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Kg, 작은할아버지의 유산

유산이 손녀의 목 건강에 미치는 영향

by 글임자
22. 10. 22. 유산 수확의 현장

< 사진 임자 = 글임자>


바야흐로, 천고감말랭이의 계절이다.

닿을 수 없는 하늘만큼이나 키다리 감나무 가지에 매달린 대봉이 약 올리며 높다랗게도 열렸다.

준비물은 간소하게 모자, 장갑, 상자 그리고 용도는 확실히 알겠는데 이름은 정확히 모르는 그것, 단지 그뿐이다.


본격적으로 수확하기에 앞서 아빠에게 물건(?) 사용법을 전수받았다.

자그마치 일본에서 건너온 물건이다.

뭐라고 쓰여 있는지 일본어라서 알 길은 없지만 회사의 이름이거나 도구의 이름 정도려니 짐작했다.

중요한 것은 일본어의 뜻이 아니라 그 물건이 본래의 용도에 맞게 제 역할을 충실히 해 내느냐 하는 것이다.

감 따는 도구 하나에도 외세의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었나 보다.

내가 얼핏 보기에도 작동 원리는 단순해 보이는데, 나도 저 정도는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언제나 나보다 한 발 더 빠른 사람들이 있었다. 때늦은 한탄 소리만 처량하다.

국내에서도 그런 도구를 생산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흥선대원군이 살아 계셨다면 아마 나는 감나무에 오르락내리락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돌아가신 작은할아버지께서 심은 감나무라고 했다.

사람도 무조건 키 큰 것을 선호하는 세태를 반영한 것인지 감나무들이 늘씬하고도 키가 아주 컸다.

위로 키가 크는 나무인가 보다.

어떤 감나무들은 옆으로 낮게 가지가 퍼지는 것들도 있던데 할아버지의 유산은

파아란 하늘을 동경한 나머지 위로만 위로만 쭉쭉 뻗어 나갔다.

세상에 만상에.

상속세를 내지 않고도 당장에 먹을 수 있는 유산이라니,

물론 나를 콕 집어 물려주신 것은 아니지만 내가 수확함으로써 물려받은 셈이라고 혼자만 생각했다.


부동산 그까짓 거, 먹지도 못하는 거 물려받아 무엇하나.


먹지도 못할 유산을 물려받고 애통해할 손녀를 지극히 위하신 할아버지의 깊은 뜻이 비로소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일 년에 한 번씩 물려받는 유산은 획기적이기까지 하다.


작은할아버지의 차남이신 당숙의 지휘 아래 비정규직 노동자는 '체험 대봉 수확 현장'에 급히 동원되었다.

"어차피 오늘 다 못 따. 나머지는 다음 주에 따자."

(당숙)님아, 다음 주 스케줄을 벌써부터 조카에게 통보하지 마오,

비록 직장은 없으나 항상 스케줄은 있는 조카랍니다.

나는 비정규직, 게다가 일용직이므로(차라리 프리랜서라고 하는 게 어떨까.) 한 곳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하신 듯하다.

계획에 전혀 없던 가족 여행이라도 서둘러 만들어야 할까 보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어제 수확한 대봉의 무게는 500Kg은 족히 넘을 것이다.

이제 나는 흥청망청 저 유산을 탕진하기만 하면 된다.

다른 건 몰라도 섭취가 가능한 유산이니만큼 잘 먹어주면 그게 최고의 효도려니 하고 또 나 혼자만 생각해본다.

동시에 감말랭이를 해서 누구누구에게 보시를 할지 리스트도 작성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양쪽 어깨가 기원전 5세기 경부터 팔 굽혀 펴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해온 것처럼 아프다.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유산이 후손의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얼마나 강한 후유증을 남기는지를, 유산을 물려받은 티를 얼마나 확실하게 낼 수 있는지를 말이다.

등기소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으나 내 온몸으로 명의이전이 되었다.


일종의 상속세라고, 세금치고는 조금 많은 것도, 아닌 것도 같다고 한번 더 생각했다.

너무 키가 큰 감나무 때문에 대봉을 따는 내내 고개를 하늘 높이 쳐들었어야 해서 목디스크가 오는 것 같았다. 사람이 올려다보고만 살면 이렇게나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또 깨달았다. 그래서 나의 할머니도 생전에 항상 '내려다보고 살아라.' 하셨나 보다.


500Kg의 유산보다도 다시 한번 어떤 진리를 깨우치게 하신 것, 그것이 바로 할아버지의 진정한 유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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