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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an 08. 2024

뮤탄스균은 너의 무기

모르는 게 약일  때

2024. 1. 7.

<사진 임자 =글임자 >

 

"엄마, 뮤탄스균이라고 알아?  우리가 단 음식을 먹으면 뮤탄스 균이 생기는데 이때 자일리톨이 들어있는 마이쪼를 먹으면 충치가 안 생겨."

"우리 아들은 그런 것도 알아?"

"그럼. 당연하지!"

"그런 건 어떻게 알았지? 학교에서 배웠어?"

"내가 미생물 책에서 다 봤지. 그러니까 엄마도 미생물 책 좀 읽어 봐."


아들은 어떻게든 '마이쪼'를 사 먹고 싶어서 제가 가진 온갖 (얕고 허술한) 지식을 탈탈 털어내기 시작했다.

뮤탄스균, 자일리톨, 미생물, 충치, 그리고 (아들에게만)치명적인 '마이쪼'

그러니까 이 대화는 단 것을 먹어도 자일리톨만 믿고 미래를 낙관하는 한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이야기 내지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 팍팍 잡는 이야기이다.

'다있소' 매장을  방문한 어린이가 어떻게든 '마이쪼'를, 그것도 비타민 C, D, E를 첨가한 '자일리톨 마이쪼'를  손에 넣기 위한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과정(엄마를 설득하기 위한 고군분투 내지는 얄팍한 상술에 순진하게 넘어가는 어린이의 믿음)을 담은 이야기이다.


"엄마, 나 마이쪼 하나 살까 하는데."

"우리 이거 사러 온 거 아닌데? 구경만 하겠다고 온 거잖아.(= 내 이럴 줄 알았다. 구경하겠다는 말은 곧 뭐 하나를 사겠다는 말인데 '구경만' 하겠다는 네 말을 순진하게 믿은 내가 어리석었구나.)"

"에이, 구경도 하고 사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돈은 가져왔어?"

"아니."

"그럼 어떻게 산다는 거야?"

"엄마 카드 있잖아. 엄마 카드로 먼저 사면 내가 집에 가서 주면 되잖아. 내 용돈에서 줄게. 그럼 되지?"

"근데 마이쪼를 꼭 사야겠어? 너무 달잖아."

"엄마, 내 말을 잘 들어 봐. 우리가 단 음식을 먹으면 이가 잘 썩잖아. 그건 알지?

"알지."

"이때 필요한 게 자일리톨이야. 자일리톨을 먹으면 돼. 그러면 이가 안 썩어. 근데 이 마이쪼는 자일리톨 마이쪼래. 그러니까 이건 먹어도 이가 안 썩는다는 말이지."

"그래도 마이쪼가 엄청 달아서 이가 다 썩어버릴 거 같은데?"

"아니야, 자일리톨에는 충치를 예방하는 성분이 있거든, 그러니까 자일리톨이 들어있는 마이쪼를 먹으면 이가 안 썩어. 그러니까 이건 사도 돼."

"그냥 단 것을 안 먹으면 이가 썩을 일이 없잖아?"

"에이, 그건 너무 멀리 갔다, 엄마."

"아예 처음부터 단 음식을 안 먹는 게 최고 예방책 아니야?"

"엄마, 그냥 마이쪼를 먹는 게 낫겠어? 자일리톨이라도 들어있는 마이쪼를 먹는 게 낫겠어?"

"이왕이면 자일리톨이 들어 있으면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

"그렇지. 바로 그거야. 그러니까 이걸로 사야 돼."

"아니지. 애초에 안 먹으면 그만이지."

"자일리톨이 뮤탄스균을 죽인다니까. 그러니까 먹어도 돼."


이 녀석이 뮤탄스균 하나 알아가지고 묘하게 엄마를 설득하려고 하네?

그러니까 내 말은 자일리톨이 들어있든 나와있든 그냥 단 음식은 최대한 먹지 말자 이건데, 무슨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줄 알고 아들은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말이 안 통할 거다.

아들에겐 좀 그런 면이 있다.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긴 하지만 저렇게 나를 설득하려고 나름 용쓰는데 눈 한번 감아 주자.

집에 도착하자마자 득달같이 이 닦으라고 욕실로 밀어 넣으면 되지 뭐.

결국 마이쪼를 손에 넣은 아들은 특별히 엄마에게는 한꺼번에 두 개씩이나 주는 인심을 쓰면서 말했다.

자일리톨 맹신자가 우리 집에 있었다.

"엄마, 이건 먹어도 충치가 안 생기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특별히 엄마한테는 두 개 줄게."

이런 효자를 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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