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며느리가 어렵다고 하셨어.

때아닌 기후 위기 논쟁

by 글임자
22. 12. 8.

< 사진 임자 = 글임자 >


"질부, 나는 몌느리들 오믄 그라고(그렇게) 어렵데."

"나도 그럽디다. 아들은 괜찮은디 몌느리들하고 같이 온다고 하믄 더 신경쓰입디다."

"내 자식들은 덜 그런디 몌느리들은 놈(남)의 자식들이라 어려워."

"그러게 말이오, 당숙모. 온다고 하믄 한 번이라도 더 쓸고 닦고 해야 써.


우리네 시어머니들의 대화를 찾아서~

엄마와 작은 집 할머니는 명절이라든지 생신이라든지 가족 모임이 있어서 며느리들이 출동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일거리가 늘어나 더욱 분주해지곤 하셨다.


"이번 주 토요일에 너희 새언니랑 다 온다고 하더라."

엄마는 오빠인 아들이 온다고 말하기보다 며느리가 온다고 항상 말씀하신다.

부모님 댁 방문자의 주어 자리는 아들보다는 며느리에게 우선권이 있는듯했다.

며칠 전에도 친정에 갔을 때 엄마는 혼자서 거실을 쓸고 닦고 물건을 정리하고 욕실을 청소하시느라 바빠 보였다.

허리가 아프다며 복대까지 차고서 자그마치 세 며느리 맞을 준비를 하고 계셨다.


"느이 새언니들이 와서 숭(흉) 보면 어쩌냐. 집이라도 깨끗이 치워놓고 있어야제. 더럽게 하고 있으믄 못써야."

"아이고, 허리도 아프다면서 적당히 하셔. 좀 어질러져 있다고 며느리들이 숭 보겠수?"

"그래도 그런 것이 아니다. 말은 안 해도 속으로는 숭 볼지 몰라야."

엄마는 며느리들이 방문한다고 하면 며칠 전부터 부산을 떨며 그녀들에게 숭 잡히지 않도록 애를 쓰신다.

하긴, 오랜만에 시가라고 왔는데 어수선하고 지저분하면 오는 사람들에게도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저렇듯 청소에 열심인 것도 어떻게 보면

'나는 늙었어도 할 만큼은 하고 산다.'

라든지

'최소한 며느리에게 쾌적한 잠자리를 제공하고 싶다.'

라는 그런 마음의 표출일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들을 어려운 손님 대하듯 예의를 보이는 엄마만의 방식일지도.


"엄마, 무슨 나물을 이렇게 많이 담가놨어?"

"느이 새언니가 좋아한다고 안 하냐? OO 어매 오믄 먹고 싸 가라고 그러제."

"아휴, 적당히 먹어야 맛있지. 너무 많이 먹으면 맛도 없어."

"니가 뭔 상관이냐. 누가 너 먹으라고 그러냐. 느이 새언니 많이 먹으라고 그러제. 너는 벨(별) 것을 다 간섭한다잉."

"그래도 좀 적당히 하셔. 한두 번이 맛있지 맨날 먹으면 질려서 맛도 없다니까!"

"아따. 잔소리도 많다. 시끄럽다!"

내게 잔소리한다고 듣기 싫다고까지 말한 걸 보면 엄마는 정말 듣기 싫으신 거다.

이쯤에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엄마. 아무리 며느리가 좋아해도 그렇지. 뭐든 적당한 게 좋다니까. 하루 종일 며칠 동안 날마다 똑같은 반찬에 밥을 먹으면 밥이 맛이나 있겠수? 아무리 좋아하는 반찬이라도 적당히 먹어 줘야 더 맛있는 거라고! 시어머니가 싸주면 며느리는 거절도 못 하고 양껏 싸가서 질려가지고 다 먹지도 못하고 그럼 뭐 해?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 그러다가 계속 놔두면 냉장고에서 썩어. 썩는다고! 그럼 버려야지 별수 있나 뭐. 해준 보람도 없이 그게 뭐유? 엄마는 다 좋은데 가끔 보면 너무 지나치단 말이야.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면 뭐 해? 몇 번 먹고 안 먹으면 결국엔 버리게 되는 거지. 아깝게 그런 일을 왜 해? 조금만 해서 주고 며느리가 먹고 싶을 때 데쳐서 만들어 먹으라고 말린 걸 그냥 줘. 그럼 되잖아. 어련히 며느리가 알아서 잘해 먹을까. 아이고. 그 공이 아깝지도 않수?"

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물론.


아무리 공을 들여 만든 시어머니의 음식이라도 먹다가 질려 냉장고에 방치됐다가 어느 순간 상해 버려 먹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을 단지 시어머니의 성의를 생각해서 꾸역꾸역 남김없이 먹어치울 며느리는 세상에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게다가

"그리고 우리나라 음식물 쓰레기 양이 하루에 얼마나 되는지나 알고나 그러시는 거유?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음식 쓰레기가 2만 톤이나 나온다고 합디다. 그중에 4분의 1은 먹기도 전에 버려진다고 하지 않수.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루에 일 인당 매일 400g씩 음식 쓰레기를 버리는 셈 이래. 버리는 음식만 줄여도 세계의 수 억 명이 배고픔을 면할 수도 있다고 했어. 그리고 음식 쓰레기는 기후 위기와도 직결된다는 사실을 알긴 아우? 음식 쓰레기를 수거하고 재활용할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엄청나다고 하잖아. 지금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하루에 한 끼도 못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으시겠지?"

라고 열변을 토하며 엄마를 계도하지도 못했다 물론.


며느리를 향한 시어머니의 무조건적인 반찬 제공은 가끔 엉뚱한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며느리 신분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엄마는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점점 며느리였던 시절보다 이젠 시어머니로 사는 세월이 더 길어질 터인데 저런 식으로 계속하다가는 감당해 내지 못할 것 같았다.

시골 분이라 그런지(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엄마는 손이 크다.

밥을 담을 때도 반찬을 담을 때도 항상

"많이 담아라. 적게 담으믄 손 적다고 놈들이 숭본다."

라는 말씀을 항상 입에 달고 사시는 분이다.

"많이 담아가지고 못 먹고 버리는 것보단 적당히 담고 먹고 싶으면 더 갖다 먹는 게 더 나아."

이렇게 내가 수 년째 말해 와도 언제나 손이 적은 나의 '간사함'을 나무라신다.

"그렇게 음식을 쬐까씩(조금씩) 담으믄 놈들이 간사하다고 해야. 더 담어라잉."

그릇에 담긴 음식의 양과 '간사함'과의 상관관계를 미처 생각도 못 했었는데, 전혀 상관도 없을 것 같은 둘의 사이가 어쩜 이렇게 얼토당토않게 엄마의 논리 안에서 빛을 발한단 말인가.

"엄마. 그것들은 전혀 아무 상관도 없어. 오히려 버려지는 음식의 양과 기후 위기가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요!"

라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진심으로 나는 내 몫이라도 덜어 배를 곯고 있는 그 어느 나라에라도 보내주고 싶었다.

당장에 그렇게는 못할 망정 최소한 음식을 버리는 일은 가급적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한편, 거실에는 큰 대야에 깍두기가 소복이 담겨 있었다.

"엄마, 이건 또 뭐야?"

"느이 언니들 오믄 가져가라고 했제. 지금 해 놔야 와서 가져가믄 딱 맛있게 익어서 맛나다."

"아이고, 며느리들한테 먼저 먹을 건지 물어보고 하라니까? 먹을지 안 먹을지도 모르고 무조건 주면 안 된다니까."

"주믄 먹지 왜 안 먹는다냐?!"

"그건 엄마 생각이고. 지금 먹고 있는 게 남았으면 안 가져갈 수도 있는데 이렇게 많이 해 놓으면 어째?"

"걱정하지 마라. 다 가져간다고 할 것인께."

며느리의 의사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시가에서 주는 것은 무조건 다 가져갈 것이라는 맹신 혹은 착각에 단단히 빠진 엄마는 뭐든 일을 먼저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이다.

"엄마, 요즘 세상에 누가 얼마나 많이씩 먹는다고 그래? 적당한 게 좋은 거라니까!"

"너는 느이 새언니들이 다 너 같은 줄 아냐? 너는 밥을 그것이 뭣이라고 먹냐? 새 모이만치 쬐까씩 먹고. 애기들보다 더 적게 먹으면서 뭔 잔말이 그라고 많냐."


이젠 나의 식습관까지 걸고넘어지신다.

엄마 말씀대로 나는 한꺼번에 많이 먹는 타입은 아니다.

조금씩 그러나 적당히(내 기준에서는 적당히지만 남들 눈에는, 특히나 남편과 우리 부모님 시각에서는 적게) 먹는 편인 나는 '무조건 많이'를 숭배하는 엄마를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다.

어차피 사람들은 각자의 시선에서 나름의 기준에 빠져 살기 마련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답답함을 느낄 때가 간혹 있다.

유난히 음식물 쓰레기에 민감한 나는 그래서 엄마의 행동을 더 이해 못 하는지도 모른다.



오지랖과 계도 사이,

쉽사리 합의가 이뤄질 것 같지 않은 모녀는 그날도 종일 서로 자신의 말이 옳다며 설왕설래했다.


"하다 본께 좀 많긴 하다야. 너 깍두기 남았냐? 좀 가져갈래?"

"아니. 저번에 준 것도 남았어. 우리가 반찬 얼마나 많이 먹나 뭐. 한 그릇이면 한 달도 더 먹을걸."

"그때가 언젠디 아직도 남았냐? 너는 밥을 먹고사냐먹고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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