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를 또 한 솥이나 불렸다.

엄마식의 비교급

by 글임자
23. 1. 20. 엿기름도 이렇게나 많이 어디에 쓰시려고?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아들 며느리 중에 못 먹어서 굶고 사는 사람 없다네. 적당히 좀 합시다."

"저거 해 봤자 한 볼태기도 안돼. 수가 몇인디?"

"아이고, 며느리들 성가시게 하지 말고 좀 줄이라니까."

"저것은 제주도에서 온 것이라 더 맛나."

"무슨 고사리를 저렇게나 많이 담갔수? 설에 고사리만 먹고 살 거유?"

"너는 무슨 잔소리가 그라고 많냐."

"날마다 먹으면 맛도 없다니까. 적어야 더 맛있는 법이라고."

"너는 꼭 옛날 느이 할매 같다잉. 시끄럽다! 그때 잔소리도 징했는디 그만 좀 해라. 듣기도 싫다!"


10년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까지 들먹이며 엄마는 딸을 제지하고 나섰다.

그때 그 잔소리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상상이 안 가지만 엄마가 저렇게 진저리를 칠 정도라면 썩 유쾌한 기억은 결코 아니었음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엄마는, 엄마만 제외하고 모든 가족들이 잔소리를 많이 한다, 고 생각하시는 분이다,라고 또 나는 생각한다.


"엄마, 또 이렇게 많이 담가 놨어? 조금씩만 하라니까. 날마다 양껏 해가지고 누가 먹지도 않으면 내가 가져가서 몇 날이고 나 혼자 다 먹고. 그렇게 먹으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맛이 없어!"

"너희 새 언니네 친정도 좀 주고 해야제. 우리만 먹을라고 이렇게 한 줄 아냐?"

"아이고, 사돈네 나물까지 다 신경 쓰는 거유? 언니네 친정에서 어련히 알아서 할까."

"그래도 많으니까 나눠 먹어야제."

"그러면 불리지 말고 그냥 드려. 그걸 또 착실히 다 불려놨수 그래?"

며느리들이 명절 증후군을 앓을 조짐을 보이기도 전에 엄마는 딸의 잔소리 증후군을 못 견뎌하신다.

설마설마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였다.

명절 준비한다고 반찬거리를 시장 봐서 들른 친정에서 나는 또 대용량의 고사리가 불려진 솥단지를 보았다.


틀린 말은 한마디도 안 했다, 나는.

매번 명절 때마다 나는 친정 잔반 처리반 단장이었다.

그렇게 조금만 하라고 하라고 잔소리를 해도 엄마는

"그래도 모자라믄 못쓴다. 손이 너무 적어도 간사해서 못써."

라며 수 십 년째 해오던 방식을 쉽게 버리지 못하셨다.

'손이 적다'는 것을, 매국노나 간신배 또는 변절자에게나 어울릴 법한 '간사하다'는 표현을 갖다 붙이는 게 전혀 사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는 엄마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거 나물 많이 남았은께 너 다 갖다 먹어라잉."

이러면서 내 몫을 언제나 따로 챙겨두셨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내가 뭐라고 했수? 좀 적당히 하라고 했잖수?"

"그래도 해서 남아야제 모자라믄 쓴다냐. 얼른 가져가기나 해라, 잔소리는 그만하고."

남들은 자식 몫으로 밭을 떼어주고 산을 떼어주기도 한다고 하더라마는(어디까지나 내겐 먼 나라 이웃나라 얘기일 뿐이지만, 그런 것을 바라지도 않지만) 내가 엄마에게 받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물 과욕이 부른 참사를 뒤처리하는 권리 내지는 의무가 다였다.


시가에서 친정으로 넘어가면 엄마는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갖가지 나물 반찬을 차곡차곡 냉장고에 쟁여 두신 걸 꺼내 놓으신다.

행여라도 덜렁대는 딸이 깜빡하고 처리 못할까 봐, 친정에 그대로 두고 가면 그처럼 난감한 일이 없었으므로 언제나 현관문 앞에 한 보따리씩 이바지를 준비해 두시는 것이었다.

물론 나도 아이들도 나물을 좋아하기는 한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적당히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반찬이라도 명절 내내 며칠 내리 먹으면 질리는 것은 겨울에 눈이 내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강요된 이바지를 거부하지 못해 언제나 '명절 잔반 처리 VVIP'로 거듭날 뿐이다.


"나는 너 없었으면 울 뻔했다."

라며 종종 말씀하시는데, 명절 뒤끝에는 난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다.

'내가 없었으면 저 쌓인 나물들을 처리해 줄 딸이 없어서 울지도 모른다는 그 얘기일까?'

하고 얼토당토않은 억측까지 하게 된다.

평소에는 자잘한 심부름을 해 준다거나 농번기에 손을 넣어준다거나 가끔 병원에 모시고 간다거나 할 때 내가 출동을 하곤 하는데 '너 없었더라면 울 뻔했다.'는 그 말은 아마도 내가 조금은 부모님께 도움이 되는 자식이라서 그렇지 않겠나 싶었지만 내 동의도 구하지 않고 무조건 안겨주는 나물들 앞에서는 또 다른 마음이 들면서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내가 한 솥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마당 가에 불을 지펴 솥단지에 한 가득씩 뭔가를 하는 그런 종류의 것을 말한다.

한 치의 과장됨이 없다.

차마 며느리에게는 가져가겠느냐고 말 못 하시고 애먼 딸만 가지고 이렇게나 내리사랑을 쏟아주시는 우리 엄마.

나는 어떻게 그 은혜를 다 갚아드린단 말인가.


어른들은 그동안 당신들의 방식이 있어서 자식들이 아무리 옆에서 얘기를 해도 전혀 통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법이다.

4남매와 손주들이 다 모이면 총멤버는 17명, 물론 적은 수는 아니지만 엄마가 간과하시는 게 분명히 있다.

사람 수가 많은 만큼 음식도 그에 걸맞아야 한다고 한사코 고집하시는 엄마.

내겐 다소 이상한 엄마식의 비교급이다.

하지만 엄마, 모든 가족들이 매 끼니마다 나물만 먹지는 않는다고요.


이번 설에도 나물 고문을 면치 못하리라는 강한 예감에 휩싸였다.

나는 비구니도 아닌데 앞으로 또 며칠을 나물 속에 파묻혀야 하나?

엄마는 정녕 나를 비구니로 내몰 셈이신가?

질릴 것에 대비하여 명절을 앞두고는 일정 기간 동안은 나물을 먹지 않음으로써 나름대로 노하우까지 터득해 실천하는 중이다.

마루에 삐쭉빼쭉 보리 싹이 튼 걸 보니 식혜 한 솥도 떼어놓은 당상이다.


내가 배가 불렀지.

엄마 살아계실 때 실컷 받아먹을 때가 좋을 때인데, 나중엔 그리움에 울부짖게 될 거면서...

난 또 엄마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나야말로 울 뻔했다.

나물 그것 좀 질리면 어때?

그렇게 퍼주는 엄마의 사랑만큼은 절대 질리지가 않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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