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Feb 20. 2024

엄마 아빠는 슬프겠다

열 살의 말

2024. 2. 10.

< 사진 임자 = 그림자 >


"엄마, 내 친구는 학원을 일주일에 10개 다닌대."

"그래?"

"엄마 아빠가 슬플 것 같아."

"왜?"


아들이 친구랑 얘기를 하다가 학원 말이 나왔단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친구 학원 다니는 얘기를 하다가 친구 부모님이 슬프겠다고 했다.

슬프겠다니?

학원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벌어서 학원비에 너무 많이 쓰니까?

단순한 나는 그 생각만 났다, 당시에는.

경제적인 면만 보고 아들이 친구의 부모님이 허리가 휠 거라고(이런 말을 직접 해 줘도 그 속뜻을 아직은 정확히 이해도 못할 것 같긴 하지만)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줄로만 알았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개학한 뒤 학교에서 친구를 만났는데(지금은 봄방학 기간이다) 친구가 아들에게 방학 동안 뭘 하고 지냈는지 잠시 방학 생활에 대해 토킹 어바웃을 하던 도중 물었단다.

"그 친구가 방학 때 나보고 뭐 했냐고 해서 나는 그냥 합기도 학원만 다니고 집에서 놀았다고 했지. 공부도 좀 하고 책도 보고. 내가 그 친구한테 물어보니까 학원을 계속 다녔대."

"아, 그랬구나. 너희는 합기도 학원 하나 가는 것도 어쩔 땐 귀찮아하고 그러는데 그 친구는 일주일에 10개씩이나 다녔던 거야? 힘들었겠다."

"별 거 다해. 영어 학원만 3개 다닌대. 수학학원도 다니고 무에타이  학원도 가고 또..."

"그래서 그 친구한테 넌 뭐라고 했어?"

"와, 진짜 많이 다닌다. 나는 합기도 학원 하나만 다니는데, 이랬지."

"그래. 혹시 그 친구가 그렇게 다 다니고 싶다고 한 거야?"

"나도 몰라. 아무튼 학원만 다니니까 방학했어도 놀 시간이 없었대."

"그 친구랑 너 학교 끝나고 자주 놀았잖아."

"학교 다닐 때는 그 시간이라도 조금 놀 수 있는데 방학하니까 그럴 시간도 없었대. 학교 수업 끝나면 학원 갈 때까지 시간이 조금 있거든. 평소에는 그때밖에 못 논대."

"그래? 그 시간이 얼마 안 되는 거 같던데? 길어야 10분 좀 되나?"

"많이는 안 길어. 그래서 그 시간에 나랑 같이 노는 거야. 그때라도 노니까 좋대."

"그랬구나. 엄마가 보기에도 네 친구들은 다들 학원에 가야 하니까  잠깐만 놀고 다 학원으로 가는 것 같더라."

"응, 내 친구들은 조금만 놀다가 다 학원 가. 그래서 난 그냥 집에 와야 돼. 놀 친구가 없어."

"우리 아들은 친구들이랑 노는 거 좋아하는데, 그치? 그렇다고 친구 만나려고 친구 따라 학원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괜찮아, 그래도 조금이라도 놀 수 있잖아."

"정말 공부하는 학원 안 다니는 사람은 너희 반에 너밖에 없어?"

"아마... 그럴걸? 다들 몇 개씩 다니는 것 같던데?"

"너도 합기도 학원씩이나 다니잖아."

"그렇지, 나도 학원 다니긴 다니지. 근데 나처럼 운동하는 학원만 하나 다니는 친구는 없는 것 같아."

"그래, 엄마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더라."


그 친구가 누구인지는 나도 안다.

얼굴은 몇 번 본 적 없어서 잘 모르지만 이름은 많이 들어 봤다.

아들과 제법 자주 어울리는 것 같았다.

언젠가 학부모 공개수업에 갔을 때 아들이 내게 소개해 준 적도 있다.

그 친구 말고 하교 후 종종 어울리는 멤버들을 아들이 내게 소개해 줬지만 솔직히 나는 누가 누구인지는 분간하기 어려웠다, 물론.

이름이라도 알아 두자.

어떤 친구인지라도 알아 두자.

그 친구들과 어디서, 무엇을 하고 노는지 최소한 그런 거라도 알아 두자.

그 정도다.


그런데 가만, 친구가 학원 10개 다니는 거랑 부모님이 슬플 거라는 건 도대체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거지?

"근데 왜 부모님이 슬프겠다고 한 거야?"

"아이 참, 엄마는. 생각을 해 봐, 왜 슬프겠어?"

"왜 슬플까?"

"왜긴 왜야? 아침 8시에 학교에 가서 저녁 8시가 돼야 집에 돌아오는데 그때까지 부모님이 아들 얼굴도 못 보잖아. 그래서 슬프겠단 거지."

"아, 그래? 우리 아들이 그렇게 생각했구나. 듣고 보니 정말 그렇네."

"엄마는 우리가 저녁 8시까지 안 들어오면 보고 싶겠어, 안 보고 싶겠어?"

"당연히 보고 싶지. 우리 아들 딸 보고 싶지, 당연히."

"그래서 슬프겠다는 거야."

"정말 그러겠네."

"학원 다 끝나고 집에 오면 8시가 넘는대. 그 친구 형도 있는데 그 형은 6학년인데 밤 10시에 집에 온대."

"정말? 진짜? 그렇게 늦게?"

"응. 그럼 정말이지 내가 엄마한테 거짓말하겠어?"

"우리 아들이 엄마한테 거짓말하지는 않겠지. 어린이들이 피곤하겠다, 그렇게 늦게까지 학원 다니면."

"아마 그렇겠지. 난 합기도 학원만 갔다 와도 피곤한데."


아마가 아니라, 확실히 그럴 것 같았다, 내 생각에는.

물론 그 친구의 부모님도 다 생각이 있으셔서 그러는 거겠지만, 자세한 남의 집 사정 내가 아는 것도 아니니 섣불리 말할 일도 아니지만, 나는 말만 들어도 진이 빠졌다.

과거 학원은 한 번도 다닌 경험이 없는 나는, 남들은 다들 노량진으로 짐보따리를 싸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때도 도회지 공무원 대비 학원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나는, 학원에 대한 약간의 로망이 있었다.

학원은 과연 어떤 곳일까?

유치하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게에 대한 동경이랄까?

남편은 그나마 대학 근처에 있는 공무원 학원이라도 다녀봤다던데, 그런 경험이 전혀 없어서 가끔 그 시절 얘기를 들을 때면 신기하기까지 했다. (학원 가는 대신 나는 인강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었다.)

어쨌거나, 학원을 다니나 안 다니나, 결국 둘 다 붙었으니까.


요즘 초등생 방과 후 관련 기사로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 있다.

취지는 그렇다 치고, 현실적으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것이며 정작 그 상황에 놓일 아이들은 괜찮은 걸까.

아들의 말을 듣다가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사자가 아닌 친구의 일에도 10살짜리가 '하루 종일 부모님과 만나지 못해 슬프겠다'고 느끼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중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걸까.  

과연 해결이 되기나 할까.

안개 자욱한 흐리멍덩한 아침처럼, 아들의 말에 나는 그만 답답해졌다.

그리고 또 그 친구 가족을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에 뭉클해지고 말았다.



작가의 이전글 정 어머님이 그러시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