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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16. 2023

다른,어른과 어린이

같은 가족, 다른 사람들

2023. 12. 14.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피곤하지?"

"응, 조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내가 엄마 도와줄게요."

"고마워, 우리 아들은 할 일만 잘해도 엄마 도와주는 거야."


현관 정리를 하고 있는 내게 불쑥 아들이 말했다.

어쩜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저렇게 사랑스럽게 할까.


지난 일요일 이모네 김장을 돕고 몸도 고되고 피곤해서 월요일 아침에 8시가 되도록 일어나지 못했다.

평소에는 우리 가족 중에 내가 가장 먼저 일어나는 편이고 보통은 5시에서 6시 사이가 내 기상시간이다.

그런데 그날은 평소보다 훨씬 늦게 일어나 버렸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늦잠 잤다'라고 한다지 아마?

알람도 평일에는 똑같은 시간에 울리게 맞춰 두었는데 일요일 알람을 맞추다가 기존 알람을 해제해 버렸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러니까 아들이 한 말은 내가 전날 김장을 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못 일어난 줄 알고 그런 것이다.

그렇게 힘든 노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같은 자세로 몇 시간 일하다 보니 아닌 게 아니라 힘이 들긴 했지만 늦잠이라니.

부랴부랴 아이들 아침을 간단히 차려 주고 있는데 직장인이 뾰로통하게 말했다.

"이 사람이 밥도 안 차려 주고 말이야."

안 차려 준 게 아니라 내가 늦게까지 못 일어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인데 마치 일부러 안 차려 준 것처럼 말했다. 물론 그렇게 말한 데에는 또 원인이 있었다. 전날 약간의 불화가 있었으므로 그 직장인은 내가 일부러 일어나지도 않고 밥도 안 차려 준 게 아니냐며 의심하는 것이다.


"엄마, 어제 정말 고생했어요."

라고 말하는 아들을 보며 불현듯 아침의 일이 떠올랐다. 굳이 떠오르지 않아도 되는 반갑잖은 그 얼굴과 함께.

종종 느끼지만 우리 집 남자 어른에게 기분 상한 말을 듣고, 남자 어린이에게 위안을 받곤 한다.

며느리가 미우면 어디까지 밉다더니, 아무 상관없는 일 가지고 또 그 직장인은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 같았다.

혼자서 착각을 하든 오해를 하든 내가 일일이 해명할 필요는 못 느꼈다.

아침에 살짝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었으나 하교한 아들의 말 한마디에 나는 금세 유쾌해졌다.

같은 상황이라도 이렇게나 다른 반응을 보이는 한 가족이다.

다시금 느꼈다.

세상 모든 곳에 신이 계실 수 없어 어머니를 보내셨고,

우리 집 남자 어른이 아내에게 기분 상하게 한 일을 풀어주기 위해 남자 어린이 보내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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