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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an 11. 2024

방학이라면 이들처럼

콜럼버스도 몰랐을 걸?

2024. 1. 8.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내가 달걀을 세워 볼게."

"안 세워도 되는데..."

"아니야, 조금만 기다려 봐요."


아들이 또 시작했다.

뭐든 실험해 보는 어린이,

반드시 직접 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어린이,

그 어린이가 바로 내 아들이다.

그 옛날, 호랑이가 전자담배 피우던 시절에 서양에 콜럼버스가 있었다면, 대한민국에는 자랑스러운 내 아들이 있다.


"너 그러다가 달걀 깨버리는 거 아니야?"

누나는 동생을 못 미더워했다.

"아니야. 이렇게 계속 위아래로 흔들면 세울 수 있어."

아들은 세상 진지한 얼굴로 댤걀을 세차게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했다.

살살 잡아야 하는데, 저러다가 댤걀 박살 나는 건 시간문제인데. 괜히 엉뚱한 실험 해본다고 깨뜨려서 바닥에 달걀 범벅이나 만드는 거 아닌가 몰라.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엄마 일거리만 만든다'라고 한다지 아마?


"근데 사실 우리 아들이 옛날에도 그거 세운다고 했던 적 있는데, 생각 안 나?"

"언제?"

"유치원 다닐 때 말이야."

"생각 안 나는데?"

"코로나 때문에 유치원 안 가고 집에 있었을 때 말이야. 별 별 실험 다 해봤잖아. 그때 외할머니 집에 가서 외할머니네 닭이 낳은 달걀로 했었는데. 그땐 몇 개 깨 먹었었지. 기억 안 나?"

"내가 그랬나?"

"그랬나가 아니라, 그랬어. 그때도 엄마가 사진 찍어 줬었는데."

책을 보고 따라 했던가 EBS를 보고 따라 했던가?

그때도 집에서만 징역살이를 하다시피 한 몹쓸 세월이라 아이들과 뭐라도 하며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고난 주간이었다.

한창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실험해 보는 일에 재미를 들인 아들은 뭐든지 제 손으로 경험해 보고 싶어 했다.

그런 아들을 옆에서 부추기며 호들갑을 떨어가며 사소한 실험 성공 하나에도 한껏 기를 살려줬던 사람이 또 바로 나였다.


그날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들이 댤걀을 당장 내놓으라고 했다.

댤걀을 세우기 전에 만에 하나 그게 깨져서 비린내라도 풍길까 봐 나는 지레 걱정됐다.

가끔,

아들은,

너무 의욕이, 아니 의욕'' 앞서는 경향이 있다.

나를 열심히 흔들어댔지만, 과거에도 그랬지만, 그냥 마구 흔들기만 한다고 해서 달걀이 거저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서 너 번 달걀이 사방으로 데구루루 구르는 실패를 거듭하고서야 마침내 달걀은 세워졌다.

하지만 몇 년 전 그런 환희의 순간을 이미 경험한 터라, 이번엔 두 번째라, 나는 그리 신기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실험 성공의 감가상각, 뭐 일종의 그런 거라고나 할까.

"엄마, 봐봐. 진짜로 세워졌어. 얼른 와 봐요!"

아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들아, 이젠 예전만큼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는단다.

"건 위아래로 흔들면 알끈이 중심을 잡아 줘서 세워지는 거야."

딸이 야무지게 달걀이 세워지는 원리를 말했다.

"맞아. 알끈이 있어서 가능한 거야."

나도 몰랐었지만 몇 년 전에 아이들과 실험을 한 후 그 원리를 알아보다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 그런 거였어?"

아들은 태어나 그런 말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분명히 같이 찾아봤으면서 생뚱맞은 소리 하는 것 좀 보라지.

다행히 이번에는 댤걀 하나도 깨지 않고 무사히 실험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대단한 댤걀을 깨뜨려 맛난 후라이로 거듭나게 했음은 물론이다.

우리 집 모든 실험의 끝은 먹방이라고나 할까.


"우리 아들 정말 대단하다. 콜럼버스는 이런 방법이 있는 줄도 몰랐겠지?"

실험에 성공한 호기심 많은 아들에게 나는 호들갑 떠는 일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 아들보다 먼저 잽싸게 반응을 보이는 딸이 있었다.

"엄마, 콜럼버스는 발상의 전환을 해서 세운 거고, 이건 과학의 원리를 이용해서 세운 거잖아!"

하여튼,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니까 내 딸은.

"그래. 네 말이 맞다. 맞아."

아무려면 어때?

어쨌든,

그런 거라도(?) 해서 시간이 가긴 갔다.

그래,

뭐라도 해서 어서 이 방학만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벌써 방학이 일주일이나 지났다.

반올림해서 열흘씩이나 갔다.

내일모레 개학이라고 생각만 해도,

그 생각만으로도 기쁘기만 하다.

이 기쁜 마음을 어디에 비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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