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Jan 09. 2024

지극 정성으로 숙취해소 내조를 하는 이유

해장국에 숨은 비밀

2024. 1. 8.

< 사진 임자 = 글임자 >


"술 마셨으니까 해장해야지. 내가 해장국 끓였어. 아이스크림도 사놨어. 포칼이스웨트도 이따가 한 병 타서 마셔. 물을 많이 먹어야지. 꿀물도 타 주리?"


작년에 근무지를 옮긴 후로 남편은 술자리가 굉장히 잦아졌다.

그렇게 술을 좋아하는 팀장님이 1년 만에 승진해서 딴 데로 가시고 이번에 직원이 여럿 바뀌었는데 '설마 그전보다는 덜하겠지'하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았다. 하지만 연말과 연초는 송별회와 환영회만큼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니 받아들여야만 한다. 아무리 싫어도 인정해야만 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직장인의 숙명 말이다.

정말 거짓말 조금 보태서 작년에는 이틀에 한번 꼴로 해장국을 끓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콩나물시루라도 장만하려고 생각했을까.

전쟁이라도 나서 비상식량을 준비하는 사람마냥 황태를 넉넉하게 사서 쟁여 놓고 콩나물은 일 년 내내 냉장고에 대기시켜 놓았다.

만취한 남편에게 아내보다 더 필요한 것은 숙취 해소를 돕는 아스파라긴산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바이다.


"얘들아, 엄마가 또 해장국 끓였어. 엄마가 이렇게까지 해장국을 잘 끓여줄 줄은 몰랐는데."

"해 줘도 그래? 남들은 먹고 싶어도 부인이 안 끓여주는데 또 배부른 소리 하네?"

라고 나는 또 근거도 없는 아무 말 대잔치를 한다.

또,

굳이,

그 양반은 아이들 앞에서 하지 안해도 될 말을, 차라리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했다.

"안 먹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그러지."

"옛날에는 이렇게까지 안 해줬잖아."

또! 이 양반이 본전도 못 찾을 소리를 시작하려는 것 같다.

"또 그 얘기야? 그땐 나도 같이 일하는데, 오만가지 혼자 다 하려니까 피곤하고 힘든데 무슨 해장국이야? 그때 그 정도는 본인이 알아서 챙겨 먹을 줄도 알았어야지. 뭐든 내가 다 해주길 바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 얘기하면 누가 불리해지는지 잘 생각하고 말해. 옛날 얘기를 왜 자꾸 하는 거야, 다 지난 일을?"

그렇게 나한테 단속을 당하고 살아도 쉽게 안 고쳐지나 보다.

힘든 사회 생활 하시는데, 먹기도 싫은 술 억지로 꾸역꾸역 마시고 오셨는데 집에서 해장국 정도는 끓여줘야지 그런 마음으로 하고 있는데 해 줘도 저런 소리를 곧잘 한다.

그냥, 얌전히 그 해장국에 밥이나 말아 잡수시라니까.


"해장국 꼭 안 끓여도 돼. 어차피 시간 지나면 괜찮아져."

"그래도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지."

"당신 힘들까 봐 그러지."

"하나도 안 힘들어. 걱정하지 마."

"아무튼 힘들면 안 해도 돼. 난 해장국 꼭 안 먹어도 되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 대화만 듣는다면 세상에 이렇게 서로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부부가 없다.

단지 저 대화가 우리 부부의 전부가 아니란 점이 함정일 뿐.

 

행여라도,

만에 하나,

설마설마 하지만.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되지만,

전날 술을 왕창 먹고 다음날 출근 안 해버리는 남편이 있다는 흉흉한 소문을 들은 것도 있고 해서,

실제로 그런 사례를 보아서,

술병이 나서 다음날 하루 휴가 내겠다 할까 봐,

출근을 안 할까 봐,

출근을 못하겠다고 할까 봐...


나 그 양반에게 모두 (끓여)주리.

그 양반을 (출근하게 하기)위해서라면 나는 못할 게 없네.

그 양반이 출근하지 않는 날이 몸서리쳐지게 무섭다.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

그 양반과 하루 종일 집에 는 날이 가장 무섭다, 격하게 무섭다.

호한, 마마, 호랑이, 불법 비디오테이프는 저리 가라.

그 양반과 하루 종일 집에 있을 일이 세상에서 가장 두렵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작가의 이전글 뮤탄스균은 너의 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