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어머니는 명절에 꼭 그러시더라
한결같으셔
2023. 9. 25.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번 추석에 소갈비를 할끄나 돼지갈비를 할끄나?"
"엄마, 꼭 갈비 안 해도 되잖아?"
"그래도 우리 애기들 다 오고 그런디 많이 해놔야제."
"아직 멀었는데 벌써 준비하게?"
"죽순도 좀 담가놓고 해야쓰겄다. 느이 큰 새언니가 죽순을 좋아한단 말이다. 많이 해서 갈 때 싸줘야쓰겄다."
"엄마, 죽순은 나도 좋아해. 새언니만 좋아하는 거 아니라고! 그리고 싸주긴 뭘 싸준다고 그래? 한 이틀 먹으면 질려서 맛도 없다고! 언니가 가져갈지 안 가져갈지도 모르고 무조건 많이 하면 안 된다니까 그러네. 제발 며느리한테 물어보고 좀 싸줘. 무조건 해놓고 가져가라고 하면 어떡해? 그러면 며느리도 안 좋아한다니까. 뭐든 적당히 좀 하세요!"
라고는 말도 못 꺼냈다.
게다가 그 '애기들'을 확실히 동반하고 올지 안올지도 불확실한 마당에 벌써부터 메뉴를 읊고 계셨다 .
보통 명절이 한 달 정도 남으면 엄마는 슬슬 발동을 걸기 시작하신다.
이번에 또 어떤 것들을 준비할까, 아들, 손주, 며느리들에게 뭘 해서 먹일까, 뭘 바리바리 싸서 보낼까 하고 말이다.
2주 전에는 방앗간에 들르셨다.(고 들었다.)
참새는 아니지만 엄마는 이맘때쯤 방앗간을 결코 그냥 지나치지 못하신다.
단언컨대,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명절을 2주 가량 앞두고 시골 시어머니들에게 면 소재지에서 가장 핫플레이스가 되는 곳이 바로 방앗간이라고 말이다.
명절에 닥쳐서 갓 짠 참기름을 며느리 손에 들려 보내주시려고, 갓 빻은 매콤한 햇고춧가루를 한 봉지 챙겨 주시려고, 참기름은 참기름이고 들기름은 또 얘기가 달라지는 거니까 들기름은 들기름대로 들깻가루는 들깻가루대로 또 쓸모가 있으므로 따로 챙기셔야 했다.
그리고 냉동실을 맨 위칸부터 꼼꼼히 스캔하기 시작하신다.
어디 '며느리들한테 퍼줄 거 없나' 하고 말이다.
"언니네(우리 집에서 친딸은 나 혼자였으므로 여기서 언니라 함은 전부 새언니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마늘도 떨어졌다고 하더라. 이참에 오믄 몇 봉다리 줘야쓰겄다. 고추도 다 따서 김치냉장고에 넣어 놨다가 오믄 줘야쓰겄네. 당숙모가 이참에 대파를 많이 주셨는디 그것도 다 다듬어서 싸놨다. 너는 나중에 쬐까 담아놓은거 가져가라. 많은 것은 새언니 몫이다.깻잎 재워 둔 것도 잘 먹더라. 그것도 한통 담아야제. 마늘장아찌랑 고추 장아찌도 벌써 다 먹었다고 하구만. 그나저나 너는 마늘 찧은 거 남았냐?"
며느리만 살뜰히 챙기시다가 막판에 깜빡했던 하나뿐인 친딸도 살짝 끼워주는 센스를 빠뜨리지 않는 그 시어머니는 언제 봐도 며느리 사랑이 대단하다.(고 친딸은 옆에서 느낀다.)
적어도 엄마는 새언니들이 오빠들과 살면서 고생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계신 것 같다.(고 나는 늘 생각해 왔다.) 최소한 '내 아들이 세상 최고'라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사는 시어머니는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오빠들의 행태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계신 게 틀림없다.
그렇다고 오빠들이 엉망진창으로 살고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물론.
부모에게는 살뜰한 아들, 나에게는 듬직한 오빠들이지만 부부사이란 또 모르는 거니까, 당사자들이 아니고는 절대 알 수 없는 일들이 숱하게 많으니까, 엄마는 그 점을 정상참작하시는 것 같다.
"언제 갈비 사 올래? 미리 해 놔야 언니들 오믄 바로 먹을 거 아니냐?"
일주일 전부터 엄마는 내게 성화시다.
"엄마, 그 갈비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라니까! 뭘 벌써부터 사라고 그래? 돈이 없지 갈비가 없을까. 그 갈비 어디 안 간다고요."
"그래도 미리미리 사놔야 쓸 것 아니냐. 느이 언니가 저번에도 그거 잘 먹더라."
"그 며느리 집에서는 더 잘 먹고 있어. 엄마가 갈비 안 해줘도 오빠가 맨날 사줘서 더 잘 먹고살고 있다고요! 다른 것도 많이 하는데 갈비 그것 좀 없으면 어때? 그만 좀 재촉하세요!"
라고는 발끈하지 않았다 나는.
가끔 그 시어머니는 며느리들에게 살짝, 너무 헌신적(?)인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긴 하다.
적당히를 아셔야 할 터인데.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친정 로컬 푸드를 비롯해 오만가지를 야금야금 챙겨 오는 친딸은 대놓고 할 말이 없다.
세 명의 며느리들보다 몇 배는 더 많이 가져다 먹는 사람이 그 시어머니의 친딸인 바로 나였으므로.
그리고 친딸은 잘 알고 있다.
벌써부터 그 시어머니가 며느리들과 손자들에게 줄 용돈을 두둑이 인출해 두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