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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r 20. 2024

엄마는 시기꾼?

엄마에게도 양심이란 게 있어

2024. 3. 12.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지금 또 사기 치는 거야?"

"엄마가 뭘?"

"한 두 번이 아니잖아?"

"엄마가 뭘 어쨌다고 또 그러지?"

"지금 몇 시냐고요?  솔직하게 말해 줘."


솔직하게라고?

이런 것도 엄마가 '솔직하게까지' 말해야 하는 거였나?


"얼른 학교 가야겠다. 벌써 8시 20분이야."

"진짜야?"

"어?"

"진짜로 8시 20분이 확실하냐고?"

"그게..."

"엄마, 그냥 사실대로만 말해."

"응, 8시 20분 '다' 됐어."

"그렇게 대충 말하지 말고 진짜 지금 시간이 몇 시 몇 분이야?"

"8시 20분이 '거의' 다 됐다고."

난데없이 아드님께서 중대발표를 하셨다, 제  누나에게.

"누나. 엄마가 8시 20분이라고 한 건, 이제 8시가 조금 넘었다는 뜻이야."

엄마 앞에서 냉철하게 분석하셨다.

나름 아들에게도 빅 데이터가 축적된 게 있는 게 틀림없다.

"우리 아들, 아무리 그래도 엄마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그래도 10분 이상 사기는 안친다고!!!"

나도 당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도둑은 심히 제 발이 저려 발끈하지 않을 수가.

"그래? 그러니까 지금 몇 시 몇 분이지?"

"아무튼 학교 갈 시간이 다 됐다 이 말이야."

"자, 어머니. 이제 솔직하게 시간을 말해 주시죠? 어차피 우리가 시간 확인하면 다 알게 돼."

"그래. 8시 11분이다. 됐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가고 우리 집 시간은 10분 먼저 간다.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거실의 시계를 조금 앞당겨 놓은지 벌써 백 년이 지났다.

"거봐, 내 말이 맞지? 엄마는 과장이 너무 심해."

"그게 뭐가 심해? 곧 20분이 되어 간다는 건 맞잖아. 9분만 있으면 20분이잖아 어차피."

"아니지. 어떻게 그게 그렇게 돼? 9분이면 엄청 차이 나는 건데."

"그래도 최소한 엄마는 10분까지는 사기 안친다고, 절대로!"

뭘 잘했다고, 자녀들을 상대로 사실과 다르게 어떤 일에 대해 (살짝) 부풀려 과장해서 말한 사람이 되려 큰소리쳤다.

이런 엄마의 허술함을 절대 놓칠 리 없는 남매도 결코 그냥 넘어갈 리는 없었다.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아.

보통내기가 아니란 말씀이야.

누굴 닮았는지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어.

"엄마, 앞으론 그렇게 말하지 마요. 1,2 분도 아니고 이건 너무 심하잖아."

"심했어?"

"그래. 심했어. 몇 분이라면 몰라. 엄마는 너무 과장을 심하게 해."

"엄마가 왜 그랬겠어? 너희가 미리미리 준비하고 학교 갔으면 해서 그런 거지. 엄마가 나쁜 의도로 한 건 아니었어. 엄마 마음 이해하지? 선생님이 너희한테 몇 시 몇 분까지 오라고 한 시간이 있잖아. 그래서 가능하면 기 시간 안에 갔으면 해서 그런 거야."

이젠 숫제 연민에의 호소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해는 하지. 하지만 그것도 적당히 해야지. 안 그래? 어쩔 땐 엄마 진짜 너무 부풀려서 말한단 말이야."

"그래. 알았어. 그건 네 말이 맞다."

하지만 앞으로 나의 양치기 기질이 얼마나 잠잠해질 수 있을지는 나도 장담 못하겠다.


우리 애들은 틀린 말은 안 하니까, 받아들이는 수밖에. 인정하는 수밖에. 하긴 인정하지 않으면 또 어쩔 것인가?

안타까웠다, 속상했다,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과장해서 말하는 통에 남매에게 신뢰를 잃고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했다는 게. 나 혼자만 하얀 거짓말이라고, 아름다운 거짓말이라고 애써 위로하면서 야금야금 그 방법을 써 왔다는데 말이다.

적당한 선에서 남매가 납득할 정도의 사기를 쳤더라면(?) 이 사태까지 벌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어떻게든 늦지 않게 학교에 가게 하려고, 최대한 일찍 등교하게 하려고 한 것뿐이었는데.

이런 걸 고급 전문용어로 '잔머리 굴린다'라고 한다지 아마? 그 과보로 뼈저리게 느낀 표현으로는 '본전도 못 찾았다'가 있을 테고 말이다.


마기꾼의 시대는 갔다.

바야흐로 차세대 사기꾼의 시대가 도래하였으니.

시기꾼, 시간을 사기 치는(?) 엄마의 시대가 왔다.

이름하여, 시기꾼.

우리 집에서만,

두 남매에게만,

다소 과장하는 시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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