그냥, 단순히, 큰 뜻 없이 엄마는 내가 걱정되셨던가 보다.
내가 그렇게 엄마한테 신용을 못 얻었나?
친구에게서 그녀의 시누이들에 대한 말들을 듣고 종종 분개했으면 분개했지, 내가 시누이로서 새언니에게 '뭔가 해야겠다'라고 불순한 마음을 먹은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엄마는 지레 걱정이 됐고 노파심에 나를 미리 단속하려 드신 거다.
남의 부부 사이에 아무 상관도 없는 내가 낄 일은 아니지 않은가?
시누이가 뭐라고 '감히' 남의 부부 사이에 간섭하려 드느냔 말이다.
(물론 속으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최대한 빠지기로 한다.)
진심으로 당시에 나는 내 앞가림하는 일이 시급했다.
내 코가 석잔데 남의 일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엄마도 참, 이 딸을 어떻게 보고?
게다가 할 말이 있으면 시어머니인 엄마는 살짝 몇 마디 며느리에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나까지 나설 필요가 있을까?
3남 1녀의 유일한 고명딸로서 비록 저 말을 들을 당시까지 취업도 못하고 백수 상태로 살긴 했지만, 공무원 시험 보겠다고 도전하는 족족 떨어지긴 했지만, 나도 왕년에는 우리 집에서 귀한 딸이었는데 혹시라도 그 딸이 시누이짓을 할까 미리부터 단속해야만 하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린 건가?
어쩌다가 내가 이런 신세가 되었나.
이제 나는 며느리에게 밀리는 건가?
그래도 엄마 친딸은 나인데?
며느리는 남인데?
결혼하기도 전에 벌써 며느리 역성드시는 건가?
지금까지 난 고요했는데, 갑자기 오빠 여자 친구 등장에 이렇게 돼 버리다니.
이게 다 그 언니 때문이야.
그 언니가 등장하기 전까지 난 그런대로 괜찮았다고.
가만, 그러고 보니 결혼도 하기 전에 그 언니가 좀 거시기하네?
에구머니, 망측해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아, 이런 게 바로 엄마가 염려해마지 않았던 '시누이짓'의 시초겠구나.
아서라 아서.
시누이짓이라,
'짓'이란 말은 대개 어감도 좋지 않고 그 말이 붙으면 그리 좋은 의미로는 쓰이지 않는다는 것쯤은 나도 진작에 습득한 사람이다.
아마도 엄마는 당신이 그 옛날에 '시누이짓'을 당해서라기보다 주위에서 보고 들은 '시누이짓'에 지레 질려서 딸은 절대 그러지 말기를 바라셨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지. 엄마, 너무 그러면 나 엇나가버릴지도 몰라."
라고 버르장머리 없이 말하지는 않았다, 물론.
아무리 내가 후기 쓰기를 좋아한다고 해도 '시누이짓 후기'는 평생 쓸 일이 없을 테니까 걱정 마시라니까.
엄마도 참.
엄만 꼭 나만 가지고 그래.
그리고 엄마,
세상은 넓고 좋은 시누이들도 많다우.
예를 들면... 멀리서 찾을 거 없잖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