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보러 갔다가 보고 온 것

우리 민요의 허점을 찾아서~

by 글임자
2023. 4. 11. 숨은 고사리 찾기

< 사진 임자 = 글임자 >


"비가 왔으니까 고사리가 좀 나왔겠지?"

"어이구, 누가 너 하라고 가만히 놔둔다냐? 동네 할매들이 진작에 다 털어 갔제. 너 해가라고 가만히 놔뒀겄냐? 니 몫이 어디 남아있을 줄 아냐?"

"한번 가보지 뭐. 없음 말고. 등산하는 셈 치고!"


엄마 말씀대로 친정 원주민(=동네 주민)이 이미 온 산을 다 헤매며 고사리를 싹쓸이했을 거란 불길한 예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도.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그 아름다운 우리 속담도 있는데 운동하는 셈 치고 가보는 거지.

고사리 구경은 못하더라도 조용한 산속을 거닐며 잠깐 머리를 비우고 와도 좋으리라.

물론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고사리 그까짓 거 꺾어도 그만 안 꺾어도 그만이라고 하면서도, 봉지는 친정집에 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큰 크기로 챙겼음은 물론이다.

밑져야 본전인데 뭘.

이성적으로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마음을 챙기고, 감정적으로는 욕심 많은 아귀의 그것을 챙겼다.


이젠 산벚꽃도 많이 졌다. 싱싱한 새 잎들이 나무마다 돋아나고 있었고 작년에 봤던 바로 그 제비꽃들이 올해도 잊지 않고 그 자리에 돋아났다.

그렇다면?

작년에 만났던 그 뱀들도 다시 출몰할지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작년에 그냥 운동화를 신고 산에 올랐다.

겨울잠을 자던 뱀들이 슬슬 깨어났을 시기가 됐다는 사실은 안중에 없었다.

멧돼지와 마찬가지로 뱀도 말이 안 통한다.

안 만나는 게 상책인데.

쑥은 멧돼지와, 고사리는 뱀과 원 플러스 원이다.

사람이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뱀이 선수 쳐서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없다고들 했지만 그래도 미심쩍기만 했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학교 가는 길에서 심심찮게 길을 가로질러 가는 뱀들을 많이 봤었다.

물론 또래의 남자아이들 중에서 그것을 잡아 묘기를 부리는 이도 있었고 장난감 가지고 놀듯 하는 이도 있었다.

그땐 정말 흔한 게 뱀이었다.

아무리 흔해도, 그로부터 30년도 더 지난 지금 나는 뱀을 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간단한 옷차림과 가벼운 운동화만 신고 작년 이맘때쯤 고사리를 꺾겠다고 나선 나는 고사리는커녕 뱀 구경만 실컷 하곤 했다.

언제나 부지런한 원주민들이 이미 다녀간 뒤라 고사리는 흔적도 없기 일쑤였고(물론 반드시 고사리를 꺾어 와야겠다는 마음도 없긴 했지만, 그냥 산에 가는 그 자체가 즐거웠지만) 꺾인 고사리 줄기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현장만 뒤늦게 덮치는 것이다.

원주민이 유리할 때는 바로 이럴 때다.

내가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 봐야 새벽부터 출동하는 원주민을 당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그 고사리 꺾어도 그만, 안 꺾어도 그만이다.

그러나 하나도 수확을 못하는 날에는 속이 쓰리다.

속 쓰리니까 중생이다.

물론 이왕이면 수확이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니 과감히 단념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있나 어디.


고사리는 구경도 못했는데 바로 발밑을 지나가는 뱀은 몇 마리 보았다.

한 번은 이제 막 태어난 것인지 가느다란 새끼 뱀이었고 한 번은 '저것은 구렁이가 아닌가?'싶게 통통한 그것을 바로 눈앞에서 맞닥뜨렸던 것이다.

등골이 오싹해진다는 그 표현, 어쩜 그렇게도 정확한지 모르겠다.

고사리고 뭐고, 뱀을 보고 나니 등이 서늘해지면서 정말 땀이 다 줄줄 흘렀다.

한 줌도 안 될 것 같은 고사리와 내 소중한 목숨을 바꿀 수야 없지.

안 먹어도 그만인데 먹고 싶으면 그냥 사 먹어야지 하면서 뒤도 안 돌아보고 산을 내려왔던 적이 몇 번이었던가.

일종의 '뱀 트라우마'같은 것이 생겼다.

그 후로도 한 번씩 고사리를 꺾어 보겠다는 욕심에 산을 종종 갔지만 늘 발밑이 신경 쓰였다.

꼭 뭐가 스르륵 기어갈 것만 같았다.


'고사리 대사리 꺾자'라는 민요가 있다.

마지막 부분에, '앞동산 고사리 꺾어다가 우리 아빠 반찬하세.'

라는 노랫말이 나온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아빠 반찬하러 앞동산에 갔다가 먼저 내가 뱀의 반찬이 되는 것은 아닐까, 고사리 대사리 꺾다가 자연스레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뱀이다(김혜연의 노래- 뱀이다)'라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연결 지어야 할 것만 같다. 물론 나는 그것을 섭취해 본 적은 40 평생 한 번도 없지만, 어디까지나 노랫말에 의하자면 말이다.

가사에 뭔가 빠진듯하다.고사리 꺾는 것도 좋지만 뱀을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의 말 한 마디쯤 들어가도 좋지 않을까,현실적으로 말이다.


"엄마, 산에 고사리 꺾으러 갔다가 뱀 봤어. 진짜 큽디다."

작년에 도망치듯 산에서 내려와 시시콜콜 뱀 목격담을 엄마에게 얘기했다.

"그래? 아이고, 위험한디 인자 가지 말아라. 그거 고사리 못 먹는다고 죽는다냐? 냅둬. 없으믄 말제. 다음부터는 가지 말아라."

라고 하실 줄 알았다.

그건 어쩌면 딸의 푸념에 대한 엄마의 대답 모범 답안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엄마는 시큰둥하게, 전혀 놀라시는 기색도 없이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속도 없이 운동화 신고 갔냐? 요새 배암 많이 나올 것인디? 다음부터는 장화 신고 가라! 집에 백반도 있더라."

70 평생의 노하우를 전수하듯 특약 처방을 내리셨다.

"그라고 낮에 가믄 햇빛 때문에 눈부셔서 그것이 잘 안 보여야. 그란께 아침 일찍 가야 써. 그래야 잘 보이제. 그란디 너 고사리 하라고 너 올 때까지 동네 할매들이 안 꺾고 가만히 놔둘란가 모르겄다."

친정과는 차로 25분 거리에 거주하는 원조 원주민은 일종의 애석함마저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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