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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Feb 19. 2024

정 어머님이 그러시다면

아는 사람만 아는 설움

2024. 2. 17.

< 사진 임자 = 글임자 >


"며늘아, 어쩌면 죽을 그렇게 맛있게 만들었냐. 내가 배가 다 부르다. 잘 먹었다. 고맙다."

"입맛에 맞으셨다니까 다행이네요. 좀 짰을지 몰라요, 어머님."

"아니다, 맛만 좋더라. 고생했다. 몸도 안 좋은데 뭐 하러 그런 걸 다 보냈냐."

"맨날 하는 것도 아닌데요. 어머님 입맛 없으시다고 해서요."

"그래도 힘들게 이렇게 안 해도 되는데."


어머님이 내게 마음 써 주신 걸 생각하면 죽집 체인점을 차려 드려도 모자라다.

그래, 난 어머님의 아들을 아주, 가끔, 살짝, 미워하긴 하지만 어머님은 미워하지 않으니까.

자고로 시어머니의 아들은 미워하되, 시어머니는 미워하지 말라 하셨으니까.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다.

토요일 낮에 통화를 했는데 또 전화하신 거다.

시식 후기를 들려주기 위해서였겠지?


"며늘아, 아침에 누룽지 좀 끓일래? 입맛이 없어서 그거라도 먹으면 괜찮더라."

설날 아침에 어머님이 특별식(?)을 주문하셨다.

원래 전날 밤까지는 떡국과 밥 얘기까지만 하셨는데 갑자기 메뉴가 추가됐다.

입맛이 없으시다고?

그러면 원하는 대로 해드려야지.

오죽 입맛이 없으면 누룽지를 드시는 걸까.

"아버님, 어머님은 좀 어떠세요?"

"요새 입맛이 없다고 그러네."

"그래요? 그래도 억지로라도 드셔야 할 텐데."

지난번에 통화했을 때도 입맛이 없다고 하셨다.

그땐 어머님은 마을 회관에 가시고 아버님과 통화를 했는데 요새 어머님이 통 입맛 없어하신다고 하셨다.

갑자기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었다.

원래 몸이 아프면 입맛도 없어지고 만사가 귀찮아지고 그러는 거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2년 전 수술을 했을 때도,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지독한 감기에 걸렸을 때도, 아무튼 몸이 아플 때마다 난 그랬다.

하긴 내 몸이 아픈데 당장 입맛이 도는 사람이 얼마나 되기나 할까마는.

그렇잖아도 매일 알약 타령만 하고 사는 나인데 아프고 보니 없던 입맛이 더 뚝 떨어졌다.

사람은 왜 먹어야 하는가, 그런 느닷없는 생각까지 하면서 말이다.

계속 안 먹으면 굶어 죽으니까 먹긴 먹어야겠지.

안 먹어도 그냥 몸만 안 아프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해 온 나다.

지금 어머님이 얼마나 힘드실까 싶었다.

마침 주말에 그 양반이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간다고 해서 간단히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지금 나도 컨디션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머님이 안쓰러워져 오래간만에 음식을 하기로 했다.

장어탕과 전복죽을 했다.

이왕이면 아버님과 두 분이 같이 드시라고 넉넉히 말이다.

"이런 건 또 언제 했어? 많이도 했네. 고생했어."

현관 보따리에 싸 놓은 음식을 보고 그 양반이 말했다.

"어머님이 계속 입맛이 없으시대. 짜면 물 좀 넣어서 드시라고 해. 표고버섯을 너무 많이 넣었나? 향이 좀 강하긴 하던데 그래도 좀 드시라고 해. 알았지?"

"응, 알았어."

"참, 그리고 구운 계한도 한 판 샀으니까 어머님 드시라고 해. 구운 거라고 꼭 말씀드리고."

"알았어."

평소 입맛 없는 게 무언지 절대 모를(거라고 짐작되는) 그 양반에게 당부했다.

대답을 하긴 했어도 그 양반이 못 미더웠다.

왜 항상 시원찮아 보일까.

사람이 입맛이 없어지기 시작하면 일단 무기력해지고 활기가 없다. 그러면 더 기운도 쳐지고 더 먹기 싫어지고 그러기 마련이다.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 나니까 맛이야 있든 없든 그것을 드시는 동안이라도 어머님이 입맛을 되찾았으면 했다.

최근 나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모든 면에서 많이 소홀해졌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님, 입맛 없으셔도 드셔야 돼요. 힘드니까 무조건 만들어 드시려고만 하지 말고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그냥 사서 드세요, 어머님."

"그래, 알았다, 그럴란다."

"참, 어머님, 합격이 아범이 달걀도 가져갔죠? 그거 구운 거예요. 달걀 삶기 귀찮을 때는 그거 드세요."

"아, 그러냐? 그런 말 않던데?"

역시, 내 그럴 줄 알았지.

언제나 내 예상에서 한 치도 어긋남이 없다니까.

그렇게 신신당부했건만...

나도 낮에 그 얘기를 한다는 것을 깜빡하긴 했지만, 어쩜 그렇게 건성인가 몰라.

그래도 나는 그 사실을 기억해 내고 당장 전화를 걸었는데 말이야.

날달걀인 줄 알고 깨뜨렸다가 거무잡잡한 그 형상을 보시면 얼마나 놀라시겠냐는 말이다.

말씀만이라도(물론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맛이야 있든 없든 내게 연신 고맙다고 하시는 어머님이 어서 입맛을 되찾기를 바란다.


어머님과 나는 비빔밥을 좋아한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입맛이 없을 때는 제법 괜찮다.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나물 잔뜩 넣고 쓱싹쓱싹 비벼서 같이 나눠먹을 날이 곧 오긴 오겠지?

봄이니까, 이제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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