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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y 16. 2024

5월은 도시락 벤치마킹의 달

벤치마킹만 4년째

2024. 5. 15.

<  사진 임자 = 글임자 >


"우리 아들 친구들은 도시락을 골고루 많이 싸 왔던데 정말 그걸 다 먹었어?"

"응, OO는 김밥을 스물일곱 개나 싸 오고 과일이랑 과자도 가져왔는데 다 먹었어."

"정말? 그 많은 걸 다 먹었어?"

"그렇다니까."

"우리 아들은 엄마가 싸 준 건 다 잡수고 오셨나?"

"당연하지. 봐봐. 하나도 안 남았지?"


체험학습 전날 극적 타결의 결과 도시락은 '꼬마김밥과 유부 초밥, 문어 소시지' 이렇게 단출하게 세 가지 메뉴로만 하기로 원만히 합의를 봤다.

몇 개 넣지도 않은 거 그것도 다 못 먹고 오면 안 되긴 안되지.

다 잡수고 오셔야 맞지,라고 나 혼자만 하루 종일 생각한 날이었다.


"우리 아들 친구들은 정말 도시락이 다양하더라. 사진 보니까 다들 맛있는 거 싸 온 거 같더라?"

아들이 체험학습을 마치고 탈진해서 돌아오자마자 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을 떠올리며 아들에게 체험학습 후기, 정확히는 도시락 후기를 요청했다.

"엄마가 보니까 친구들은 도시락 양도 정말 많던데? 우리 아들은 워낙 많이 안 먹어서 엄마가 조금만 싸주긴 했지만 말이야."

나는 사진을 보는 내내 생각했다.

초등학생 4학년 어린이가 정말 저걸 다 먹을 수 있을까?

과연?

나도 하루 종일 먹어야 할 양인데?

어디까지나 우리 집 멤버들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그날 아들  친구들의 그것은 한 끼의 도시락이라기보다 차라리 하루치 일용할 양식이었다. 하지만 한창 활동량 많고 게다가 나들이 가서 먹는 점심이니 그걸 감안해서 가정에서 넉넉하게 도시락을 준비해 주신 거겠거니 했다.

아들은 마른 편이다.

조금 먹고도 배부르다는 듣고도 믿기 힘든 발언을 일삼는 어린이다.

"우리 아들, 이번 도시락은 얼마나 싸는 게 좋을까? 남아서 버리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먹을 만큼만 싸 가는 게 좋겠지? 지구가 아프잖아."

"엄마, 조금만 싸 줘. 어차피 많이 가져가 봐야 다 못 먹어."

"그래도 친구들이랑 바꿔 먹을 수도 있잖아. 원래 친구들 도시락이 더 맛있는 법이잖아. 엄만 옛날에 그렇더라고."

"응, 나도 친구들이랑 바꿔 먹을 거야."

그리하여 최종 낙찰된 것이 '문어 소시지 달랑 2개, 꼬마김밥 한 줄과 3분의 1, 작은 유부초밥 2개'였다.

도시락을 다 싸고도 여백의 미가 넘쳐나는 바람에 민망할 지경이었다.

물론 아들도 나도 처음엔 의욕에 넘쳐 각 메뉴마다 하나씩 더 추가했었다.

"근데, 정말 이거 다 먹을 수 있을까, 엄마?"

"엄마도 그게 걱정이긴 하다."

"안 되겠어. 아무래도 다 못 먹고 올 것 같아. 선생님이 먹을 수 있는 만큼만 싸 오라고 하셨어. 하나씩 다 빼야겠어."

"그래, 그게 좋겠다."

도시락이라기보다 간식에 가까워 보이는 그것을 들고 아드님은 체험학습을 떠나셨다.

나는 평소에도 도시락에 심혈을 기울이는 편이 아닌지라 그 내용물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않았는데, 그랬는데 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을 보니 내 아들의 도시락만 뭔가 많이 부족해 보이는 이 느낌적인 느낌이라니.

다른 친구들은 알록달록하다 못해 별의별 캐릭터가 다 출동했고, 과연 저것은 도시락인가 출장 뷔페인가 싶은 (내 눈에만) 요망한 것들도 제법 눈에 띄었음을 이제 와 고백하는 바이다.

내용물도 그렇거니와 그 양에서도 아들의 것과 친구들의 것은 현저한 차이가 났다.

나는 친구들의 도시락을 확대해서 요리 보고 조리 보고 했다.

적극적으로 벤치마킹 해서 초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아들 초등인생에 한 번쯤은 도전해 봐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 굳은 다짐만 벌써 4년째다.

아들이 다소 허술해 보일 수도 있는 엄마 도시락이 별로라고 집에 와서 한 마디 하는 거 아니야? 쓸데없는 걱정까지 잠시 들었다.


"우리 아들, 오늘 체험학습 잘 다녀왔어? 도시락도 맛있게 먹었고?"

"응, 엄마. 도시락 정말 맛있게 잘 쌌더라. 다 먹고 왔지."

"맛있었다니 다행이다."

"친구들이랑 나눠 먹었어."

"그랬어? 잘했네."

"아무튼 오늘 도시락 정말 맛있었어. 고마워요, 엄마."

"뭐가?"

"엄마가 날 위해서 새벽부터 일어나서 도시락 준비해 줬잖아."

"당연히 우리 아들을 위해서 해 줘야지, 엄마가."

"세상에 당연한 건 없어. 그래도 엄마 힘들잖아."

"아니야, 우리 아들이 맛있게 먹을 생각하면 하나도 안 힘들어."

"근데 진짜 도시락 맛있었어."

"그렇게 맛있었어? 친구들 도시락은 더 맛있었지? 예쁘고?"

"엄마가 만들어 준 게 제일 맛있지. 왜 그렇게 맛있을까? 이유가 뭘까?"

"글쎄, 왜 그럴까?"

"그건 바로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들어갔기 때문이지!"

"어쩜 우리 아들은 말 한마디를 해도 이렇게 예쁘게 할까."

아들 말 틀린 거 하나 없다.

요란하지는 않지만 아들이 원하는 메뉴대로, 아들이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니 새벽에 눈이 번쩍 떠져서 데치고, 말고, 쌌다. 그게 전부다.

그리고 아들 말마따나 엄마의 사랑과 정성, 그건 정말 아낌없이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런 건 사진으로 찍히는 게 아니었다, 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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