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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y 11. 2024

남편을 보았다

안 봐도 좋을 것을

2024. 5. 9.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나 체험학습 가는 거 잊지 않았겠죠? 내가 도시락 어떻게 싸 달라했지?"

잊을 게 따로 있지, 잊으면 큰일 나지.

자그마치 아드님의 체험학습인데.

"걱정하지 마.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서 준비해 줄게."

"엄마, 이번엔 잘 좀 해 봅시다. 알겠지?"

"잘해보긴 뭘 잘해 봐?"

무슨 중요한 국가 경기에라도 참가하는 선수도 아니고 대관절 잘해보자는 그 의미는? 그동안 내가 그럼 잘 못했었다는 건가?

처음엔 권유형이던 것이, 강요형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어느새 자신이 원하는 도시락이 아니면 절대 아니 된다고 저돌적으로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체험학습, 그 요망한 것 때문에 평소의 아들답지 않게 예민하게 굴었다.(고 나만 또 느꼈다)


"엄마, 도시락이 제일 중요해. 이번엔 어떻게 쌀 거야?"

"어떻게 싸면 좋겠어?"

"그냥 간단하게 김밥하고 유부초밥이랑 닭강정하고 문어 소시지, 음료수, 과자 두 세 가지 그리고 과일 몇 가지만 싸 줘.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그게 '간단하게'냐?

"그렇게 간단히 도시락을 싸 가면 어쩌려고 그래? 너무 간단한 거 아니야?"

"아니야. 엄마 힘드니까 그냥 그렇게만 싸면 돼."

네 눈엔 그게 간단해 보이냐?

가만, 그나저나 저거 저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같다.

내가 어디서 들었더라?

낯설지가 않은걸?

태초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서 '도시락은 간단히 싸 줘.'라는 소리 들렸으랴.

'전화는 용건만 간단히'에 버금가는 '도시락은 간단하게', 간단하게만을 외치던 갓 결혼한 (철없어도 너무너무 철없던) 한 남성이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2011년, 그 남성은 결혼 일주일 만에 국가직 공무원을 그만두고 다른 지방직 직렬 수험 공부를 하겠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입덧하는 아내에게, 내 밥도 챙겨 먹기 힘든 아내에게 자그마치 '도시락씩이나' 요구해 왔다.

그것도 '간단한 도시락'을 말이다.

(여러 번 우려먹은 일화임에 주의!)


세상에는 믿기 힘들지만,

설마 설마 했는데,

그럴리가 없는데,

입덧이 심한 아내에게 도시락을 싸달라고 하는 수험생 남편이 있다고 한다.

민원실에서 근무할 때라 지금과는 달리(지금은 점심시간을 보장해 준다고 한다. 더 이상 밥 먹다가 뛰쳐나가서 등, 초본을 떼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며 일을 하곤 했다. 밥을 같이 먹다가 민원인이 오면 차례로 뛰쳐나가서 일처리를 했다. 그때의 밥을 먹다가 만 기분이라니! 게다가 나는 정말 그때 저세상 입덧으로 내 정신이 내 정신도 아니었을 때였다. 어차피 내 도시락을 싸긴 하니까 남편의 도시락을 싸는 것은 크게 힘들 건 없었다. 수험생이신 그를 위해 내 도시락을 싸면서 그의 도시락도 하나 더 추가했다.

당시 내 인생의 최대 민원인이 그 인간이었음은 말할 것도 앖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나 도시락이 창피해서 뚜껑을 못 열겠어. 다른 사람들은 반찬도 골고루 맛있는 거 싸 오던데, 나는 너무 부실해."

나는 그때 왜 그의 얼굴에 정통으로 그 도시락을 집어던지지 못했던가.

(태교 중이라 천만다행이었다.)

그때 나는 '그 인간'에게 뭐라고 대꾸했던가.

"뚜껑을 못 열겠으면 통째로 씹어 먹어!"

라고 했던가.

"호강에 겨워서 배부른 소리 하시는 구만?"

이라고 했던가.

그도 아니면

"내 몸이 지금 성해? 남은 입덧 때문에 죽을 판인데 내 앞에서 반찬 투정이야?! 일하랴 도시락 반찬 만드랴 입덧하랴 힘들어 죽겠는데 그게 할 소리야?"

라고 했던가.

아마도 저 모든 소리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강하게 확신하는 바이다)

어쩜 철이 없어도 그렇게 없을까.

아무리 본인이 입덧을 안 한다고 저렇게 말할까?

며칠 굶어 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내 도시락은 내가 싸고 수험생 도시락은 수험생이 직접 싸게 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왜 그땐 그 생각을 못했던고?

보는 사람마다 저렇게 입덧 심하게 하는 사람 처음 본다고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했던 나인데, 그런 내 앞에서 반찬 투정을 해?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그 수험생이 엇나갈까 봐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대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임신 중이었으므로.

딸이 여럿 살렸다.

"나도 반찬 좀 신경 써 줘. 그냥 간단히 싸면 되잖아. 김치 한 두 가지랑 기본으로 김하고 달걀, 멸치볶음 이런 거 간단하잖아? 과일도 몇 가지 넣고 그러면 좋지. 비타민도 먹어야 하니까. 영양소는 맞춰 줘야지."

간단히?

얼씨구?

말은 쉽다.

내가 입덧 중이라고 말 안 했던가? 보고도 모르나? 최소한 자다가도 토하는 사람한테 할 소리는 아니라고 난 생각했다.

이 인간아, 댁 영양소 챙기기 전에 이 임신부가, 내가 먼저 영양실조로 쓰러지게 생겼소이다.

그러나,

수험생의 사기 진작 차원에서 나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

그래, 달걀말이를 싸 주자.

그 인간을 말아버릴 수 없으니 달걀이라도 말자.

"역시 자기가 최고야. 오늘은 내가 자랑스럽게 도시락 뚜껑을 열었어. 고마워."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공부를 하긴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집에 돌아온 남편이 호들갑을 떨며 그렇게 좋아하는 게 아닌가.

달걀말이 하나에도 저렇게 좋아하다니.

공무원 9급 1호봉, 그 시절 120만 원 정도의 내 월급으로 반찬 투정하는 수험생까지 건사하며 살림하던 시절이다. 신혼 초라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가진 게 없어도, 대단한 걸 소유하지 않았어도 특별히 모자람을 느끼지 않았고 거창한 것을 바라지 않았었다.

물론 단지 그의 합격만을 바랐을 뿐.

지금에 와서 나는 입덧하는 아내를 둔 공시생 남편은 절대 '반찬 투정 금지법' 내지는 '내손 내싼 도시락법'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집에서만, 그 양반 앞에서만)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이다.


나는 '도시락' 하면 그때 생각이 정말 많이 난다.  그럴 때마다 갑자기 그 양반을 몰아세우기도 한다. 지은 죄가 있는 그 양반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간간히 때 늦은 사과를 하며 변명을 하며 동시에 (건망증도 심한 여자가) 10년이 지나도 잊지 않고 정확히 기억한다는 데에 진저리 친다.


이상도 하지, 그때 내 뱃속이 있던 사람은 네가 아니라 네 누나였는데 어쩜 보고 배운 것처럼 아빠랑 똑같이 말하지?

오호통재(嗚呼痛哉)라~

도시락 유전자는 속일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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