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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y 10. 2024

팔불출 VS 칠불출

우리집에서만 세기의 대결

2024. 5. 8.

<사진 임자 = 글임자>


"아휴, 팔불출처럼 왜 이러실까? 그만 해!"


라고 그 양반에게 한마디 하긴 했지만, 정작 팔불출이 누구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가 팔불출 되기를 부추긴 이가 정작 누구였는지도 말이다.

그녀의 신변 보호를 위해 절대 밝힐 수는 없지만 말이다.

아마 여러분은 절대 짐작조차 못할 것이다.


"이거 우리 아들 딸이 선물로 준 거니까 사진 찍어야지. 기념으로 남겨야지."

이러면서 어린것들의 선물을 주섬주섬 챙기는 한 성인 남성이 있었다.

요리 찍고 조리 찍고 혼자 오두방정을 떨고(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혼자서만 흡족해하며 다시 그 선물을 수거하시 시작했다.

"정말 팔불출처럼 왜 그래? 누가 팔불출 아니랄까 봐."

사진만 찍었지 다시 볼 일도 거의 없을 것 같은데(그동안 내가 축적한 스몰 데이터에 의하면 말이다) 그 양반은 '일단 찍고 보자'였다.


"자, 어머니, 아버지, 제가 뭘 가지고 왔는지 보시지요."

넉살도 좋게 아들이 대왕 카네이션을 꺼냈다.

"어머, 우리 아들, 이게 뭐야? 설마 카네이션이야? 이렇게 큰 카네이션은 처음 봐."

이것은 호들갑이 아니다, 더군다나 오두방정은 절대 아니다.(라고 나만 생각한다는 거 잘 안다)

"어머니, 한번 편지부터 꺼내 보시지요."

아들이 단단히 준비한 게 틀림없다. 어마, 한두 가지가 아닌가 봐?

"피아노 연주까지 해 주고 또 선물이 있어? 잠깐! 엄마 손수건부터 챙기고.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날지도 모르잖아. 손수건이 어디 있더라?"

다짜고짜 나는 손수건을 찾는 시늉을 했다.

2024. 5. 8.

"너희 엄마 또 왜 저래? 오바 시작한다."

오바는 누가 오바 한다고 그러시나?

팔불출이 누구보고 오바한대?

"먼저 효도 쿠폰부터 봐요."

백지수표 남발하듯 아들은 효도 쿠폰을 남발했다.

아들 말로는 5번씩 쓸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쿠폰 그 어디에도 그런 말은 명시돼 있지 않았으나 구두 약속도 약속이니까.

"자, 엄마, 그림을 보고 무슨 상황인지 맞혀 봐요."

라고 말하는 순진한 아들을 보며 어이가 없긴 했지만(그림은 대충 봐도 눈치라곤 없는 그 양반도 단번에 알아챌 만큼 노골적으로 그림과 그 내용을 일치시키고 있었다.

2024. 5. 8.

"엄마, 내가 엄마한테 오천만 원을 줄게."

갑자기 선거철도 아닌데(선거철이라도 그러면 절대 안 되지만, 어디 출마할 것도 아니면서) 갑자기 현금으로 인심을 쓰려고 하셨다.

"우리 아들, 돈이 어디 있다고 오천만 원씩이나 준다고 하는 거야?"

"그 정도는 있지. 엄마랑 아빠 각자 오천만 원씩이야. 자, 받아요."

과연 아들이 건넨 돈은 오천만 원은 오천만 원이었다.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돈을 주는 거야? 이걸로 우리 아들 딸 맛있는 거 사줘야겠다."

라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들이 제지하고 나섰다.

"안돼. 그건 엄마를 위해서 써. 우리한테 뭐 안 사줘도 돼."

"아니야. 엄마는 너희를 위해서 쓰고 싶어. 결국 우리 가족을 위해 쓰는 거지 뭐. 그게 엄마를 위해 쓰는 거나 마찬가지야."

"안된다니까. 그냥 엄마 쓰고 싶은 데다 다 써."

"알았어. 우리 아들이 그러라니까 그래야지."

하지만 이튿날 아드님이 하도 수박 타령을 하길래 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요긴하게 잘 쓰긴 했다.

아드님은 아마도 내게 수박값을 주셨나 보다.

2024. 5. 8.

"잠깐, 여기서 끝이 아니죠. 아직 더 남았습니다!"

무슨 만물상도 아니고 뭐가 자꾸 나오는 게지?

"편지는 엄마 먼저 읽고 아빠한테 전달해 줘요."

먼저 내게 쓴 편지를 보니 어버이날 맞춤 편지에서 한 치의 벗어남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그 양반 몫도 슬쩍 봤으나 내게 쓴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살짝 받는 대상에 따라 적절한 단어로 바꿔주는 센스 좀 보라지.

그 소리가 그 소리 같았지만, 이 정도는 눈 감아 주자.

초장, 중장, 종장을 딱딱 맞춘 무슨 시조도 아니고, '씨 유 레이러, 엘리게이러'처럼 라임을 맞춘 것도 아니고 어쩜 뭔가 정돈된 느낌이야!

그 와중에 편지의 내용을 두고 지적을 하는 한 멤버가 있었으니

"야, 아빠가 어떻게 너를 낳았냐? 엄마가 너를 낳았지."

라는 말에 아들은 지체 없이 발끈했다.

"엄마 혼자 어떻게 나를 낳겠어? 아빠가 있었으니까 낳은 거지. 엄마 난자랑 아빠 정자가 만나서 된 거니까 아빠도 날 낳은 거나 마찬가지지."

라고 제법 야무지게 훈화 말씀을 전하셨다.

느닷없이 어버이날에 등장한 '성교육'이라니!

"그래. 우리 아들 말이 맞네. 어쩜 우리 아들은 그런 것도 잘 알아? 대단하다."

다소 과장되게 반응했더니 또 그 양반이 출동하시는 게 아닌가.

"하여튼 너희 엄마 호들갑은 알아줘야 돼."

나는 절대 호들갑 떨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엄마, 이젠 엄마가 좋아하는 과자야. 특별히 제일 큰 걸로 샀어."

끝도 없이 나왔다.

"어머, 정말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네. 작은 걸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큰걸 샀어?"

"엄마가 좋아하잖아."

"역시 우리 아들이 이렇게 엄마를 생각해 준다니까."

딸은 그 양반 담당으로 그의 최애 과자를 전달했다.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야. 이렇게 너희가 엄마를 위해주니까."

이번엔 정말 내가 느끼기에도 호들갑스러웠다.

"하지만 어머니,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가 더 남았습니다."

아니, 이것은 흡사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라고 선언하던 이순신 장군에 버금가는 상황이 아닌가.


"이건 내가 쓴 편지야."

편지였다, 자그마치 영어로 쓴.

"세상에 만상에! 우리 아들이 편지를 또 썼어? 그것도 영어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2024. 5. 8.

"이거 봐봐. 우리 아들이 편지를 썼어. 그것도 영어로 썼다니까. 빨리 봐봐. 어쩜 우리 아들 정말 대단하다. 초등학교 4학년이 이렇게 영어를 잘한단 말이야? 얼른 보라니까!"

그 양반 눈앞에 들이밀며 나는 '호들갑의 최상급'을 선보였다.

"진짜 너희 엄마 왜 저러는 거야?"

왜 그러긴? 좋아서 그러지. 기특해서 그러지.

"Thank you for 다음에  동사를 'ing'로 쓰는 걸 정확히 아네? 어쩜 이런 것도 다 알아? 동사원형을 쓸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게다가 parent 뒤에 's'까지 붙여 주는 것도 말이야. 빠뜨리기 쉬울 텐데. 부모는 엄마 아빠 두 명이니까 복수가 맞겠지? 우리 아들은 엄마나 아빠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두 명 다 사랑한다는 거잖아. 그치?"

은근슬쩍 가당치도 않은 '엄마표 영어'도 아닌 것을 일단 던지고 봤다.

"하여튼 너희 엄마 호들갑은 정말."


그 양반은 끝까지 나를 팔불출 보듯 했다.

하지만 나는 결코 팔불출이 아니다.

팔불출까지는 아니고...

음...

칠불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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