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남모를 속앓이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이고 이제 좀 살겄다. 절간같이 조용하고 좋다야."
한 부대의 손주들이 다녀간 뒤 엄마 얼굴이 그전보다 더 활짝 피었다, 고 느낀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가뿐하고 속까지 후련한 사람은 나였다.
썰물 같은 친손주들이 모두 빠져나간 자리엔 고요만이 남았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친정 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부모님에겐 다섯 명의 친손주와 두 명의 외손주가 있다.
친손주 중3인 장손은 불참하고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모였다.
"애기들 오믄 또 얼마나 까불고 놀끄나."
아들 며느리에 알토란 같은 손주들까지 볼 생각에 진작부터 기분이 좋아지면서도 엄마는 그들과 함께 할 1박 2일을 근심(?)스러워하셨다.
심란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으셨던 것이다.
평소엔 부모님 두 분만 살고 계셔서 조용하기만 한 시골집이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동반해서 갈 때나 시끄럽지 두 분의 말소리도 그다지 크지 않은 집은 가끔 괴괴하기까지 하다.
그러다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어린것들이 방문하면 비로소 활기를 띠게 되는 것이다.
아니, 야단법석이다.
아파트에서만 생활하는 아이들은 시골에 오면 층간소음의 족쇄에 그동안 억눌린 에너지를 실컷 방출하느라 정신없이 소리도 지르고 뛰어놀며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자유로움을 만끽하곤 한다.
아무리 단독주택 생활을 하는 시골살이라지만 도를 넘은 자유분방함은 '주택 간 소음'으로 잡혀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가장 연장자인 중3의 불참으로 내 딸과 동갑인 열한 살짜리 남조카가 호랑이 없는 굴에 대장 노릇을 했다.
최연소자는 이제 겨우 네 살인 여조카다.
바로 위에 다섯 살 남조카가 있다.
어떻게든 연장자들 사이에 끼어 보려고 기웃거리지만 어린이집을 다니는 두 명의 미취학 아동들에게 감히 초등생들의 세계로 입문한다는 건 녹록지만은 않아 보였다.
유아기의 아이들이 타고 놀만 한 미끄럼틀을 열한 살이 거꾸로 기어 올라 시범을 보이면 덩달아 나머지 연소자들이 벤치마킹을 하기 시작한다.
정작 저희들의 놀이터를 뺏긴 네 살과 다섯 살은 갈 곳을 잃고 결국 제 엄마들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린다.
"얘들아, 같이 사이좋게 놀아야지. 동생들도 좀 끼워 주는 게 어때?."
"그래, 너희들도 이리 와."
그렇지만 마지못해 나의 압력으로 동생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은 얼마 가지 않아 어느 순간 다시 저희들끼리만 어울리게 되었고 두 명의 어린것들은 금세 시무룩해진다.
한글도 모르는 어린것들이 질풍노도의 초등생들 사이에서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한글은커녕 가위바위보조차도 제 맘대로 안돼 금방 소외당하고 울상이 되어버리는데 말이다.
방석 집어던지고 받기, 할머니의 운동기구에 매달리기, 숨바꼭질, 술래잡기, 옷장 속에 숨어있기, 이렇듯 활기차다 못해 정신을 쏙 빼놓는 사촌들끼리의 친목 활동의 결과 쌀 포대의 쌀은 반이나 거실 바닥에 쏟아졌고 식탁 위에 놓였던 물건들은 헝클어지고 떨어졌으며, 잘 개어져 있던 옷장 속의 이불이며 베개들이 와르르 쏟아졌고, 식탁에 앉아 있던 나와 큰 새언니는 두 번이나 철없는 것들이 던진 방석에 얻어맞았다.
F1 경기장에서 광란의 질주를 하는 풍경을 보는 것보다도 더 고막이 찢어질 듯, 내 혼이 다 달아난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부모님은 차라리 마당으로 나가셨다.
"얘들아, 좀 조용히 놀면 좋겠다. 너무 시끄러운 것 같지 않아? 그러다 다치겠어. 동생들도 있으니까 조심히 놀자."
저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들들이라 그런가? 언니 집에서도 저렇게 놀아?"
"아유, 아가씨, 난 집에 있으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
전생에 무슨 복을 그리도 많이 지으셨길래 언니는 아들을 셋씩이나 낳으셨소 그래?
아들만 둔 집은 어떻게 노는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남매를 둔 나는 항상 이 정도면 무난하다, 그런 마음이었다.
"2시에 간담서? 얼른 짐 챙겨라."
엄마 얼굴도 피곤해 보였다.
물론 손주들과 신나게 놀아서가 절대 아니다.
나도 옆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만 구경했지만 까닭 없이 피곤이 몰려왔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출발 시각은 한 시간이나 지연되고 말았다.
얼른 보내려고 설거지도 나 혼자 도맡았다.
3시가 넘어 아들 손주 며느리를 다 보내고 나와 우리 아이들만 남았다.
"아이고, 뭔 머슴애들이 그라고 시끄럽게 노는가 모르겄다. 하긴 아파트에서 얼마나 편히 놀겄냐. 시골이라도 와서 마음대로 뛰고 놀아야제."
"나도 정신이 없습디다. 다 갔으니까 이제 좀 쉬셔."
아빠도 평온한 얼굴로 느긋하게 뉴스 시청을 하고 계셨다.
외손주 둘도 얌전히 그 곁에 앉았다.
갑자기 엄마가 서두르셨다.
"느그도 얼른 가야제. 내일 학교 갈라믄 얼른얼른 가서 쉬어라. 느이 엄마도 피곤하겄다. 얼른 짐 챙겨서 집에 가라."
아닌 게 아니라 한 것도 없는데 나도 꽤 피곤함을 느꼈다.
분위기가 여간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게 아니었다.
부모님에게도 휴식이 필요해 보였다.
자식이고 손주들이고 보면 물론 반갑고 좋지만 어른들이 피곤한 건 어쩔 수가 없다.
나도 자식들을 키우지만 예쁜 건 예쁜 것이고, 힘든 건 힘든 거다.
전혀 별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잘 안다.
마치 큰 일을 치러낸 사람들처럼 부모님은 하루 사이에 낯빛이 어두워졌다고 느꼈다.
그 옛날 나의 할머니께서 종종 하시던 말씀이 왜 하필 그 순간에 생각났을까?
"손주들은 오믄 반갑고 가믄 더 반가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