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가내수공업의 계절

애증의 감, 감, 감

by 글임자
22. 10. 23. 감말랭이 만들다가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 사진 임자 = 글임자 >


태초에 하루에 단감을 서른 개도 넘게 먹고도 아무 탈 없이 살았던 사람이 있었다.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면 집으로 돌아와 해년마다 곶감과 감말랭이를 만들던 장수생이 있었다.

오만 가지 과일이 있어도 가장 먼저 감을 집어 드는 '감잡은 여자'가 있었다.

옛날 옛적에 할머니는 그녀에게

"나중에 커서 과수원으로 시집가라."

한 마디를 하셨다.

과수원에서 필요한 건 배우자 겸 일꾼이지 허구한 날 과일만 축내는 먹보가 아닐 것이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아마 돌잡이에서도 감이 놓여 있었더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감을 집었을지도 모른다.

주말에 대봉을 상상 이상으로 수확하긴 했는데 공짜에 욕심이 나서 거절 못하고(정확히는 거절 안 했다는 표현이 맞다.) 일당으로 당숙이 주시는 대로 받았더니 300Kg은 더 될 것 같았다.

다른 욕심은 없는 것 같은데(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과일 욕심이 좀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중에서도 '감' 욕심이 있어서 다른 음식을 나눠 먹을 때는 내 몫과 비슷하게 나눠주거나 내 몫을 덜 남기고라도 남에게 더 주는 편인데 감만큼은 예외다.


주말에 공짜로 얻는 재미에 거칠 것 없이 달려들었다가 온몸에 근육통을 얻는 과보를 톡톡히 받았다.

공짜 좋아하다가 머리가 벗어지기도 전에 내 목이 뒤로 꺾일 판이었다.

마흔이 훌쩍 넘었지만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편식이 심한 게 아닐까 하고 의심될 때가 있다.

가령 이틀 내내 모카 케이크만 먹고 밥을 안 먹는다거나, 히루 종일 단감만 수 십 개 깎아 먹고 밥을 안 먹는다거나, 끼니를 거르고 아이들이 없는 시간을 틈 타 아이스크림을 입안에서 불이 날 때까지 먹는다거나(하도 많이 먹어서 입안에 불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경험을 했다.) 하는 간헐적(?) 편식 혹은 무식한 편식을 할 때 말이다.

이미 다 자란 몸이니까 골고루 영양소를 다 챙겨 먹지 않아도 크게 문제가 있지는 않겠지 싶었다.

물론 간헐적으로 저런 미련한 행동을 할 때의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는

"골고루 먹어야 키도 크고 건강해지지."

라고 이중인격자 같은 소리를 잘도 한다.


"당숙이 따서는 못주신다고 주말에 와서 따가라고 하시더라."

사건의 발단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공리주의에 버금가는 '최대 수확한 자의 최대 배당량'을 짐짓 염두에 두고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대봉을 따다가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할 때까지 모조리 '훑어버리겠다'라고 마음먹었다.


1차로 감당하기 버거운 그 많은 양에 질렸고, '저걸 또 언제 2차로 가공하나' 하는 생각에 심란해졌다.

올해도 대한민국은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했다는데 어쩌자고 올해는 사방에 감나무마다 여봐란듯이 풍년이란 말인가.

가을엔 감나무에 그렇게 눈이 간다. 과연 가지마다 주황색 왕방울들이 그득그득 맺혔다.

그중에 내 소유는 한 그루도 없었으나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못 따먹는 남의 집 감 상상 섭취라도 하자.


토요일 밤에 엄마랑 3시간도 넘게 밤 10시가 넘도록 깎고 또 깎았다.

"눈같이 게으른 것이 없고, 손같이 부지런한 것이 없어!"

엄마의 단골 노동요다.

그러나 나는 생각했다.

'적당히를 아는 사람처럼 현명한 사람 없고, 욕심 많은 사람같이 어리석은 사람 없어.'


여기저기 나눔 할 것을 제외하고도 가내수공업으로 승화시켜야 할 대봉이 넘쳐났다.

하다 못해 원래 리스트에 없던 사람까지 하나 둘 나눔 리스트명단추가하기에 이르렀다.

토요일 저녁 4판을 만들었고, 일요일 오후에 다섯 판을 더 만들었다.

수 백 개를 깎았다.

"껍질은 버리지 말고 잘 모아둬라. 식초 만들게."

감 한 개도 깎지 않고 옆에서 지시만 하는 공장장 아빠가 한 말씀하셨다.

엄마와 나, 두 근로자의 비난의 원성이 빗발치는 바람에 아빠의 감식초 만들기 프로젝트는 무산되었다.


얼마나 감말랭이를 먹겠다고 이리 호들갑을 떨었던가.

태어나 처음으로 감이 꼴도 보기 싫어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먹기도 싫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공과 사는 분명히 구분하자.

눈 감고 먹으면 될 일이다.


요즘은 한낮에 햇볕이 정말 강하다. 바람도 살랑거리는 것이 '어서 빨리 감 좀 깎아서 말려 봐라.' 하며 아우성이다.

하지만 바람이 센 날은 먼지가 많아서 위생관리에 엄격한 공장장과 근로자의 경영 방침에 따라 농업용 건조기의 품 안으로 들여보내 주기로 힘겹게 결정했다.

여전히 간택받지 못한 대봉이 넘쳐났지만 총 9개의 건조기 판만 사용한 것은 현재 쓸 수 있는 판의 양이 그것 뿐이라서다.


엄마는 다시 한번 중대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셨다.

비로소 감말랭이로 환골탈태하지 못한 비운의 대봉들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덩덜아 나의 스케줄도 확실해졌다.

"나머지는 곶감 만들면 쓰겄다."


그리하여 무허가 감말랭이 가내수공업 공장에서는 주말 내내 '감'만 감싸고돌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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