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난을 '합격'과 맞교환하겠어요, 기꺼이.
일방적인 거래 요청
22. 9. 25.
< 사진 임자 = 글임자 >
"가난한 건 죄가 아니지만 '연이은 불합격'은 죄다, 마땅하고도 충분히."
"불합격한 죄는 미워하되, 불합격한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평소에도 분수껏, 주제에 맞게 사는 게 생활신조라서 크게 무언가를 욕심내 본다거나 내게 없는 남의 것을 부러워한다거나 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가난에 허덕이며 살 수도 있을까 싶게 어려웠던 때가 바로 합격하기 직전이었다.
물론 누가 억지로 시킨 일도 아니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다.
2008년 정작 내가 지원하고 싶은 지역은 두 명인가 세 명을 뽑았고, 다른 시에서 열 명 이상을 뽑는다고 해서 무모하게 그곳을 지원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불합격이 나에게 어서 오라며 두 팔 벌리고 격렬히도 안아주었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닐 거야. 사람 심리가 그렇지, 적게 뽑는 곳보다는 한 명이라도 더 뽑는 곳에 가고 싶은 거, 그렇다고 합격할 확률이 꼭 더 높아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1명을 뽑든 1,000명을 뽑든 붙을 사람은 붙고 떨어질 사람은 떨어진다.
그 해에 마무리로 서울 지방직을 끝내고 남자 친구와의 '대낮에 한 이별'을 계기로 친구들, 부모님과도 연락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핸드폰은 발, 착신 모두 정지한 후에 새로운 자취방을 구했다.
나도 '합격'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건지 구경 좀 하자.
할 때도 됐잖아.
남동생에게만 내 거취를 알리고 부모님께는 멀리 다른 지역으로 공부하러 갔다고 전달하란 임무를 주고 속세와의 인연을 끊기에 이른다.
따지고 보면 그곳도 부모님 집에서 그리 멀지 않기는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취사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나마 빛 구경을 할 수 있는 작은 창문 달린 방 하나가 내 세계의 전부였다.
부모님께 지원 요청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땐 그저 혼자 힘으로 다 버텨보고 싶어서 간간이 했던 아르바이트비를 밑천 삼아 방 구하는 것부터 교재 구입, 인강 등 모든 것을 혼자 감당했었다.
냉장고도 없었다.
겨울로 접어들 무렵이라 가능했다.
내가 요청했으면 마다하실 부모님도 절대 아닌데, 어릴 때부터 교육받기를,
"공부하고자 하는 자식은 뒷받침해 주겠다. 하지만 학업을 마친 다음에는 각자 자기가 자기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
라는 그 말씀이 언제나 귓가에 맴돌았기 때문이었을까.
지당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지금 내 자녀들에게도 복사해서 붙여 넣기를 하며, 말이 통하던 유아기부터 '자기 책임론', '스스로 어린이'를 종종 입에 올리곤 했다.
무모했는지도 모른다. 엉뚱한 고집으로 불투명하기만 한 공무원 합격의 날을 자꾸 늦추고 있는 건 아닌가도 싶었다.
예수님도 아니면서 어쩌자고 그 수험생활의 십자가를 이고 지고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었던가, 석가모니 부처님도 아니면서 대체 또 어쩌자고 살가죽만 남긴 고행길에 들어섰던가.
인류를 구원할 것도 아니면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도 아니면서.
인적도 드문 외딴 골방에서 혼자 공부하고 인강을 보다가 근처에 걸어서 갈만 한 대학교가 있어 그곳 도서관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도서관 불은 내가 켜고 내가 끈다.'는 일념 하에 가장 먼저 입실하고 가장 늦게 퇴실하곤 했다.
공무원 시험에는 1등으로 못 붙을지언정 도서관 불은 내가 1등으로 켜고 꼴등으로 끄리라.
밤 10시 정도에 자고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아주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던지 매일 꾸준히 한 시간씩 밖으로 나가 빨리 걷기를 했다. 그냥 운동만 하면 시간 아까우니까 두 귀에 언제나 강사들의 목소리는 '원 플러스 원'으로 장착해야 했다.
이상하게 시간 강박관념이 있었는지 책 보고 인강 보는 시간이 아니면 밥을 먹을 때도 이를 닦을 때도 뭘 준비하는 그 짧은 시간에도 항상 mp3(10년도 훨씬 더 전에는 그런 고대 유물이 존재했다.)를 활용했다.
그냥 음악 듣듯 뭐라도 들으면 그중 한 두 개는 건지겠지. 건져야만 했다.
3시 정도에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책 보고 5시가 되면 EBS 라디오를 들었다.
어려서부터 TV보다는 라디오를 가까이했다. 중학교 때부터 꾸준히 들어서 당연한 일상처럼 듣다 보니 수험 기간에도 그것만큼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 가난했던 시절에도 마음이 잠시 평온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5시에 시작하는 '영미 문학관'이었다. 외국 고전을 영어와 한글로 낭독하는데 이는 장수생의 사치라 할만했다. 일일연속극 같은 건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으므로 아쉬운 대로 들으면서 '독거 수험생'의 감정 건강상태가 안녕하신지 체크했다.
비록 세상과 단절되긴 했으나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수험공부만 하다가 당장 내가 어떻게 돼버릴지언정 일단은 공부만 하고 합격한 후에 오은영 박사님과 면담을 해도 좋을 일이었다.
그 와중에도 영어 단어 하나라도 배울성싶어 열심히도 들었다.
머리도 식힐 겸 외따로이 나만의 세상에서 누리는 행복한 사치, 나를 견디게 해 주고 쓰러지지 않게 꽉 붙들어 주던 최고의 종합 비타민이었다. 최근 육아휴직 기간에 EBS를 듣다가 당시 DJ가 현재 음악방송을 하고, 심지어는 가수였다는 사실을 알고(그때부터 가수였는지, 근래에 가수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놀라움과 동시에 반가운 마음이 잠깐 아우성치는데, 새삼 수험생 시절이 떠올라 기분이 묘해지기도 했다.
그때 그 청취자가 지금도 청취자다.
그가 프로그램을 옮겨 간 사이 나도 신분이 바뀌었다.
먹는 건 목숨을 연명할 정도로만, 시험날까지 버틸 만큼만 최소한 간단하게 챙겨 먹었는데(먹을 시간도 아껴서 공부해야 했으므로) 언제부턴가 난데없이 식탐이 마구 생기더니 무슨 음식이 그리도 먹고 싶던지.
원인행위도 없이 바로 입덧하는 경우도 있다던가?
결혼 후 임신 당시에도 없던 식욕이 그때는 왜 그리 뜰끓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수험 스트레스 비슷한 게 아닐까 짐작된다.
가진 게 없는 장수생은 공부하는 데다 한 푼이라도 더 지출을 해야 했기 때문에 형편에 맞게 그럭저럭 살아갔다. 그러다가 나중엔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가 돼 버렸다.
무절제하게 닥치는 대로 먹었더니 8킬로그램이 순식간에 늘었다. 정말 직접 겪고도 믿기지 않는 체험이었다.'확찐자 체험활동'을 제대로 했다.
사람이 그런 식으로 금방 살이 찔 수도 있는 거였구나.
전에는 갑자기 살이 쪘네, 스트레스받아서 살이 쪘네 그러면 다 핑계라고만 생각했는데.
"스트레스받으면 힘드니까 살이 빠져야 되는 거 아냐?"
이렇게 속 모르는 소리, 막말도 많이 했었는데 반성한다.
그리고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 직접 체험하지 않고 어떤 일이 대해, 누군가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섣불리 말하면 안 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하지만 이런 건 시험에 안 나온다.
정신 차리고 시작한 수험생활 초반에는 49Kg 정도였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57Kg이라는 숫자를 본 것이다. 바지가 허벅지에서 올라가다 멈춘다던 그 신세계를 다 경험하다니.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그 얼굴은 내 얼굴이 아니었고 나는 충격을 받았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이니까 해소한다는 핑계로 또 마구 먹기만 했다.
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인가, 내가 어디까지 망가지는지를 시험하는 것인가.
언젠가 남편이 말하길 본인은 그래도 중간중간 치킨도 먹고 햄버거도 먹고 간식은 챙겨 먹었다던데, 난 6.25 전쟁을 다시 만난 듯, 보릿고개를 넘듯 그저 세끼만 먹고 자판기 커피 한잔 사 먹지 않았다. 내 예산에선 사치였다.
자판기 커피는 남의 것이야.
남의 것은 보기만 하는 거야.
함부로 '카페모카'누르는 거 아니야.
그래도 밥은 안 굶고 살았으니 그만하면 행복한 편이었지. 지금 이 시각에도 세계 어느 곳에서는 깨끗한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며칠씩 끼니도 못 먹고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수 없이 많을 텐데.
나의 할머니 '명산 댁'의 말씀은 진리였다.
"사람은 항시 내려다보고 살아야 쓴다. 올려다보고 살면 욕심이 끝이 없단다."
그 말씀이 큰 위로가 돼서 빛을 발하던 시절이었다.
가장 가난했지만 한편으로는 수험생활을 가장 치열하게 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결핍 속에서 화려한 수험생활을 견뎌나갔다.
내가 나에게 가혹하리만치 무자비했던 시절, 그동안의 방만함에 스스로 벌주었다.
항상 건강이 제일인 사람인데 갑자기 살이 찌니 생활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래도 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이 스트레스에 지지 않으리,
'이 병은 공무원 합격만 하면 낫는 병이다.'
이렇게 나를 세뇌시키며 그렇게 수험생활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