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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r 21. 2024

고져고져, 고양이에게 고함

인간과 고양이의 어떤 대결

2023. 10. 28.

< 사진 임자 = 글임자 >


" 너 진짜 너무하는 거 아니야? 네 것도 아니면서, 먹지도 않을 거면서 왜 자꾸 건드려? 엉?"


나 혼자만 분에 겨워 호통치고 분개했다.

그러나 상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처음엔 나를 발견하자마자 잽싸게 그 범행 현장을 떠났다.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꼬리를 한 번씩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역시나 범인은 범행 현장을 다시 찾는 법, 그 후에도 몇 번이나 다시 컴백했다.

내겐 너무 약은 생명체, 고양이, 고양이 중에서도 정말 얄미워서 한대 콕 쥐어박고만 싶은 고양이, 정확히 어디 사는 뉘신지도 모르는 그 정체불명의 고양이...


매년 늦가을에 연례행사로 나는 곶감도 만들고, 감말랭이도 만든다. 단감도 좋아하고 홍시도 좋아하고 곶감도 좋아하고 감말랭이도 좋아하는 나는,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언제나 감인 나는(그런 내게 생전에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감 농사짓는 집으로 시집가라고), 그날도 볕 좋은 친정 마당에 곶감을 말리고 있었다. 평소 그렇게 식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가끔 먹고 싶은 음식이 격하게 당길 때가 있긴 하다. 특히 가을이 되면 하루 종일 감만 먹고살고 싶을 지경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하루 종일 밥은 안 먹고 단감을  스무 개 이상씩 먹고 지낸 적도 있다. 그래도 죽지는 않았다. 뭇사람들이 우려하는 변비 같은 것도 안 걸렸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감만 연속 내리 먹어도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변비도 안 걸린다는 것을, 물론 내 경우에 한해서만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감을 깎아 먹고 말려 먹고 홍시로 먹겠다고 말이다.

단지 많이 실컷 먹고 싶은 욕심에 작년에도 가내수공업으로 곶감을 만들었다. 작년에는 전체적으로 과일 작황이 좋지 않았는지 친정 감나무도 사과나무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특별히 온라인으로 10Kg을 주문해서 혼자 다 깎고 말리던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은 발생했다, 기어이.

웬 얼룩덜룩한 유연한 생명체가 그 곶감 채반에 살금살금 다가가더니 입을 대려는 것이 아닌가. 마루에서 이 광경을 다 지켜보고 있던 나는 황당하기도 하고 놀라웠다. 그 생명체는 나를 한번 힐끗 보고 입맛 다시기를 계속 반복했다. 내가 못 본 사이에 이미 입도 닿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걸 고급전문용어로 '입맛 다신다'라고 한다지 아마?

감히 어딜?

감히 감에?

그것도 곶감에?

홍시도 안된 것을 , 아직 곶감이 되려면 한 오백 년도 더 남았는데 그 날것의 감을 감히 넘보시겠다는 건가?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날로 먹으려고 한다'라고 한다지 아마? 떫기만 하고 아무 맛도 없는 거 그거, 내 맛도 네 말도 아닌 그거, 어차피 먹지도 못할 거, 결국 안 먹을 거 뭐 하러 들쑤셔 놓느냔 말이다.

"야! 너! 또 왔어? 그건 입 대지 마! "

라고 당장 쫓아갔을 때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생명체는 전혀 당황하지도 않고 단지 살짝 비키기만 했을 뿐이다.

아니, 사람을 보고도 무서워하지도 않고 도망도 안 가는 간 큰 생명체라니!

네 눈엔 내가 허술해 보일지 몰라도 난 그래도 동물 중에서 가장 고등 동물이라고!

"저리 안가! 입만 대고 먹지도 않을 거면서 입은 왜 대?! 얼른 가! 한두 번도 아니고 정말"

도대체 고양이는 왜 그럴까?

생선도 아닌 곶감을 왜?

나는 곶감을, 그것도 이제 떫은맛이 가기 시작한 감을, 아니 정확히는 곶감이 되려면 아직 한참이나 먼 그 떫은 것을 고양이가 먹는다는 그런 흉흉한 소문은 여태 듣지 못했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래로.

고양이는 나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눈빛만으로 나를 제압하려 들었다.(고 나만 혼자 느끼고 주눅 들었다)

내가 고양이를 이길 자신은 없지만 무작정 고양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다가 오히려 저것이 내게 달려들어 나를 할퀴기라도 하면 어쩐다? 이런 불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절대 절대 고양이에게 들키지 않도록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맞섰다.(고 하기엔 좀 어설픈 면이 없잖아 있지만 아무튼 맞섰다고 치자)

그제야 고양이는 느릿느릿 그 범행 현장을 벗어났다.

어쭈? 요것 봐라? 보통내기가 아닌걸?

누가 지금 잘못했는데 저렇게 당당한 거람?

떠나면서 그 용의 묘(猫)는 다시 한번 나를 느긋하게 돌아봤다.

전혀 서두르는 기색 같은 것도 없었다 물론.

어라?

네가 지금 나를 만만히 보는 게야?


고져고져,

나는 고양이에게 지고 고양이에게 졌다.

그 눈빛에 졌다.

잘못은 제가 하고도 전혀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은 느끼지도 않는 것 같은 확신을 들게 하는 그 뻔뻔함에 졌다.

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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