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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22. 2023

다음 손님, 조카가 당첨되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고모가 출동한다

2023. 12. 21.

< 사진 임자 = 글임자 >


"언니, OOO 산타 할아버지한테 받고 싶은 선물 있대요?"

여섯 살짜리 여자 조카가 크리스마스만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은,

다행히,

믿는 눈치다.

이 무렵이면 그 존재에 대해 여전히 환상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안 해도 그만이지만 하면 더 그만인 어떤 임무가 있다.

"너무 많아서 물아봐야 할 것 같아요."

둘째 새언니에게 조카의 취향을 최대한 빨리 알려 달라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집 두 어린이들에게는 작년이 마지노선이었으므로 불안 불안해하며 남편과 모의할 일이 이젠 더 이상 없다. 아이들도 대 놓고 뭔가를 요구하지만, 우리도 대놓고 흘려 들어 버린다, 이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카에게는 뭔가 선물을 하고 싶었다.

오빠네는 결혼 후 꽤 시간이 지나 그 조카를 보았으므로 우리 아이들을 많이 예뻐했고, 어린이들이라면 으레 기다려지는 특정한 날에 외삼촌 외숙모로부터 참 많은 선물들을 받아왔다.

우리 부부는 절대 사주지 않는 장난감을 외삼촌이 거금을 들여 사주기도 했으므로 아이들은 차라리 우리에겐 별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것도 같다.

그때는 여느 부모들처럼 우리가 산타 할아버지 역할을 했는데 지극히 현실적인 선물을 안겨주곤 했다. 아이들은 언제나 휘황 찬란한, 얼토당토않고 터무니없는 고가의 물건을 꿈꿨고 가끔은 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물건을 원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안면도 없는 산타 할아버지를 내세워 협상에 들어가야만 했다.

"얘들아, 너희는 두 명이지만 산타 할아버지는 한 명이시잖아.(=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을 너희가 알랑가 몰라?=엄마 아빠는 한 세트야, 물론 이럴 때만, 이럴 때라도.) 그럼 돈이 많이 들겠지?(=우리 가정 경제도 좀 헤아려줘야 하지 않겠니?)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려면 산타 할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까? 그러니까 어느 정도 산타  할아버지가 줄 수 있는 그런 선물을 달라고 기도해 봐.(=최근 산타 할아버지네 집은 외벌이가 됐단다. 그 정도의 아량쯤은 베풀어 줄 수도 있는 일 아니니?)그리고 산타 할아버지도 어린들에게 적당한 것을 선물로 주시지 너무 비싸거나 고급인 물건은 아마 안 주실 걸?(=그런 건 확실히 줄 의향이 없으실 거다.)"

라고 세뇌를 시키곤 했던 것이다.


12월이 되면 다들 산타 할아버지만 기다리고 있으니 산타 할아버지에게도 숨 돌릴 틈을 주어야 한다. 크리스마스가 닥쳐서 주문하면 최악의 사태에 크리스마스가 다 끝난 음에 김 빠진 선물을 받게 될 수도 있으므로 나는 새언니에게 2주 전부터 쐐기를 박았다.

거의 일주일 만에 드디어 조카가 심혈을 기울여 고른 선물이 정체를 드러냈다.

당장 나는 주문을 했고 며칠 전 드디어 조카에게 전달되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조카가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환호하는 그 모습이 영상으로 왔다.

딱 그 나이 정도에 마음을 빼앗길 만한 공주 화장대, 귀걸이를 달고 요란한 봉을 휘두르며 주렁주렁 달 수 있는 것은 다 달고 한껏 치장을 하고 화장대 앞에서 조카는 더없이 달떴다.

귀여운 것 같으니라고.

외삼촌들은 공주 화장대 이런 건 생각도 못했을 거다.

그나저나 우리 애들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면 아마 조카는 그 화장대를 잊을지도 모른다.

나는 서른둘, 결혼할 때 처음으로 화장대라는 것을 가져봤는데,

겨우 여섯 살에 (타력으로) 처음 장만한 화장대라니.

"이제 선물도 받았으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해요."

평소 조카가 너무 늦게 잠든다고 고민하던 새언니 말이 떠올라 화장대를 무기로 협상을 하고자 했다.

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갖고 싶었던 화장대라 너무 신난 나머지 조카는 한동안 더 잠을 설칠지도 모르겠다.

OO아,

어린이가 너무 늦게 잠들면 못써요. 산타 할아버지가 늦게 자는 어린이에겐 줬던 선물을 다시 회수하실 지도 모른단다. 우는 아이에겐 아예 선물을 안 주시지만 선물을 못 받은 것보다 더 억울한 건 받았던 선물을 도로 내놔야 하는 상황 아니겠니? 잘 생각해 보렴.  일찍 자자꾸나. 그래야 쑥쑥 잘 크지.

어여 잠드렴, 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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