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눈엔 낭만, 내 눈엔 피, 땀, 눈물

전원교향곡의 두 얼굴

by 글임자
Kjq3x6jRVFiHizZjTGw8-D6p2IU 2023. 8. 30.

< 사진 임자 = 글임자 >


"넌 친정이 시골이라 진짜 좋겠다. 거기서 다 갖다 먹을 수 있잖아. 요즘 나가서 뭐 하나 사려고 하면 다 비싸. 근데 넌 부모님이 농사 지으시니까 '그냥' 갖다 먹잖아. 얼마나 좋아? 믿고 먹을 수 있어서."

"그래. 좋지. 좋긴 하지. 근데..."


자세한 속사정을 모르는 이는 이렇게 곧잘 말한다.

당장 상추 한 장을 사더라도 돈을 내야 하는데 상추 그까짓 거 친정집 닭들도 우습게 부리에 한 장씩은 물고 다니면서 귀한 줄 모르고 반만 먹다가 팽개쳐 버리는 마당에, 좋긴 하지, 좋긴 한데 말이지...


유독 시골살이를 좋아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은

"나랑 같이 언제 고사리 꺾으러 안 갈래? 죽순도 꺾으러 가고 쑥도 캐고 고구마도 캐고. 뱀 물리고 멧돼지 만날 수도 있지만 운 좋으면 안 그럴 수도 있어."

라고 내가 말하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대답이 돌아온다.

"안가! 안가! 그냥 사서 먹는 게 좋아. 힘들게 그런 걸 왜 해?"

라고 말이다.

그 와중에도 내가 슬슬 시동만 걸어주면 당장 친정집에서 한 달 살이라도 가능할 친구가 한 명 있다.

아무리 포섭을 해 봐도 다른 사람들은 먹혀들지 않았지만, 그녀만큼은 굳이 내가 애쓰지 않아도 '먼저' 그러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종종 잘하는 말이 있다.

"넌 진짜 좋겠어. 집이 시골이니까 어디 캠핑 안 가도 되고. 굳이 멀리 여행 안 가고 너희 친정만 가면 거기가 완전 천국인데. 그냥 정자에 앉아 있기만 해도 좋더라. 밭에서 나는 것들 바로 따서 먹을 수도 있고 조용하고 얼마나 좋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녀는,

그러니까, 좀, 너무 단편적인 생각만 한 것 같았다.

"그게 거저 되는 줄 알아? 내가 그만큼 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거지. 부모님 바쁠 때 손 넣어주고 필요할 때 도움 주고. 나도 거의 영농 후계자 다 됐어.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기만 하는 것도 아니야 사실."

그녀가 너무 환상 속에 빠져 있는 것 같아 현실을 직시하도록 한 말이다.

"그래도 좋지. 그런 거 다 사 먹으려면 그게 다 얼만데? 넌 그런 돈 안 들어서 좋겠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그만큼의, 아니 어쩔 때 더 무리해서 내 노동력을 제공한다니까 그러네.

"너 한여름에 땡볕 아래서 고추 따 봤어? 한겨울에 불 피워가며 밭에서 시금치 다듬어 봤어? 하루에 몇 시간씩 삽질해 봤어?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다니까. 농사일 옆에서 살짝 돕는 것도 진짜 힘들어. 우리도 체력이 점점 떨어질 나이잖아. 아무튼 세상에 공짜는 없어. 다 그만큼 힘들게 일하고 보상받는 거지."

내가 (물론 항상은 아니지만)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있는지를 강력히 주장했다.

하루 종일 농사일 하고 잠들기 전 파스 냄새 풍기며 끙끙대는 영농 후계자의 뒤척이는 밤을 네가 짐작이나 해?

"그래도 집에서 이렇게 다 갖다 먹으니까 좋잖아. 난 다 사서 먹어야 하는데. 그 돈 은근히 무시 못해."

선생님께서(그녀의 직업은 선생님이다) 왜 자꾸 같은 말만 하실까?

"그래. 맞아. 식비는 진짜 많이 안 들긴 하지. 쌀부터 각종 야채 이런 것들 다 갖다 먹으니까. 네 말도 맞긴 맞는데 그만큼 내가 들인 시간하고 노동력을 생각하면 아무튼 공짜란 생각은 안 들어. 부모님 일이니까 나도 돕는 거지. 나도 좋고 부모님도 좋고."

나는 친정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 분의 딸로 태어난 숙명에 대해 그동안 여러 차례 말해 왔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녀였다.

"그래도 부모님이 직접 농사지으신 거니까 믿을 수 있잖아. 얼마나 좋아? 너희 시가도 시골이잖아? 양쪽이 다 시골이라 진짜 좋겠다."

어느새 나의 시가까지 소환했다.

"부모님이 농사 지으시니까 좋긴 해. 집에서 농사지은 거라 믿고 먹을 수 있으니까. 시가는 이제 벼농사 안 지으셔서 우리 집에서 찹쌀도 보내 주신다니까. 한참 양가에서 서로 주고받고 하던 때가 있었지."

친정도 시가도 시골이 아닌 그녀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뭇사람들은 양가가 농사를 짓는다는 점을 '부럽다'라고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복 받았다고 한다.

먹을 복을 받았다.

그러나, 그 '먹을 복'과 함께 '일할 복'도 '원 플러스 원'으로 받았다니까 자꾸 그러시네.

그래. 좋다 좋아.

좋다고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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