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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y 29. 2024

맞춤형 토킹 어바웃이 필요한 순간

그 순간을 모르는 자의 방식

2024. 5. 27.

< 사진 임자 = 글임자 >


"합기도는 몇 년 다녀 봤으니까 이젠 태권도를 배워 보는 게 어때?"

그 양반과 나는 진작에 합의를 본 사안이었고 남매에게 슬쩍 말을 던졌던 날이다.

그동안 대놓고도 여러 번 언질을 줬던지라 순순히 받아들일 줄 알았다.

아니 착각했다.

어디까지나 그건 우리의 바람일 뿐이었다.


"아빠, 꼭 태권도 배워야 돼?"

딸이 가장 불만이었다.

"다른 운동도 한 번 경험해 봐라 이거지."

그 양반이 종종 아이들에게 해 온 말이라 그날도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냥 합기도 계속 다니면 안 돼?"

딸은 미련이 많아 보였다, 합기도 학원에, 아니 어쩌면 합기도 학원 안에 여전히 남아 있게 될 멤버들에게 말이다.

"2년 넘게 다녔으면 됐지. 그리고 단도 3단까지 땄고."

"그래도 난 계속 합기도 다니고 싶은데..."

그 양반과 딸은 서로 양보할 기미가 전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양보라고 하기도 좀 그런, 어쩌면 반 강제로라도 한 쪽이 계속 밀어붙이게 될 것이었다.

"도대체 계속 합기도에 다니려고 하는 이유가 뭐야? 거기 있는 친구들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야, 솔직히?"

그 양반은 가장 유력한 증거 자료로 그것을 들었다.

나도 가장 강력하게 의심되는 것도 바로 그 이유였다.

딸은 합기도 학원에서 비록 제 나이의 친구들은 한 명도 없었지만 동생들 몇 하고는 아주 친하게 지내는 중이었다.

"처음에 엄마가 합기도 학원을 그리 정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잖아. 여자 사범님이 계셔서 그리 정한 건데 이젠 안 계시잖아. 그래서 그러는 건 줄 알면서 그러네."

"그래도 나는 합기도 계속 다니고 싶은데."

"너 합기도 학원 갈 때도 처음엔 가기 싫다고 얼마나 그랬었어? 그래도 봐봐. 지금 2년도 넘게 잘 다니잖아."

"그러니까 계속 거기 다니면 안 돼?"

"말했잖아. 처음에 그리 보낸 이유가 없어졌잖아. 그래서 그런 거지. 아무래도 넌 여자니까 여자 사범님한테 지도받으라고 그래서 그런 거였잖아. 너도 이제 많이 컸고 그래서."

딸은 우리 마음을 전혀 모르는 걸까?

아니면 외면하고 싶은 걸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저학년 때에는 내가 육아휴직 중이었으므로 남매를 데리고 나가 매일같이 산책도 하고 간단한 운동도 했었다. 하지만 점점 나도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지자 차라리 매일 운동을 할 수 있는 학원을 알아보다가 합기도 학원을 찾은 것이다.

무엇보다 여자 사범님이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다. 그거 하나만 보고 그쪽으로 보낸 거였다.

그런데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그래서 합기도는 어지간히 했으니까 이번엔 다음 운동으로 태권도를 낙찰한 것이다.

"우리 아들은 태권도 어때? 누나랑 같이 태권도 다녀 볼래?"

"난 좋아."

아들은 정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우리가 제안한 대로 받아들였다.

문제는 딸이었다.

사방팔방 수소문해서 여자 사범님이 계시다는 태권도 학원을 찾아내서 이미 결심을 굳히고 아이들에게 선포한 날, 딸이 생각보다 거세게 반발했던 것이다.

 "넌 뭘 시작할 때 처음엔 너무 겁을 먹는 것 같더라. 뭐든지 도전을 해봐야지.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해보는 게 좋아. 익숙한 것에만 계속 있으면 안 돼. 네가 살면서도..."

그 양반의 설교는 시작되고야 말았다.

동시에 딸의 눈물바람도 슬슬 시작되고야 말았다.

요즘 들어 뭔가 본인의 의지와 상반되는 상황에 놓일 때면 딸은 눈물바람부터 하기 시작했다.

저러다가 애 울리고 말지.

"합격아, 이게 울 일이야? 뭐가 어째서 울어? 응? 문제가 뭐야? 왜 울어? 지금 울 상황은 아니잖아?"

문제가 뭔지, 정말 그 양반은 모르시는 걸까?

문제는 그 양반이다.

그 양반의 말하는 방식이다.

왜 애를 윽박지르면서 혼자만 말하는 거지?

저건 대화가 아니다.

본인 혼자 못마땅해서 괜히 딸에게 핀잔만 잔뜩 주는 거다.(라고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딸은 서 널 살 짜리 애가 아니라 이젠 어엿한 초등학교 6학년이다, 게다가 여학생이다. 사춘기가 왔는지 안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 뭔가를 대비해야 하고 갑작스러운 심경의 변화에도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대비해야 할 의무가 있는 부모는 저렇게 우리 생각에만 별 것도 아닌 일 같은 일에도 대단한 일처럼 눈물바람부터 하는 그 마음을 먼저 좀 헤아려 줄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나는.

가만 생각해 보면 나도 저 나이 때는 좀 그런 것 같았으므로.

딸이 다짜고짜 눈물을 흘리는 건 나도 뜨악했지만, 솔직히 정말 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딸 입장에서는 울 수도 있는 일일지도 몰랐다. 아니, 저런 일이야말로 딸은 울 일일지도 몰랐다.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면 될 일을,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울기부터 한다고 그 양반은 이제 아예 인상을 쓰고 있었다.

"네가 그렇게 계속 다니고 싶으면 무조건 울기부터 하지 말고 아빠한테 왜 그렇게 다니고 싶은지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고 아빠를 설득하려고 해야지 걸핏하면 울기나 하고 그러면 되겠어? 안 그래? 합기도 처음 갔을 때도 그렇게 다니기 싫다고 하더니 친구들도 사귀고 잘 다녔잖아. 태권도 학원에서도 새로운 친구들 사귈 수 있을 거야. 도대체 왜 울어? 그만 울어. 적당히 해."

라고 말하는 그 양반이 나는 너무 답답했다.

차라리 가만히 있기나 하지.

그러니까 애들이지. 안 그러면 어른이게?

아니지, 어른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거지. 아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내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도 남에게는 아무 일이 될 수도 있는 거고 다 그런 거 아니겠냐고.

그리고 그만 울라고 윽박지른다고 눈물이 멈춰지나?

왜 말을 저렇게 할까?

말이란 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그 애들이 평생 너랑 같이 합기도 학원 다닐 거 같아? 너 혼자 착각하는 거야. 그 애들이랑 헤어지기 싫어서 계속 다닌다는 게 말이 돼? 그만 울라니까!"

이 양반이 보자 보자 하니까 불난 집에 선풍기랑 에어컨을 다 동원해서 돌리고 계시네?

아주 애를 울리려고 작정을 하셨구먼?

못마땅해도 일단은 살살 달래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봐야지 이건 너무하잖아?

"갑자기 눈물이 날 수도 있는 거지. 그만 울라고 한다고 그게 뚝 그쳐져?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줄 알아? 자꾸 그렇게 몰아세우면 무슨 말을 하겠어?"

좋게 좋게 얘기해도 들을까 말까 한 상황에서 아주 일을 그르치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이젠 단지 눈물을 보인다는 그 이유가 못마땅해진 사람처럼 그 양반은 불만스러운 얼굴을 했다.

차라리 그냥 나한테 맡기지, 혼자 저렇게 막 나가지 말고 미리 나랑 얘기해서 말이라도 맞춰서 최대한 딸의 마음을 돌릴 방법을 생각해 볼 것이지.

사람마다 연령대마다, 성별에 따라서 기질에 따라서 맞춤형 대화 방식이 필요하다는 걸, 나는 알겠는데, 키워보니 그게 필요하던데, 왜, 왜 모르는 걸까.

딸 이전에 맞춤형 토킹 어바웃이 절실한 사람은 어쩌면 그 양반일지도 몰랐다.

이러다가 딸이 '아빠 출입 금지'라는 경고문을 붙이고 방 문 걸어 잠가버리는 거 아닌가 몰라.


나도 무조건 오냐오냐 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 정든 이들과 헤어져야만 하는 딸의 마음도 조금 헤아려 주면서 살짝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도 갖게 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 주면서 기대감에 부풀게도 하면서, 이게 그렇게 어려운가?

지금 너무 감정적으로 취약해져 있는 딸의 상황도 좀 보살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으로 상황 판단을 해야 한다고, 그 분위기에 너무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거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무엇보다도 키가 더 많이 크고 싶다고 하는 딸에게 운동의 필요성을 어필하면서 은근슬쩍 태권도로 유인하는 거 그게 그렇게 어렵냔 말이다.

어렵긴 어렵다.

그러니까 그냥, 내가 하는 대로 보고나 있지.

가만히 있으라 할 때는 꼬박꼬박 나서고, 좀 나서보라고 할 때는 꿈쩍도 않고 도대체 무슨 생각이실까. 

좋은 말로 좋게 좋게 어떻게 내가 해 보려고 했는데, 적어도 이런 식으로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학원이라고 저거 하나 달랑 보내는 게  다인데 그게 이렇게나 힘이 드는 일이구나.

남들은 서 너 군데도 보낸다는데 그 힘든 일을 어떻게 다 해내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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