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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y 21. 2024

오랜만이야, 천연두

우리 앞으로도 절대 보지 말자

2024. 5. 20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얼굴이 왜 그래?"

"왜?"

"엄마 혹시?"

"혹시 뭐?"

"그거 천연두 아니야?"

"뭐?"

"엄마 천연두 걸렸나 봐. 누나, 엄마 천연두 걸렸어!"


대관절 천연두라니, 전설의 고향에서나 들어봤을 법한, 전래 동화에서 병명도 모른 채 죽어갔을 이름 모를 어느 백성의 이야기였을 법한, 아니, 그도 아니, (어디까지나 내 생각에만) 대한제국이 세워지고 이젠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 법한(그만큼 지금은 예사로 듣기 힘든 병명이라고 생각했다) 그 무시무시한 병명이 우리 집에서 입에 오를 줄이야!

작년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아드님이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한다는 말씀이 저것이었다.


"우리 아들이 천연두를 어떻게 알아?"

"내가 다 알지."

"어디서 들었어?"

"요즘 천연두가 유행이거든."

"그래?"

"엄만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

"응, 몰랐네."

"요즘 학교에서 천연두 걸린 학생들이 많아서 비상이야."

"그랬구나."

"전국적으로 유행이래."

"아, 엄마 학교 안 다녀서 몰랐지."

"엄마, 잠깐만, 이리 와 봐. 보니까 정말 천연두랑 증상이 똑같아."

"정말? 어떡하지?"

"응, 어린이들 사이에 유행이라는데 엄마는 어른인데 천연두에 걸렸네."

"그러게. 왜 걸렸지?"

"조심해야겠다. 그거 전염이 잘 되거든, 당분간 엄마랑 좀 떨어져 있어야겠어."

아니 이것은

"우리 좀 떨어져 있자. 서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에 버금가는, 권태기에 빠진 청춘남녀가 하는 흔해 빠진 바로 그 대사가 아니던가.

우리 아들이 엄마한테 이렇게 나올 줄이야.

아직 천연두라고 정확히 진단받지도 않았는데, 내 생각에는 천연두는 확실히 아닌데, 그 비슷한 것도 아닌데, 아들 혼자 헛다리 짚고 있는 건데.

"근데 우리 아들, 이거 정말 천연두 맞아? 엄마가 알고 있는 거랑 좀 다른 거 같은데?"

"천연두 맞아. 여기저기 빨갛게 뭐가 났잖아."

"이렇게 생긴 게 천연두야?"

"그렇다니까."

"엄마가 알기로는 지금 유행하고 있는 건 다른 거 같던데?"

"에이, 엄마 내가 학교에서 다 들었다니까. 선생님이 그러셨어. 요즘 천연두가 유행하니까 손도 잘 씻고 조심하라고."

"그래? 근데 참 이상하다. 엄마가 알기로는 그게 아닌데."

더 이상 모자의 대화를 듣고 있기 힘들었는지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딸이 나섰다.

"어이구, 그게 천연두냐, 수두지. 지금 유행하는 건 수두라고, 수두! 뭘 좀 잘 알고 얘기해."

그래, 내 말이 그 말이다.

내가 알기로는 당시 수두가 한창 유행이었다.

결코 천연두가 아니다.

두, 두, 두 자로 끝나는 말은 천연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아들은 듣기는 들었는데 잠시 착각한 것뿐이다.

"아, 맞다. 수두였지. 엄마 수두 걸렸네, 어떡해."

아들이 천연두에 푹 빠져 있었던 이유가 있다.

집에서 보는 책에, 특히 옛날이야기에 그런 몹쓸 전염병 얘기가 종종 등장을 했고 그중 단연 인상적이었던 것이 천연두였고, 하필이면 그때 전국적으로 수두가 유행하고 있었으며 공교롭게도 내 얼굴에 울긋불긋 피부 트러블이 생겼을 뿐이다.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아들은 혼란을 느꼈던 거다.

그러니까 '수두'를 말한다는 게 그만 '천연두'라고 발음해 버린 것이다.

예사로 있는 일이었으므로 그리 놀랍지는 않다.


어릴 때라도 수두에 걸렸는지 어쨌는지 그런 기억은 전혀 없고, 천연두는 전생에나 걸렸을까?

불치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단지 느닷없이 생기는 피부 트러블이었을 뿐이다.

몸이 많이 피곤하고 힘들거나 바깥 날씨가 더워지면 두통이 생기면서 종종 겪는 일이다.

다행히 천연두도, 수두도 아니었지만, 그래서 아들과 격리 생활을 할 필요도 없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아들은 엄마한테 관심이 많아.

세심하기도 하지.

이 엄마는 그 관심을 높이 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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