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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23. 2023

직장인이 연말 회식을 대비하는 방법

마시고 측정하기

2023. 12. 22.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앞으로 출장 갈 때 이거 챙겨가야겠어."

"안 가져갔었어?"


옛 것을 버리고 새것을 취한 직장인은 그 음주측정기를 개시해 보고 싶어 근질근질한 눈치다.


"술 마시고 한 번 불어봐야지, 불안해서 안 되겠어."

"뭐 하러 불안할 정도로까지 마셔? 최대한 버티고 먹지 마. 괜히 음주 단속에 걸려서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술 마시면 절대 운전하지 말고 대리 부르든지 걸어서 가든지 해."

"그게 어디 마음대로 돼? 당연히 술 마시면 운전은 안 하지만 너무 많이 마시면 다음날 아침에도 완전히 덜 깰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당분간은 아무리 억지로 먹이려고 해도 안 마신다고 해. 무슨 일 나면 그 사람들이 책임질 것도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그러니까 내 앞가림은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니까. 나중에 사고 생겨 봐. 누가 거들어 줄 것 같아? 다들 본인 탓해. 알아서 조절하고 조심하고 그래야지, 윗사람이 억지로 먹여서 그랬다고 그러면 누가 잘했다고 할 줄 알아? 아마 바보 같다고 할걸? 내가 알아서 잘 처신해야지."

"여직원들은 덜한데 남직원한테는 막무가내라니까. 왜 그런지 몰라. 여긴 아직도 멀었어."

"그러게, 도대체 언제까지 그 모양으로 살지 모르겠네. 사람들이 옛날 생각만 하고 엉뚱한 소리나 하고 말이야. 왜 거기 사람들은 세상이 바뀐 걸 모르지? 모르고 싶은 건가?"

"내 말이. 쉽게 안 바뀐다니까."

"그 사람들은 안 바뀌고 그 모양이더라도 나는 바뀌고 절대 그렇게 안 살아야지. 배울 것만 배우고 못된 것은 배우지 말아야지.  요즘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들 얼마나 있다고?"

"진짜 옛날 사람들이야."

"옛날 사람들이라고 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 나 근무할 때는 그런 거 많이 못 본 거 같은데. 발령 초반에는 좀 심했는데 점점 덜해지던데? 아무튼 거기가 더 심해. 엉망진창이야."

"아무튼 힘들다 힘들어. 음주측정기나 잘 가지고 다녀봐야지."

"그러니까 내가 커밍아웃하라고 했을 때 했어야지."

"또 무슨 소리야?"

"사실은 여자라고 밝히란 말이야."

"또 쓸데없는 소리 한다."

"술은 술대로 왕창 먹이고, 다음날까지 무슨 운전기사 부리듯 당연하게 운전시키고 그게 뭐야? 그럴 거면 술을 먹이지 말든가 운전을 시키지 말든가."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오늘 한번 시험해 봐야겠어. 잘 작동하는지. 일단 맥주 한 캔 먹어보고 이따가 불어봐야지."


그리하여 직장인은 당장 냉장고로 달려가 맥주 한 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얼마나 나오려나."

잠깐,

인간적으로 술 마시고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불어 봐야 하는 거 아냐?

마신 지 얼마나 됐다고 그 사이를 못 참고 당장 불어버리는 거람?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측정이 됐다.

정말 술을 마신 지 얼마 안 지난 것 같았는데.

"우와. 이거 진짜 된다."

직장인은 호들갑을 떨며 환희심에 넘쳤다.

"이 안 닦아서 오류 난 거 아니야, 또?"

나는 평소의 불신대로 인단 아무 말 대잔치를 했다.

"무슨 소리야. 이 닦았다니까."

직장인은 발끈했다.

"신기하다, 진짜 되는 거 보니까."

"그럼 진짜로 되지 가짜로 될까?"

"작동 잘 되네."

"그럼, 작동이 잘 돼야지, 안되면 되겠어? 측정하려고 산 건데. 게다가 새 거잖아."

"신기하다."

제 손발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바둥거리는 신생아처럼 직장인은 신세계를 경험한 음주측정기 앞에서 신통방통해하며 연신 벙글거렸다.

이 양반이 맥주 한 캔에 벌써 취하셨나?

"이젠 해장해야지. 그리고 또 측정해 봐야지."

내게 술주정이라도 할까 봐, 나는 입막음을 할 요량으로 황태와 콩나물을 잔뜩 넣은 해장국을 끓여 냈다.

"어때? 수치가 좀 떨어졌어? 다음엔 소주 마시고 측정해 봐. 그다음엔 소주랑 맥주 섞어서 마셔 보고."

수학은 못했지만 '경우의 수'까지 고려한 나는 은근슬쩍 제안했다.


"일어나자마자 또 측정해 봐야지, 어때? 얼마나 나왔어?

다음날 나는 득달같이 직장인에게 또 강요했다.

"이따가 점심 때도 한 번 해봐. 지금 시간별로 다 기록하고 있는 거지? 기록을 잘해놔야 나중에 참고하지."

이렇게나 직장인 내조에 열과 성을 다하는 무직자라니!

"다음에 한 번은 왕창 마셔 봐. 어떻게 되나 보게. 여러 가지 경우를 다 시험해 봐야지."

이렇게 못 박는 일도 나는 잊지 않았다.


"무조건 마실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이 마셔봐. 회식할 때 가장 많이 마실 때처럼 말이야. 최대한 비슷하게 해야지, 이왕 하는 거."

할 거면 하고 안 할 거면 말고, 나는 좀 그런 편이다.

일관성이 없어서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직장인과 무직자가 함께 만든 '회식 시뮬레이션', 정확성도 보장 못하고, 일반화시키기도 어렵고, 결정적으로 신뢰성이 없는 그것이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앞뒤 가리지 말고 많이 마셔. 어차피 집에서 마시는 거니까 상관없잖아. 내가 해장국은 원 없이 끓여 줄게. 그리고 자. 푹 자. 열 시간이고 스무 시간이고 그냥 자, 제발. 일어나지만 마.  괜히 중간에 일어나서 나 하는 일 간섭하지 말고 알았지? 나한테 행패나 부리지 말고! 그때는 음주 후 24시간 경과 뒤 결과를 확인해 볼 차례야.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 보자, 응!"

이라고 다음 시뮬레이션을 예고하는 일도 통보해 주었다, 물론.

그 직장인은 강화된 공무원 음주 징계를 나의 퇴직과 늘 연결시키며 걸핏하면 그 일을 들먹이며 살고 있다.


그래도 직장인아!

너무 음주 측정기 믿으면 못써.

내 앞가림은 내가 해야 하는 거야, 명심해.

술 마시면 차는 버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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